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가 전업 주부서 ‘불닭볶음면 신화’ 주인공으로 외신도 주목
외환위기 때 부도 이후 경영에 참여
“며느리로서 성공 거둔 독특한 사례”
매운 음식 식당 긴 줄 보고 개발 결심
북미 소비자들 입맛 사로잡으며 인기
미국 유력 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이 6일(현지시간) 매운 맛을 기피하는 북미 소비자의 입맛을 사로잡은 ‘불닭볶음면’을 집중 조명했다.
WSJ는 이날 ‘500억달러(약 66조원) 규모의 라면시장을 뒤흔든 여성’이라는 제목으로 김정수 삼양라운드스퀘어(옛 삼양식품 그룹) 대표이사 부회장과 그가 주도한 불닭볶음면의 탄생 비화를 소개하는 기사를 실었다.
WSJ는 요리하기 쉽고 저렴한 식사를 찾는 소비자가 늘어나면서 전 세계적으로 즉석면 시장이 급성장한 것을 불닭볶음면 성공의 배경으로 꼽았다. 시장조사업체 유로모니터 인터내셔널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라면 시장은 약 500억달러 규모로 성장했는데 이는 5년 전보다 52% 증가한 수치다.
또 다른 주요 요인 중 하나는 상대적으로 아직 개척되지 않은 미국 시장의 성장이다. 본래 미국 시장에서 인스턴트 라면은 값싼 간식으로 여겨져 왔지만 소비자들이 지출이 신중해지고 레스토랑 버전의 라면이 인기를 얻으면서 식사용 라면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WSJ는 “삼양의 불닭볶음면은 타바스코 소스보다 약 2배 가량 맵고, 가격도 다른 제품보다 3배 정도 비싸다”면서 라면계의 터줏대감격인 마루짱 또는 닛신보다 한층 모험적인 소비자들을 겨냥하고 있다고 전했다.
불닭볶음면은 현재 미국 코스트코와 월마트, 앨버슨 등 대형 마트에서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다. WSJ는 미국 슈퍼마켓이 예전같으면 틈새 아시아 식료품점으로 밀려났을지 모를 ‘매운 라면’의 세계적 판매 통로가 됐다고 분석했다.
미국 월마트에 따르면 삼양의 불닭볶음면은 현재 가장 많이 팔리는 프리미엄 라면 중 하나다. 삼양식품은 코스트코가 일부 서해안 매장에서 불닭볶음면 판매를 테스트한 후 올해부터 미국 전역 출시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매운 라면에 대한 아이디어는 김 부회장이 고교생 딸과 함께 주말을 맞아 서울 도심을 산책했던 2010년 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자극적인 맛으로 유명한 한 볶음밥 집에 긴 줄이 늘어서 있는 것을 발견한 뒤 김 부회장은 극도로 매운 음식에 대한 사람들의 열정을 확인하고 이를 라면으로 만들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이후 삼양식품 개발팀은 닭 1200마리와 소스 2t을 투입했고, 세계 각국의 고추를 연구하고 한국 내 매운 음식 맛집을 찾아다니며 매운 라면 개발에 매진했다. 김 회장은 “처음 시제품을 시식했을 때 (매워서) 거의 먹지 못했지만, 오래 먹다 보니 갈수록 맛있고 익숙해졌다”고 털어놨다.
불닭볶음면은 2012년 출시 후 유튜버 등 인플루언서들의 먹방을 시작으로 입소문을 타기 시작해 K팝 스타 BTS와 블랙핑크가 소개하면서 전세계적인 인기가 치솟았다. 불닭볶음면의 인기에 힘 입어 삼양식품의 주가는 지난해 코스피가 19% 상승하는 동안 70% 뛰었다. 삼양 제품을 포함한 한국의 라면 수출은 올해 사상 최대 규모가 될 것으로 점쳐진다.
김 부회장은 삼양식품 창업자인 고 전중윤 전 명예회장의 며느리로, 삼양식품이 외환위기 때 부도를 맞자 1998년 삼양식품에 입사해 남편인 전인장 전 회장을 돕기 시작했다. 그는 2020년 남편인 전인장 전 삼양식품 회장과 함께 약 50억원에 달하는 회사 자금을 횡령한 혐의 유죄로 확정 판결을 받으면서 취업이 제한됐지만, 2020년 말 법무부의 특별 승인으로 경영에 복귀했다. 이어 지난해 8월 대통령 사면을 받았고 다음 달 삼양라운드스퀘어의 대표이사로 선임됐다.
노정연 기자 dana_f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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