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브수다] 김의성의 '악당 12년'

김지혜 2024. 1. 8.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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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배우 김의성과 영화 '암살', '외계+인' 시리즈에서 호흡을 맞췄던 최동훈 감독은 그의 연기를 이렇게 평했다.

"연기라는 거대한 저택이 있다면 어느 방 한 칸은 오직 김의성만이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다"

배우에게 '배우만의 방'이 있다는 칭찬만큼 좋은 게 있을까. 지난 12년간, 김의성의 연기 행보를 보고 있자면 그 방에는 여러 얼굴로 변모하는 '악당' 한 놈이 살고 있으리라 생각된다. 2011년, 긴 연기 공백을 깨고 영화계에 복귀한 이후 그는 '나쁜 놈' 캐릭터로 전성기를 구가했다.

배우는 '천의 얼굴'을 가졌다고 하지만 대중이 그 배우에게 바라는 얼굴이라는 게 있다. 지금 김의성에게 익숙한 얼굴은 정 한 점 떼줄 수 없을 것 같은 '악인'이다. 그도 이제는 즐기는 분위기다.

흥행의 달콤한 맛도 봤다. '부산행'과 '암살', 극한직업'에 이어 최근에는 '서울의 봄'을 통해 네 번째 천만 흥행에 성공했다.

가장 최근작인 '서울의 봄'의 오국상 국방장관은 김의성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이었다.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지연시킨 건 전두광을 위시한 군부 세력이지만, 그들의 반란을 승인해 준 '엑스맨'은 오국상이었다. 김의성이 만든 또 하나의 '명존세'('명치를 아주 세게 때리고 싶다'는 말의 준말) 캐릭터였다.

한국 영화를 사랑하는 관객이라면 모두 다 아는 사실에 대해 말해보고자 한다.

'김의성의 악역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 "내가 맡은 역할을 악인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김의성에겐 악역에 관한 철학이 있다. 크게 두 가지로 ▲ '내가 맡은 역할을 악인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그 인물을 사랑하려고 애쓴다'이다.

"배우란 직업은 (선택받아야 하기에) 수동적이다. 주어진 역할을 열심히 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내가 맡은 역할을 악인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사람은 누구도 자신을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진 않는다. 내 안에 있는 약함, 악함의 싱크를 맞춰서 이해하려고 하고 그 사람의 정당성을 기를 쓰고 찾아내려고 한다"

캐릭터를 사랑하는 것 또한 같은 맥락이다. 그는 "드라마 '슈룹'을 촬영 할 때도 매회 김혜수 씨랑 싸우는데 지는 게 매번 억울하더라. 대본 보면서 '또 졌네' 했다. 그 정도로 내 역할을 사랑한다"며 "악역을 규정하자면 욕망이 강하고, 그 욕망이 도덕을 이기면 악인이 되는 거다. 그걸 또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배우가 어떤 인물을 연기할 때 욕망이 강하고, 행동하는 것만큼 매력 있는 캐릭터는 없다. 주연이라면 모르겠지만 조연이라면 훨씬 매력이 있다"고 자신의 연기 지론을 밝혔다.

'서울의 봄'의 오국상에 대해서는 '악인'이 아닌 '약인'이라고 규정했다.

"욕망이 도덕을 지배한다기보다는 겁이 도덕을 지배하는 사람이랄까. 그렇게 독하게 표현하지 않아도 이 사람의 겁이 영화에서 유발하는 효과가 크기에 좀 더 자유롭게 연기를 했다. 내 역할뿐만 아니라 전체적 흐름 안에서의 위치까지 생각했다. 영화 내내 군복 입은 아저씨들이 소리를 지르는데 이 사람에게 카메라가 오면 (어떤 의미에서든) 극의 숨통이 트인다. 그런 포인트로 연기하다 보니 오국상이 등장할 때 웃음도 나오고 극의 분위기가 조금 가벼워진다. 대체로 원하는 목적을 이뤄낸 거 같다. 그런데 관객들이 그렇게 사랑해 주실 줄(?)은 생각도 못했다. 참모 차장만 미워할 줄 알았더니.(웃음) 밉고 때려주고 싶은데 웃음은 나는, 이런 역할이 만들어지기 어려운데 두 가지 색깔로 잘 만들어낸 것 같다"

