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마셨지만 음주운전 무죄...공소장 허점 파고들었다

박주영 기자 2024. 1. 8.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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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지법 서부지원./뉴스1

음주 사고를 낸 뒤 음주측정을 거부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운전자가 공소장의 음주측정 거부 시점이 실제와 달라 무죄를 선고받았다.

8일 부산지법 서부지원에 따르면 형사4단독 오흥록 판사는 도로교통법위반(음주측정거부) 혐의로 기소된 30대 남성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A씨는 지난 2022년 1월 7일 오전 4시 6분쯤 부산 한 도로에서 도로시설물을 들이받은 뒤 현장에서 음주 측정을 요구하는 경찰을 밀치고 욕하는 등 소동을 벌이며 음주 측정을 거부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재판 과정에서 A씨는 음주 운전을 했고 사고도 낸 사실이 인정됐다. A씨는 과거에도 음주운전을 하다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오 판사는 선고공판에서 “죄가 없는 게 아니다”면서도 A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오 판사는 판결문을 통해 “공소장에 기재된 바와 같이 사고 현장에서 경찰관 중 누군가가 피고인에게 음주 측정 요구를 한 내용이 증명되지 않아 무죄를 선고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A씨가 무죄를 받게 된 경위는 이렇다. 검찰은 “A씨가 음주운전을 하다 교통사고를 내 현장에서 음주측정을 요구했으나 소동을 벌이며 거부했다”는 내용으로 공소를 제기했다. 그러나 A씨와 변호인은 재판 과정에서 “현장에서 음주 측정 요구를 받은 적이 없고 따라서 음주 측정을 거부한 적이 없다”며 무죄를 주장했다.

당시 사고 현장에 출동한 사상경찰서 경찰관은 재판에서 “차에서 내린 피고인이 만취해 정상 대화가 되지 않았다”며 “A씨가 경찰관들을 밀치거나 현장을 이탈하려 하는 등 도저히 음주 감지 요구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현장에서 곧바로 현행범 체포를 했다”고 증언했다.

결국 음주사고 현장에서 음주 측정 요구를 했으나 거부를 했다는 공소 사실이 사실로 증명되지 않은 셈이다. 검찰은 경찰관 증언 이후 A씨가 사고 현장이 아닌 경찰서 교통조사계로 인계된 뒤 음주 측정을 요구받았으나 거부한 사실을 확인하고 뒤늦게 공소장 변경을 법원에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서부지원 관계자는 “선고 공판에 임박해 공소장을 변경, 일정대로 재판을 진행할 경우 피고인의 방어권에 지장을 주고 그렇다고 선고 기일을 한없이 미뤄 재판 기간이 길어지면 피고인의 인권 침해 소지가 있다는 점, 1심 선고 후 항소로 이를 바로 잡을 수 있다는 점 등을 고려, 무죄가 내려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1심 재판 후 곧 공소장 내용을 변경해 항소했다. 지역 법조계 관계자는 “공소 사실에 적시된 시간, 장소에서 범행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당연히 판사는 무죄를 선고할 수밖에 없다”며 “거듭된 음주운전 범행에도 자기 잘못을 뉘우치지 않고 교묘한 법리적 다툼을 벌인 A씨의 행위에 대해 항소심에서 적절한 판단이 내려질 가능성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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