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살아있다면 스물아홉... 아직도 가습기살균제 피해인정 못 받아"

신혜정 2024. 1. 8.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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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아홉.

서울의 아침 기온이 영하 10도까지 떨어진 8일 오전, 가습기살균제피해자연대와 환경보건시민센터 등은 광화문광장에서 '가습기살균제 제조·판매기업 유죄판결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가습기살균제가 처음 판매된 지 30년, 피해가 세상에 드러난 지는 13년째이지만 사건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피해자들의 폐질환과 가습기살균제 사용의 인과관계를 입증하는 연구 결과가 없다는 게 결정적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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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MIT·MIT 성분 제품 관련 11일 형사 항소심 선고
피해 인정 10명 중 4명 해당 제품 사용
'폐질환 인과 입증' 난항에 피해 인정 늦어져
피해자들 "공정한 판결 내려달라" 촉구
이장수(오른쪽 네 번째)씨를 비롯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과 환경보건시민센터 회원들이 8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가습기살균제 참사 기업에 대한 형사재판 항소심 유죄판결을 촉구하고 있다. 뉴스1

스물아홉. 의젓한 사회인으로 한창 꿈을 이뤄나가고 있을 나이. 딸 의영이가 살아있다면 올해 그런 예쁜 나이가 됐으리라. 이장수(69)씨 부부는 여전히 그리움과 죄책감을 안고 살아간다. 부부는 감기에 걸린 딸에게 가습기를 틀어주며 당시 유공(현 SK케미칼)의 ‘가습기메이트’를 사용했다. 유명 방송인이 나온 광고를 믿고 산 것이었다. 생후 50일, 딸은 원인 불명의 폐렴으로 짧은 생을 마감했다. 가습기살균제의 실상을 알게 된 건 그로부터 수십 년 뒤. 하지만 의영이는 아직 피해 인정을 받지 못했다.

서울의 아침 기온이 영하 10도까지 떨어진 8일 오전, 가습기살균제피해자연대와 환경보건시민센터 등은 광화문광장에서 ‘가습기살균제 제조·판매기업 유죄판결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오는 11일 서울고등법원은 클로로메틸이소치아졸리논(CMIT) 및 메틸이소치아졸리논(MIT) 성분의 가습기살균제 제조·판매기업 전직 임원 13명의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에 대해 판결할 예정이다. 이씨도 이날 유죄 선고를 촉구하는 피켓을 들고 거리에 나섰다.

가습기살균제가 처음 판매된 지 30년, 피해가 세상에 드러난 지는 13년째이지만 사건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2016년 첫 수사 당시 원료물질 중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을 사용한 ‘옥시싹싹 가습기당번’ 등은 질병 및 사망과의 연관성이 입증돼 제조·판매사 임원 14명이 유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반면 SK케미칼이 원료를 공급하고 애경산업이 판매한 ‘가습기메이트’ 등 CMIT·MIT 성분 제품은 기소 대상에서 제외됐다. 검찰은 이후 2019년 2차 수사를 통해 CMIT·MIT의 안전성 검증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 SK케미칼, 애경산업, 이마트 등 관계사 임직원들을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를 적용해 기소했다.

그러나 2년 뒤인 2021년 1심 법원은 무죄를 선고했다. 피해자들의 폐질환과 가습기살균제 사용의 인과관계를 입증하는 연구 결과가 없다는 게 결정적 이유였다. 재판부는 환경부가 2018년 수행한 동물실험에서 실험쥐에게 폐 염증이나 폐섬유화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피해자 상당수가 CMIT·MIT 제품 외에도 PHMG 제품을 혼합 사용했던 점도 책임 규명에 어려움을 더했다.

SK케미칼의 전신인 유공이 1994년 한 일간지에 낸 ‘가습기 메이트’ 광고. '인체무해 신제품', '우리 가족 건강을 지켜줍니다' 등의 문구가 적혀 있다. 너나우리 제공

환경단체들은 그러나 소송과 별개로 정부가 지난해까지 피해구제 대상으로 인정한 5,667명 중 CMIT·MIT 성분 제품을 사용한 경우가 41%(2,312명)나 되는 만큼 제품의 유독성은 명확하다는 입장이다. 최근 CMIT·MIT의 호흡기 독성 관련 연구가 빠르게 진전된 것도 법원 판단이 달라질지 주목되는 이유다. 국립환경과학원과 경북대 연구진이 지난해 12월 공개한 연구에 따르면 두 원료에 노출된 실험쥐의 기관지 폐포 세척액을 분석한 결과 폐손상과 관련 있는 염증성 사이토카인 등이 유의미하게 증가했다. 폐질환 가능성이 시각적·정량적으로 입증된 것이다. 연구진은 이 논문에서 "이번 연구에서 얻은 결과를 고려하면 (법원의) 결론은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제조·판매 기업 책임에 대한 판단이 늦어지면서 피해자 배·보상 역시 수십 년째 난항을 겪고 있다. 피해자들이 이번 판결에 주목하는 이유다. 지난해 10월 26일 열린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홍지호 전 SK케미칼 대표와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 등에 금고 5년을 구형했다. 함께 기소된 애경산업·SK케미칼·이마트 관계자 등 11명에게는 금고 3∼5년을 선고해달라고 요청했다. 피해자 김태종씨는 “무작정 저희 편에 서달라는 게 아니다”라며 “사법부가 부디 공정한 판단을 내려주길 간곡히 부탁한다”고 말했다.

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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