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노동력·OECD 최고 생산성···EU공략 베이스캠프 된 더블린

더블린=이준형 기자 2024. 1. 8.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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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신년기획-결단의 해, 막 오른 경제전쟁]
<3>기업천국 아일랜드-유럽의 실리콘밸리
1인당 GDP 20년간 3배 이상 뛰어
시간당 노동생산성 155弗···韓의 3배
파격적 법인세로 테크기업 본부 집결
올 글로벌 15% 최저한세 시행해도
유로존보다 6%P 저렴···타격 없을 듯
[서울경제]

120m.

지난달 찾은 아일랜드 수도 더블린의 번화가 오코넬 거리 중심부에 세워진 ‘더블린 스파이어(첨탑)’의 높이다.

아일랜드 정부는 2003년 자국의 경제 성장세를 기념해 더블린 스파이어를 세웠다. 당시 아일랜드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4만 940달러로 10년 전인 1993년(1만 4260달러)보다 3배 가까이 급증했다. 마침 2003년은 아일랜드의 1인당 GDP가 식민지 종주국인 영국을 넘어선 해이기도 하다. 공교롭게도 첨탑이 세워진 곳은 영국의 국민 영웅 호레이쇼 넬슨 제독의 동상이 있던 자리다.

국가적 자존심이 투영된 더블린 스파이어는 아일랜드가 쓴 ‘경제 드라마’의 새 변곡점이 됐다. 당초 아일랜드 정부가 이 첨탑을 세운 것도 다가올 100년을 기념하기 위해서였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아일랜드의 1인당 GDP는 2003년 4만 940달러에서 지난해 11만 2250달러로 최근 20년간 3배 가까이 늘었다. 같은 기간 한국의 1인당 GDP는 1만 4670달러에서 3만 3150달러로 2배가량 늘어나는 데 그쳤다. 절댓값만 놓고 봐도 아일랜드의 1인당 GDP는 한국의 3배가 넘는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20개국) 재정 위기 당시인 2011년만 해도 ‘유럽의 병자’로 꼽힐 만큼 부침이 심했던 아일랜드의 극적 성장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아일랜드 성장의 핵심 동력으로는 첫손에 파격적 법인세가 꼽힌다. 아일랜드는 지난해까지 최근 20년간 법인세 세율을 유로존 최저 수준인 12.5%로 유지하고 있다. 실제 더블린은 2003년 구글 유치를 기점으로 메타(옛 페이스북), 아마존, X(옛 트위터), 세일즈포스 등 미국 실리콘밸리를 대표하는 테크 기업의 유럽 전초 기지로 자리매김했다. 이들 기업이 몰린 더블린 그랜드 캐널독 지구는 ‘유럽의 실리콘밸리’로 명성이 높다.

아일랜드 더블린 ‘그랜드 캐널독’에 위치한 구글 유럽 본부. 글로벌 테크 기업이 밀집된 그랜드 캐널독은 ‘유럽의 실리콘밸리’로 불린다. 이준형 기자

아일랜드의 젊은 노동력도 글로벌 기업을 끌어당기는 또 다른 원인이다. 한국과 달리 아일랜드 인구는 매년 증가세다. 세계은행(WB)에 따르면 아일랜드 인구는 2012년 460만 명에서 2022년 513만 명으로 최근 10년 새 11.5% 늘었다. 같은 기간 한국 인구 증가율(2.9%)의 4배에 달한다. 지난해 아일랜드 경제활동인구가 역대 최고치인 260만 명대를 기록한 것도 이런 인구 증가세 덕분이다. 2017년 한국에서 아일랜드로 이주한 박수진(가명) 씨는 “아일랜드 정부는 출산 장려 정책에도 적극적”이라며 “주변을 보면 가구당 2~3명의 아이를 낳는 게 일반적”이라고 전했다.

교육 수준도 EU에서 높다. 아일랜드 25~34세 인구에서 고등교육을 받은 이들이 차지한 비중은 62.3%(2022년 기준)로 유럽연합(EU) 평균치(42%)를 20%포인트 이상 웃돈다. 20대 이공계 전공자 비율도 36.9%로 EU 최상위권이다. 아일랜드 정부가 대학 무상교육 등 고등교육 정책을 1960년대부터 꾸준히 강화한 결과다.

노동생산성 역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가장 높다. 아일랜드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2022년 기준 155.5달러로 한국(49.4달러)의 3배가 넘는다. 독일(88.0달러), 미국(87.6달러) 등 주요 선진국과 비교해도 2배 가까이 높다. 율리아 지드슐락 아일랜드 경제사회연구소(ESRI) 연구교수는 “아일랜드의 인구 구성은 EU 27개국 중 가장 젊은 편”이라며 “고숙련 노동력과 직결된 높은 수준의 고등교육 비율을 유지하는 것은 아일랜드 인구 정책의 핵심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심지어 아일랜드는 EU 내 유일한 영어권 국가다. 특히 19세기 중반 대기근으로 수백만 명의 아일랜드인이 미국으로 이주하며 아일랜드계 미국인이 적지 않은 점은 양국의 심리적 거리감을 좁히는 주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미국계 기업이 EU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베이스캠프’로 아일랜드를 선택하기에 적합하다는 의미다. 실제 아일랜드에 둥지를 튼 글로벌 기업의 절반 이상은 미국계다.

율리아 지드슐락 아일랜드 경제사회연구소(ESRI) 연구교수 겸 트리니티칼리지 경제학과 교수. 사진=이준형 기자

아일랜드가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Brexit) 반사 이익을 누렸다는 분석도 적지 않다. 약 700년의 식민 지배 역사로 문화·규제 등 여러 분야에서 영국과 아일랜드 간 유사점이 많기 때문이다. 이미 2016년 영국의 브렉시트 결정 이후 메릴린치·바클레이스 등 굵직한 금융기관이 잇따라 유럽 거점을 런던에서 더블린으로 옮겼다.

전문가들이 올해 법인세 인상으로 아일랜드가 입을 타격이 크지 않을 것으로 보는 배경에도 이런 복합적인 맥락이 자리한다. 올해부터 주요국 다국적 기업에 최소 15%의 법인세를 매기는 글로벌 최저한세가 시행돼 아일랜드의 법인세 세율 역시 기존 12.5%에서 15%로 2.5%포인트 올랐다. 단 해당 세율은 연간 매출이 7억 5000만 유로(약 1조 원)가 넘는 기업에만 적용된다.

법인세 인상에도 다국적 기업의 엑소더스 등 자본 유출은 크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당장 수천 명의 직원을 고용한 유럽 본부를 다른 국가로 이전하기 쉽지 않은 데다 이번 인상에도 아일랜드의 법인세율(15%)은 여전히 유로존 평균치보다 6%포인트 이상 낮다. 지드슐락 교수는 “법인세 인상으로 외국인직접투자(FDI)가 다소 위축될 수 있지만 아일랜드의 장점이 많아 충분히 극복 가능한 수준일 것”이라고 말했다.

더블린=이준형 기자 gilso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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