비록 그 감정이 분노 혹은 화(火)일지언정 관객들의 감정선을 잘 건드린다는 건 김의성의 특별한 능력이다. 그는 그 비결에 대해 "인물을 상상에서 찾아내기보다는 내 안에서 건드리고자 한다. 오국상은 총소리가 나면 국방장관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도망가려고 한다. '내 안에 이런 면이 있나?'라면 질문을 해보면 그런 면이 있다. 나뿐만 아니라 누구나. 물론 어떤 것에는 목숨 걸고 달려들고, 지키려 할 때도 있다. 우리는 누구나 다중 인격이다. 캐릭터에 맞는 걸 잘 탐구하고, 그걸 극대화해서 연기하면 연기에 쾌감이 든다"라고 말했다.

의외로 김의성은 연기할 때 애드리브를 구사하지 않는다. 그는 "이 작품에서는 감독님이 애드리브를 몇 개 주셨다. 한편으로는 내가 생각해야 하는데 부끄럽다는 생각도 들더라. "야, 나 많이 찾았냐"는 오국상을 대변하는 대사라 너무 재밌더라"고 비하인드 스토리를 밝혔다.

'서울의 봄'에서 김의성의 촬영 일수는 5~7일 남짓이었다. 다른 주연급 배우들 대부분 60~70회 차 촬영을 소화한 것을 생각하면 이토록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출연이 있을까 싶다. 그는 촬영이 없는 날에도 현장을 찾아 명배우들의 앙상블을 구경했다고 했다.

"군인들이 득실득실했다. 주연이든, 조연이든 낯익은 얼굴들이 군복 입고 돌아다니다 보니 예비군 훈련 와서 옛날 사람 만난 느낌이랄까. 반란군과 진압군 진영을 오가며 촬영하는 모습을 보면 너무 웃겼다. 배우들이 극에 과몰입해서 서로 경계하고 회식도 따로 하고 그러더라. 황정민, 정우성 연기하는 것만 구경해도 너무 재밌고 신났다"

◆ 김성수 감독과의 오랜 인연 "예전엔 무서웠는데 지금은 '안 선생' 같아"

김의성 감독은 김성수 감독과 '서울의 봄'으로 첫 호흡을 맞췄다. 친분은 20년 이상 된 사이다. 김의성은 "1990년대쯤 영화를 준비하는 신인 감독과 신인 배우로 만났다. 그때 감독님이 연출하신다는 단편 영화에 출연할 뻔 했는데 내가 해외에서 뭘 촬영할게 생겨버리면서 불발됐다"고 그와의 엇갈린 인연을 밝혔다.

"현장에서 되게 무섭다고 들었다.(웃음) 특히 '무사' 찍을 때 살벌했다고. 그 말을 꺼내면 감독님은 '그래. 나 그땐 그랬지'하신다. 이젠 뭐랄까. '슬램덩크'의 '안선생'같은 느낌이랄까. 현장에 오는 단역배우들에게도 일일이 캐릭터, 연기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해 주시고 그렇게 친절하실 수가 없다"

김의성은 '서울의 봄'의 흥행을 언론시사회 이후에 예감했다. 그는 "언배 시사 이후의 반응을 보고 좀 놀랐다. 기자들이 진심 어린 후기를 SNS에 쏟아내더라. '야, 뭐가 있나', '우리 영화 진짜 괜찮은가' 싶더라. 영화를 보면서 '대단하다', '잘 될 수 있겠는데'라는 막연한 생각은 했지만 사실 이 정도로 흥행할진 몰랐다. 가장 놀란 건 객석에 꽉 찬 관객 풍경이었다. 이 영화를 사랑해 주고, 배우들을 사랑해 주는 걸 넘어 무대인사를 다니면서 엄청난 감동을 받았다. 관객을 향한 감사의 무대인사를 다니는데 감독과 배우들이 감동을 받고 있는 상황이랄까. 또한 이 무인은 정우성을 위한 자리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한국 영화의 기둥이자 간판인 이 배우가 아직 달성하지 못한 무엇(천만 흥행)을 바라고 축하해 주는 마음도 있었다"라고 말했다.

