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NANCIAL TIMES 제휴사 칼럼] 가난한 나라의 빚, 국민 절대 빈곤 만든다

2024. 1. 8.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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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가 코로나19 바이러스를 겪은 게 불과 4년 전 일이다. 팬데믹으로 경제활동이 급격히 위축됐지만 이후 빠르게 회복했다. 이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을 비롯해 식품과 에너지 위주의 물가 급등, 급격한 금리 상승이 뒤따랐다. 그 배경에는 점차 뚜렷해지는 기후변화가 있다.

10년간 빈곤 감소율 급격히 둔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에 이 모든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그간 절대적 빈곤을 제거해오던 성과가 급격히 둔화됐다는 사실이다. 특히 극빈층 인구가 밀집된 최빈국에서 그 여파가 두드러졌다. 이를 개선하려면 최빈국에 공여 지원이 더 필요할 것이다.

일각에서는 세계화의 폐해를 비판하지만, 세계화는 세계 인구 가운데 절대빈곤층 비율을 크게 낮추는 데 기여했다. 현재 세계은행은 2017년 물가를 기준으로 하루 소득이 2.15달러(약 2811원) 미만인 가구를 절대빈곤층으로 정의한다. 절대빈곤층 인구수는 1998년 당시 세계 인구의 31%인 18억7000만명에 달했으나 지난해에는 세계 인구의 9%인 6억9000만명으로 줄었다. 불행히도 절대빈곤층이 감소하는 속도는 과거보다 크게 둔화됐다. 세계 빈곤율은 2013~2023년 10년간 3%포인트 줄었는데, 이는 2003~2013년 14%포인트 감소한 데 비하면 둔화된 수치다.

이렇게 절대빈곤층이 빠른 속도로 줄지 않는 것은 세계은행의 최빈국 대상 대출 지원기구인 국제개발협회(IDA)에서 자금을 지원받는 최빈국의 빈곤율 개선이 둔화됐기 때문이다.

최빈국에서 인구 대비 절대빈곤층 비율은 1998년 20%에서 2023년 3%대로 하락했지만, 해당 기간 중 2013~2023년 10년간 감소폭은 약 4%포인트에 그쳤다. IDA에서 자금을 지원받을 수 있는 적격국가의 절대빈곤율도 1998년 48%에서 2023년 26%로 줄었다. 특히 IDA 적격국가에서 절대빈곤층 비율은 2013년 기준 그 이전의 10년간 14%포인트 줄었지만 2013~2023년 10년간 감소폭은 1%포인트에 불과했다.

절대빈곤층 70%가 최빈국 출신

보다 부유한 국가에서도 극빈층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지만, 현재 IDA의 지원을 받을 자격이 없는 국가에서는 절대적 빈곤에 처한 인구가 1억9300만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IDA 적격국가에서 절대빈곤층 인구수는 4억9700만명으로 전 세계 전체 절대빈곤층(6억9100만명) 중 무려 72%를 차지한다. 더욱이 최빈국이 아닌 국가에서 절대빈곤층 비율은 3%에 불과하므로 완만한 경제 성장이 동반되면 2030년에는 세계 절대빈곤층이 대부분 사라질 것으로 보는 게 합리적이다. 따라서 전 세계 절대빈곤 퇴치는 절대빈곤층 대부분이 밀집한 최빈국에 자원과 관심을 집중해야만 달성할 수 있다.

전 세계에서 IDA 자금을 지원받을 수 있는 적격국가는 75개국이다. 이 중 39개국이 아프리카에 있다. 방글라데시와 나이지리아, 파키스탄 등 일부 나라는 IDA 적격국가이면서 국제부흥개발은행(IBRD)의 지원 대상국이다.

빈곤 퇴치에 세계은행 IDA 역할 중요

여러 IDA 적격국가는 국가 경영 측면에서 최악의 상태라는 점엔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이들 국가는 다양한 측면에서 취약한 동시에 빈곤의 함정에도 빠져 있다. 빈곤의 함정에 빠진 이들 국가는 다른 외부 충격이 가해졌을 때 빈곤의 함정에서 빠져나오기 더 어려워진다. 빈곤의 함정이 끝 모를 구덩이여야 할 이유는 없다. IDA는 인도를 지원하기 위해 1960년 창설된 기구로, 때때로 '인도개발협회'로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인도는 IDA 수혜국에서 성공적으로 졸업했고 현재는 공여국이다. 이 밖에도 중국 등 IDA를 졸업한 국가는 많다.

IDA는 2022년 7월부터 2025년 5월까지 제20차 재원 보충에 나서고 있다. 아자이 방가 세계은행 총재가 강조했듯이 성장 촉진, 절대빈곤 퇴치, 저소득 국가의 기후변화 위기 해소 등의 시급함을 감안하면 차기 재원 보충 규모는 훨씬 확대돼야 한다.

고금리 충격 최빈국 부채 위험수위

세계은행의 최신 국제부채 보고서는 IDA 재원 확대가 필요한 또 다른 이유를 드러냈다. 보고서는 최빈국이 상대적으로 더 불안정하고 비싼 자금원에 의존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해당 보고서는 '최빈국의 부채는 국가 경제를 마비시킬 만한 부담'이라고 언급했다.

현재 IDA 적격국가 중 28개국은 국가부채 위기에 처할 위험이 높고, 11개국은 이미 위기에 처해 있다. 부채는 어느 나라에나 있는 문제지만 절대빈곤층이 밀집한 최빈국에 부채는 특히 치명적이다.

최빈국의 국가부채 문제는 놀랄 만한 일도 아니다. 2012~2021년 IDA 적격국가의 외채 비율(민간)은 11.2%에서 28%로 늘었다. 그 결과 부채 상환액도 2012년 260억달러에서 2022년 890억달러로 증가했고, 같은 기간 납부한 이자만 64억달러에서 236억달러로 급증했다.

무엇보다 전체 약정 채무에서 채권 보유자와 기타 민간 대출기관이 차지하는 비율이 2021년 최고 37%에서 2022년 14%로 하락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긴축 통화정책을 실시하면 금융기관이 한계차주에게서 대출을 회수하는 교과서적 상황에 처해진 것이다. 국제부채 보고서에 따르면 부채 위기에 빠진 IDA 적격국가 비율은 2023년 56%에 도달했다.

선진국이 IDA 자금 지원 나서야

최빈국의 민간 대출도 위험한 수준이다. 일부 부채는 상각이 필요할 것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최빈국은 더 많은 양허성 대출이 필요해질 것이라는 점이다. 최빈국이 빈곤의 함정에서 탈출하도록 자원을 지원하는 것은 선진국의 의무일 뿐만 아니라 선진국의 국익을 위한 일이기도 하다. 이 같은 방식으로 수십억 명이 빈곤의 함정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선진국은 이제 할 일을 해야 한다.

※이 글은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실린 마틴 울프 칼럼 'Poor countries' debt problems are keeping too many in destitution'을 매일경제신문이 번역한 것입니다.

[마틴 울프 FT 수석 경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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