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대 '아픈 손가락' 고법 氣살리기 고민
2월 법관 인사 코앞에 두고
부장 3명·판사 10여명 사의
반복되는 인재유출 속수무책
"로펌대비 낮은 임금·전근 등
사직 이끄는 원인 개선해야"
"서울고법에서만 10여 명이 사표를 낸다고 해 '예정에 없던 아래 기수까지 지방 근무 배치 대상이 되는 것 아닌가' 하며 말이 많습니다. 자녀가 있는 경우 '지방 근무' 이슈가 가장 큰데 예측 가능성을 높여줘야 한다고 봅니다."(서울고법 A판사)
2월 법관 정기인사를 앞두고 고등법원 부장판사와 판사들의 줄사표가 다시금 화제가 되고 있다. 지난해보다는 덜한 수준이지만 난도 높은 항소심을 책임지는 사법부의 '허리'에 해당하는 핵심 인력들이 줄줄이 로펌행을 택하면서 국민의 신속·공정하게 재판받을 권리도 위협받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고등법원 판사는 2020년 당시 김명수 대법원장이 '고법 부장판사 승진제도'를 폐지한 후 고등법원을 책임지는 허리 역할을 하도록 기대되는 자리다. 법관인사규칙 10조에는 "고등법원 판사는 상당한 법조 경력이 있는 사람 중에서 지원을 받아 보한다"고 규정돼 있다. 고등법원 판사들을 일명 '10조 판사'라고 부르는 이유다. 지방법원 부장판사를 지원하는 요건인 '15년 이상 경력'을 채워야 10조 판사 지원이 가능하고 경쟁률도 치열하다.
하지만 치열한 경쟁을 뚫고 고등법원 판사가 된 우수 판사들의 1월 줄사표는 매년 문제로 지적된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서울 근무 5년을 채운 판사들의 '로펌행'이 줄을 이으며 법원 인사 및 보상제도에 구조적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우선 2020년 제도 폐지 후 70여 명이 남은 고등법원 부장판사는 최근 서울고법에서 홍승면(사법연수원 18기), 서태환(19기), 이재희(23기) 부장판사가 사표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가장 역량이 뛰어난 판사들로 선발됐던 고법 부장판사는 과거에는 지방법원장, 고등법원장 등으로 중용되는 '법원장 후보군'에 속했다. 하지만 법원장 후보 추천제가 도입되면서 지방법원장이 될 수 있는 길은 막혔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오면서 일말의 기대가 있었지만 조 대법원장도 지난달 '2024년 인사에서는 지방법원장으로 고등법원 부장판사를 보임하지 않겠다'고 했다. 고등법원 부장판사들은 재판을 계속하는 것 외에는 추후 고등법원장이나 대법관 정도를 도모할 수밖에 없다. 이에 절망한 부장판사들이 '퇴임'을 결심하고 있는 셈이다.
고등법원 부장판사의 역할을 대체해야 할 고등법원 판사들의 퇴사 러시는 좀 더 심각하다.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2021년 9명이었던 고등법원 판사 퇴직자 수는 2022년 13명, 2023년 15명으로 증가했고 올해는 서울고법에서만 10여 명이 사의를 표명했다. 서울고법은 당초 '서울 근무'를 전제로 선발된 곳인데, '서울 근무 5년 후 지방 근무'가 일반화되고 지방 근무 후에 서울로 돌아오는 기간이 불규칙하게 운영되면서 사직을 결정하는 판사들이 늘고 있다는 분석이다.
서울고법 판사의 퇴사 배경으로는 고법 판사 보임 이후의 인센티브 부족, 비슷한 연수원 기수 로펌 변호사와의 임금 격차 증가, 자녀 교육 문제(지방 전근) 등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수도권 지역의 B판사는 "서울고법에 5년 있다가 지방에 내려가는 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지방 고법에 중간다리 역할을 할 판사가 없다고 자꾸 서울고법에서 사람을 내려보내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처음 지방에 내려갈 때는 2~3년 후에 다시 서울로 올라올 수 있었는데, 이제는 서울로 못 올라오고 수원으로 갔다가 다시 지방으로 내려가기도 한다"고 말했다.
지방법원과의 교류를 막는 법조이원화가 오히려 고등법원에 불리하게 작용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재판 외 업무를 맡을 기회가 많은 지방법원과 달리 서울고법 판사는 고등법원장이 안 되면 정년 때까지 재판하고 판결문만 쓰다가 퇴임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방법원과 고법의 교류를 더 늘리자는 목소리도 있다. 지방 고등법원에서는 판사가 부족해 지방법원 판사가 고등법원 배석판사를 하는 경우가 있다.
홍승면 부장판사처럼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는 고위법관들이 법원을 떠난다면 사법부뿐만 아니라 국가의 손실이라는 지적도 있다.
법조계 관계자는 "사법부의 권위를 다시 세우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며 "사법부가 지금처럼 공격의 대상이 되면 불가능한 일이고, 법원에 계속 남아야 국민의 존경을 받는 법조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법관들이 공유해야 매년 반복되는 이 사태를 끊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승윤 기자 / 강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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