'서울의 봄'의 성공으로 근, 현대사 영화들의 제작이 활기를 띌 수도 있을 것 같다고 하자 "하나가 잘되면 물꼬를 트긴 할 거다. 그러나 결국은 '뭘 만드냐'보다는 '어떻게 만드느냐'가 더 중요하다. 그래서 현상만 가지고 뭐라 하기는 힘들다. '서울의 봄'은 아웃라이어(Outlier·평균치에서 크게 벗어난 표본)라 할 정도로 잘 만들어진 영화라 이 흥행을 기획의 힘이나 사회 분위기로만 치부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이 영화의 놀라운 흥행은 엄청 영화를 잘 만들어서 외에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아직 모르겠다"라고 조심스럽게 답했다.

'남영동 1985', '1987', '서울의 봄' 등 대한민국의 근, 현대사를 다룬 영화에 잇따라 출연한 배우로서 그의 의견을 물었다. 픽션과 팩션을 결합한 근,현대사 영화는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결국 영화와 드라마건 상상력이라고 생각한다. 역사나 실화 기반이라고 해도 영화니까 어찌 됐건 해석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고증에 집중하면 만족하는 소수와 만족하지 못하는 다수가 생긴다. 고증을 대하는 태도와 상상력의 결합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 '국민 김의성'의 목소리vs'배우 김의성'의 소신

한때 김의성은 거장의 페르소나였다. 그는 한국 영화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명작으로 꼽히는 홍상수 감독의 데뷔작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1996)의 주인공이었다. 고뇌에 찬 지식인을 연기하며 작가주의 감독의 분신 역할을 했다. 서울대 경영학과 출신이라는 지적인 이미지는 혼란한 사회에 부적응하는 캐릭터에 더없이 어울렸다.

그러던 어느 날 김의성이 영화계에서 사라졌다. 베트남으로 넘어가 사업가로 변신했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김의성을 다시 본 건 정지영 감독의 '남영동 1985'(2012) 시사회와 뒤풀이 자리였다.

그는 왜 돌연 한국을 떠났을까. "연기를 너무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이 일하는 사람에게 폐를 끼치는 것 같았다. 그런 걸 못 견디겠더라"는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베트남에서 사업을 했고 쫄딱 망했다.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도 '다시 연기를 하진 않겠다'고 생각했다. 한국에 들어와 다시 투자를 받아서 나갈 계획이었다. 투자자와 만나기로 했는데 약속이 지지부진한 사이 아버지가 암에 걸리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병시중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때 홍상수 감독이 "'북촌방향'(2011)이라는 영화가 있는데 하루만 출연해보지 않을래?" 하더라. '예' 소리가 나오더라. 3~4일 정도 찍었는데 뭐랄까. 그냥 한 일주일 전에 촬영하고 다시 촬영하는 느낌이랄까. 술술 풀리고 재밌더라. 그때 홍 감독님이 '한국 영화계에 너 같은 사람 없으니까 너만 할 수 있는 게 있을 거다. 연기자로 쭉 살아도 먹고사는데 지장이 없을 거다'라고 하셨다. 그런데 그때도 그냥 흘려들었다"

김의성이 연기가 가장 재밌는 일이라는 걸 깨달은 것은 아버지 덕분이었다.

"아버지의 병세가 점점 깊어졌다. 어느 날 병상에서 날 부르더니 '야, 재밌게 살아라' 하시는 거다. 한평생 '공부 열심히 해라', '나이 들면 연극하지 말고 취직해라'라는 말만 해오신 분인데... 그러고는 돌아가셨다. 장례식장에 앉아서 손님이 오면 절하고, 아니면 멍 때리고 있었다. 아버지의 '재밌게 살아라'라는 말이 뭘까를 생각해 봤다. '배우를 다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사람들에게 '다시 배우 한다'고 얘기하고 다녔다. 그러면서 조금씩 일이 들어왔다. '관상'(2013)라는 작품을 만났고, 지금까지 배우로 밥 벌어먹고 살게 됐다"

김의성은 10년의 공백을 딛고도 빠르게 충무로에 안착했다. 업계를 떠나 지낸 시간은 오히려 돌아와 연기에 집중하고 즐길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그는 그 모든 공을 과거의 시간에 돌렸다.

