[현장칼럼] 류호정의 `정치`와 `양심`

김미경 2024. 1. 8.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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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경 정치정책부 차장

류호정 정의당 의원이 21대 국회의 최연소 국회의원으로 입성했을 때 '새 바람'의 주역으로 성장하길 기대했다. '최연소'여서 그랬고, '정의당'이라서 그랬다. 적어도 기존 정치와는 다른 결의 정치를 보여줄 것이라 생각했다. 류 의원이 총선 당시 불거진 '리그 오브 레전드' 대리게임 논란으로 신뢰에 흠집이 생긴 채 의원이 됐지만, 정치인으로서 최소한의 양심이 있다면 그런 자신을 국회로 보내준 민심에 부합하고자 노력할 것이라는 작은 믿음도 있었다. 21대 국회가 폐회를 앞두고 있는 지금 다시 류 의원을 보니 그 때의 기대는 '헛된' 바람에 불과했다는 자괴감이 든다.

류 의원은 지난해 12월 8일 금태섭 전 의원의 '새로운 선택'과 공동창당을 추진한다고 선언했다. 그것도 국회 소통관에서다. 물론 류 의원은 정치적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는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으로서 탈당을 하든 창당을 하든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선택에는 당연히 책임이 따른다. 더욱이 정치인의 선택이라면 그 책임 또한 결코 가볍지 않다.

류 의원은 정의당이 아닌 제3당을 선택한 만큼 응당 그에 맞게 정의당을 떠나는 게 책임있는 자세일 것이다. 류 의원은 비례대표라 탈당을 하면 의원직을 상실하고, 세비와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 9명의 보좌진 등 잃을 게 많다. 그건 선택의 당연한 결과다. 그럼에도 그는 의원직을 유지하고 있다. 마음은 떠났는데 몸만 남겨두고 이익만 챙기겠다는 건 양심적 태도가 아니다.

히브리대학 역사학과 교수이자 국제정치사 분야 석학인 마틴 반 크레벨드는 저서 '양심이란 무엇인가'에서 "양심은 도덕과 혼동해서는 안된다. 도덕은 선과 악을 구별해 볼 줄 아는 능력이다. 양심은 오히려 인간 영혼을 이루는 부분이다. 양심은 선과 악을 구별할 줄 아는 도덕을 바탕으로 우리를 처신하고 행동하게 만든다. 악하고 선하지 않다고 판단되는 행동을 이미 저질렀을 때 우리가 죄의식을 느끼고 회환에 빠지고 후회하게 만드는 것도 양심"이라면서 "양심은 이해득실을 전혀 따지지 않는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이해득실을 따지는 양심은 양심이 아니다"라고 했다.

류 의원은 지난달 17일 새로운 선택 창당대회에 참석해 "설레는 마음으로 참석했다"면서 "정치의 복원을 위해 새로운 선택이 필요하다. 더 많은 분들이 함께 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류 의원은 자신이 비난을 받으면서도 정의당에 남아 있는 이유를 정의당 당원들에게서 찾고 있다. 당원 중 4분의 1가량이 '새로운 선택'을 비롯한 제3지대와 함께 하기를 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류 의원은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탈당 요구는 (새로운 선택 창당 참여를) 개인 활동으로 보니까 나올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을 하는데, 4분의 1이나 되는 당원들이 (자신을) 응원하고 있다,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다라는 것을 알게 된 이상 다른 당원분들을 더 설득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당내에서 (제3지대 연합 등을) 총투표를 해야 된다. 자진 탈당을 지금 전혀 생각하고 있지 않고, 지금 중앙당에서 말하는 그 방침이 정의당의 재창당이나 혁신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류 의원은 정의당의 혁신을 위한다는 것을 명분 삼았지만, 진정성은 없어 보인다. 정의당 당원들이 제3지대와의 연합을 희망한다고 하더라도 정의당으로서의 정체성을 훼손당하는 것은 당원들이 원하는 연합은 아닐 것이다. 류 의원이 정의당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서 정의당이 위기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당을 만드는 작업에 착수한 것은 아무리 포장을 잘 한다고 해도 정의당의 정체성을 훼손하는 것이다.

지금은 존폐 기로라는 벼랑 끝에 몰려 있지만 정의당을 지지했던 민심은 정의당의 정치는 기득권 정당과 다르다는 기대, 약자의 편에 서줄 것이라는 희망, 표리부동하지 않다는 신뢰 등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어쩌면 '류호정'이라는 불안요인 앞에 흔들리고 있는 정의당이 더 안타깝다.

심상정 의원은 최근 라디오에서 류 의원에 대해 "신의를 저버렸다. 자신을 국회의원으로 만들고 지켜줬던 수많은 당원의 정성과 기대, 아픔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면서 처음으로 입장을 밝혔다. 또 "(21대 총선) 당시 당대표로서 유구무언이고 국민들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사과하면서도 "류 의원은 (당 대표가) 발탁한 게 아니고, 당원 투표에 의해서 1번을 받은 것이다. 정의당이 목표했던 20석 가운데 20%인 4석을 '2030 청년 쿼터'로 앞 순위에 배정했던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심 의원의 말을 들으며 선뜻 수긍하기 어려웠던 것은 21대 총선에서 류 의원의 '대리 게임' 의혹이 불거졌을 때 "대학생 시절 저지른 잘못이고 깊은 성찰을 하는 만큼 청년 정치인에게 기회를 달라"던 심 의원의 호소가 기억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정치인에게 필요한 최고 자질을 능력이라고 꼽으면서 그 능력을 발휘하려면 자비심, 신의, 인간성, 정직성, 양심 같은 도덕에 얽매여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요즘 정치인들은 능력은 별개로 500년 전의 책에 담긴 이 말을 너무 충실히 따르는 것 같다. 잘못은 잘못이라 인정하는 양심과 그것을 드러낼 수 있는 용기가 아쉽다. the13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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