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철음식처럼 싱싱한 시인의 글 소개"

송경은 기자(kyungeun@mk.co.kr) 2024. 1. 8.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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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 난다 대표 인터뷰
시·소설·에세이 등 다양한
시인 12명 365가지 글 묶은
'시(詩)의적절 프로젝트' 기획
3월 신이인·7월 황인찬 등
매달 한 권씩 릴레이 출간
지난 3일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북카페에서 만난 시인 김민정 난다 대표. 김호영 기자

"주변에서 시를 읽는 게 너무 어렵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시인들이 시만 쓰라는 법은 없지 않나. 하루에 한 편씩 어느 날은 일기, 어느 날은 소설이 될 수도 있다. 잡지처럼 누구나 가볍고 쉽게 읽을 수 있는 시인들의 글을 소개할 생각이다."

1999년 등단한 시인이자 20여 년 경력의 편집자인 김민정 출판사 난다 대표(47)가 이달 새롭게 시작한 '시(詩)의적절 프로젝트'의 기획 배경이다. 시의적절 프로젝트는 시인 12명이 각자 1~12월 중 한 달씩 맡아 릴레이로 올 한 해 동안 매달 한 권씩 출간하는 책 시리즈다. 각 책은 시인이 매월 1일부터 말일까지 하루 한 편씩 해당 월과 관련 깊은 일화나 감상 등을 시와 소설, 에세이, 인터뷰 등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쓴 글을 엮은 것이다.

시의적절 프로젝트의 전체 총괄 기획과 1월 책을 맡은 김 대표는 새해 첫날인 이달 1일 첫 번째 책인 '읽을, 거리: 김민정의 1월'을 내놨다. 지난 3일 서울 여의도의 한 북카페에서 만난 그는 새로운 시도에 들떴는지 아이처럼 눈이 반짝였다. 김 대표는 "시의적절 시리즈는 제철 음식처럼 각 계절과 시기에 맞는 시의적절한 시(詩)가 담긴 '제철 책'이라 할 수 있다"며 "열두 달 동안 매일 한 편, 매달 한 권씩 따라 읽어나가다 보면 1년이 365가지 이야기로 채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참여 시인은 김 대표가 다양한 글을 쓸 수 있는 시인들을 대상으로 작품을 직접 스터디한 뒤 각 달에 어울리는 작가를 섭외했다. 김 대표는 "어려운 시 대신 시인의 하루하루를 들여다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산뜻한 봄을 알리는 3월 책은 2021년 등단한 신인 작가인 신이인 시인이, 7월 책은 여름 분위기의 시가 예쁜 황인찬 시인이 꾸밀 예정"이라고 말했다. 추운 한겨울인 1월과 희망적인 봄을 앞둔 2월은 같은 겨울이라도 느낌이 조금 다르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김 대표는 "작품에서 2월 느낌이 나는 전욱진 시인은 2월 책을 맡았다. 원고가 왔는데 동화도 포함돼 있어 기대가 된다"고 말했다.

앞서 출간된 1월 책에는 1월 1일 편부터 1월 31일 편까지 김 대표의 글 31편이 담겼다. 지난 5~6년 편집자로 바쁘게 지내는 사이 매일 일기장에만 머무르게 했던 이야기들을 하나씩 풀어냈다. 주로 주변 인물들과 관련된 이야기다. 일례로 1월 9일 편 '때론 이른 봄이 이렇게도 들이닥치나 보다'는 30대 후반이었던 출판사 후배 서유경 씨가 갑작스럽게 심정지 상태에 빠졌다는 소식을 접한 어느 날의 이야기로 에세이가 시작된다. '나는 살아 너에게 가는데 너는 죽어 어디로 갔을까.' 1월 9일은 서씨의 생일이다.

글 한 편의 분량은 그리 길지 않다. 두세 쪽으로 끝나는 글도 많다. 절친 허수경 시인에게 받은 편지, 1999년 1월 16일 인천 대한서림에서 최승자 시인의 산문집 '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를 산 날, 이슬아 작가와 이훤 시인의 결혼식에서 읽었던 축시, 2018년 1월 3일 서울 용산 CGV에서 함께 영화를 보고 수다를 떨었던 개그우먼 고(故) 박지선 씨와의 인터뷰, 문학평론가 고(故) 황현산 선생님이 등장한 어느 날의 꿈도 눌러 담았다.

'어느 때 여느 곳' 연작 시 9편도 이번 책에 실렸다. 기도하지 못하는 여자들과 용띠인 여자들, 쓰러지는 의자들, 굴러다니는 붕대들…. 일상 속 불특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그에게 불쑥 시적으로 다가온 일들에서 출발한 시다. 김 대표는 "어느 때 여느 곳 시리즈는 두더지 게임에서 툭 튀어 나오는 두더지를 뿅망치로 잡는 것과 비슷한 느낌으로 쓴 시"라고 말했다.

김 대표가 이처럼 시를 짓는 대신 '발견'하게 된 건 그의 아버지가 2019년 뇌경색으로 갑자기 쓰러지면서부터다. 다행히 죽을 고비는 넘겼지만 당시 후유증으로 아버지는 몸을 가누지도, 제대로 말을 하지도 못하게 됐다. 점점 사라져가는 아버지를 어떻게든 붙잡아두고 싶었다. 그때부터 아버지의 말과 글을 빠짐없이 기록으로 남기기 시작했다. 항시 아버지 옆에 녹음기를 갖다 놨고 손엔 펜을 쥐여드렸다.

김 대표는 "아파서 아기가 된 아빠의 말 속에는 시가 많았다. 시인인 나조차 죽었다 깨도 절대 표현할 수 없는, 순수하고 시적인 말들이었다"면서 "내 안에 있던 시심(詩心)이 다시 깨어나는 듯했다"고 말했다. 1월 28일 편에서 그는 아버지와의 일상 대화가 담긴 녹취록과 아버지가 써준 연하장 등을 노트로 엮었다.

시의적절 프로젝트의 목표는 좀 더 많은 사람이 책을 읽도록 만드는 것이다. 김 대표는 "책이 휴대폰 속 세상과 싸울 순 없겠지만, 어떻게 하면 공존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은 계속해야 될 것 같다"며 "사람들이 이 책을 화장실에서 신문 보듯이, 신문보다도 짧으니까, 그냥 그렇게 봐주신다면 정말 좋을 것 같다"며 웃어 보였다.

[송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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