"운이 좋았던 게 홍상수 감독의 데뷔작에 출연하지 않았나. 그 작품이 당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그 영화를 보고 자란 최동훈, 한재림 감독이 돌아온 날 써줬다. 그래서 부드럽게 업계에 다시 발을 들이게 됐다. 당시엔 출연작 중 하나일 뿐이었지만 배우로 다시 시작하게 된 가장 큰 자산이 됐다"

과거의 김의성은 조금 예민하고 날카로운 이미지였다면 지금의 김의성은 호탕하고 푸근한 느낌이다. 즐기는 삶을 사는 천상 광대처럼 보였다.

"35~45세까지를 연기를 하지 않은 채로 건너뛰었다. 배우로서 가장 중요한 시기에 연기를 못한 게 아깝긴 하지만, 그때 배우를 했으면 지금 이렇게 행복했을까 싶다. 지금 이렇게 연기를 할 수 있고,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어 감사하고 행복하다. 배우로서는 안타깝지만 인간으로서는 행복한 공백이었다"

'남영동 1985'의 강과장', '소수의견' 홍검사, '관상'의 한명회', '암살'의 집사, '부산행'의 용석, '창궐'의 이조, '외계+인'의 자장, '서울의 봄'의 오국상에 이르기까지 악당만 12년 차다.

'돌아온 배우' 김의성은 고뇌하는 지식인에서 자신의 이익만을 쫓는 이기주의 전형으로 변태 했다. 개인적 소신이나 철학과는 반대되는 연기 행보다. 특히 근,현대사를 다룬 영화에서 손가락질받을만한 '악당'을 자처하며 관객의 공분을 자극했다. 대중들은 김의성의 이런 행보를 흥미로워하고 있다.

"뭔가 의도를 가지고 그런 건 아니다. 사실 '1987'(2017)은 좀 그런 마음이 있었다. 내가 23살 때의 이야기고, 정말 뜨겁고 예민했던 시절이었다. 그때의 그 상황에 들어가 보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제작 당시 정치적으로도 (영화를 만들기) 쉬운 때가 아니었어서 어떤 식으로든 영화에 기여해야겠다는 마음이 있었다. 그러나 그걸 제외하면 시대극이나 대작 등 배우가 많이 나오는 영화에서 주인공이 아닌 조연을 하다 보니 이런저런 역할을 하게 된 거고 그것이 결과적으로 대중들에게 하나의 방향으로 보인 것 같다"

김의성은 배우 활동 외에도 시사 프로그램 진행, 다큐멘터리 연출 등 외도도 감행했다. 미국 할리우드와 달리 배우가 정치적 소신이나 목소리를 내는 것에 달갑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한국에서는 튀어 보일 수 있는 행보다.

그는 이에 대해 "나를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의사를 드러내는 일은 민주사회에서는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과정과 결과에서 상처받는 일도 많았다. 그게 단지 정권이나 정치 성향에 따른 공격이 아니라 무차별 공격처럼 여겨질 때도 있었다. 나름 균형 감각을 가지고 해왔음에도 위축될 때도 있더라. 제 멋대로, 대충 살았음에도 일이 안 끊기고 있는 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이제는 책임져야 될 식구들이 생기다 보니 더 신중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사실 이런 고민을 안 하는 사회가 만들어져야 하는데... 쉽진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김의성은 2023년 '안컴퍼니'라는 회사를 만들었다. 연기 활동과 더불어 현재 가장 몰두하고 있는 것도 '회사의 성장'이다.

"매니지먼트는 신인을 발굴하고 성장시키는 게 가장 중요하다. 신인 배우도 모실 수 있는 위치로 키우고 싶고, 기존의 훌륭한 배우들도 데려오고 싶다. 우리의 목표는 '하이브'다(웃음)"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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