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실에 총기 휴대, 가자지구에 가족…유대·아랍 학생 ‘살얼음 공존’
인구 26만의 하이파는 이스라엘 북부에 자리한 이 나라에서 세번째로 큰 도시이다. 지중해가 바라다보이는 이 도시의 한쪽 언덕에는 하이파 대학이 자리하고 있다. 이 대학은 아랍 출신 학생이 40%에 이르는 다양성이 숨쉬는 배움터이다. 그러나 지난해 10월 가자지구에서 전쟁이 시작되고 석 달이 흐르면서, 이곳에도 여파가 밀려들고 있다고 뉴욕 타임스가 7일(현지시각) 보도했다.
하이파 대학은 전쟁과 무관한 학문의 전당이지만, 실제로는 많은 학생이 이번 전쟁과 직간접적으로 얽혀 있다. 많은 아랍 출신 학생들이 가자지구 가족을 둔 경우가 많아 민간인 피해에 민감하다. 반면 몇몇 학생들은 이스라엘방위군(IDF)의 예비군으로 소집돼 전투에 참전했다가 짧은 겨울학기에 맞춰 학교로 돌아왔다. 이들은 서로 같은 캠퍼스에서, 또 어떤 경우는 같은 교실에서 옆자리에 앉아 함께 배우고 있다.
법학과 4학년 이츠하크 코헌(28)은 며칠 전 가자 전투에서 돌아온 예비군 학생이다. 아직 소집이 해제된 것이 아니어서, 어딜 가든 개인화기를 갖고 다녀야 하고 지휘관이 호출하면 부대로 곧바로 복귀해야 한다. 이 때문에 학교 캠퍼스에서는 코헌처럼 어깨에는 백팩을 메고 손에는 엠(M)-16 같은 반자동소총을 들고 다니는 학생들을 볼 수 있다. 코헌은 “올해 학업을 잇는 건 동료들을 지키는 것보다 중요하진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대학은 학생들이 전쟁 이전 같은 분위기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론 로빈 총장은 “우리는 학생들과 접촉해 그들이 갖는 두려움을 달래주려고 가능한 모든 걸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학교에선 포커스 그룹을 운영해 학생들의 불안을 점검하고 아랍 교수와 유대 교수 모두 학생들과 함께 어울려 사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대화하고 있다.
그렇지만 불안과 긴장이 저변에 흐르는 것을 막진 못한다. 한 조사에 따르면, 아랍 학생과 유대 학생의 50% 이상이 같은 교실에 앉아 있는 것에 불편함을 느낀다. 심지어 아랍 학생 두 명 중 한 명은 캠퍼스로 돌아오지도 않았다.
아랍 출신 이스라엘 시민권자 학생인 니콜 라셰드(21)는 “아랍 학생들 사이에 언론의 자유가 축소되고 있다는 두려움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실제 지난해 10월 가자 전쟁 이후 하이파 대학에선 9명의 학생이 소셜미디어에 친하마스 의견을 표명했다는 이유로 제적됐다. 아랍 학생들 사이에 “전쟁을 비판하면 더는 학업을 계속할 수 없게 되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팽배한 배경이다. 라셰드는 “아랍 학생들은 ‘가자지구에서 숨진 아버지 얘기를 소셜미디어에 올리는 것도 문제삼을 것’이라고 우려한다”고 말했다.
라셰드는 지난해 10월7일 하마스의 기습공격에 대해 비판적이지만 동시에 최근 가자지구에서 민간인 희생자가 늘어나는 것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다. 라셰드는 “하마스와 이스라엘의 충돌에 대해 말하는 건 매우 복잡하다. 완벽하게 말해야 하기 때문이다”며 “그렇지만 완벽한 문장은 없다. 그러니까 나는 차라리 아무 말도 안 하려 한다”고 말했다. 그는 “아랍인이기 때문에 테러를 지지하지 않는다고 말하도록 늘 강요받는다”며 “정말 엿 같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아랍 출신 정치학 교수인 아사드 가넴은 “이번 전쟁 이전에도 아랍 학생들이 학교를 내 집처럼 편안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하는 조치는 별로 없었다”며 “지금은 상황이 더 나빠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얼마 전 몇몇 학생들로부터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로 위협받은 적이 있다. 그는 이번 갈등과 관련해선 수업시간 중 토론 시간을 줄여 논쟁이 격화하지 않도록 조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스라엘 학생도 그들 나름의 두려움이 있다. 1학년인 다니엘 샤크노비치(24)는 몇몇 동료 학생이 하마스를 지지한다고 우려했다. 그는 “다른 사람이 마음 깊은 곳에 무슨 생각을 하는지 누구도 모를 것”이라고 말했다.
예비군 학생 코헌은 학교에 들고 온 소총을 가리키며 “이 총을 들고 교실에 들어오는 게 재미있는 일은 아니다”며 “무엇보다 무겁다”고 말했다. 그는 “충격과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최선의 방법은 일상의 복귀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수업 중 지휘관의 호출을 받았다. “부대로 돌아오라. 지금.” 코헌은 곧바로 짐을 싸고 소총을 메고 떠났다. 일상이 돌아오려면 아직 좀 더 기다려야 할 것이다.
박병수 선임기자 suh@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이재명 습격’ 도운 혐의 70대 아산서 긴급체포
- 가자지구 어린이 하루 10명 이상 다리 절단…마취 없이 수술도
- 이낙연, 11일 민주당 탈당…늦어도 2월 초 창당대회
- 컵라면 챙겨, 3시간 걸어 밥 찾으러…노토 강진 2300명 고립
- [단독] ‘대통령실 진입 시도’ 구속영장 신청 6명 검찰 단계서 기각
- “선생님, 비교가 뭐예요?”…스마트폰 쥔 ‘도파민 인류’ 어휘를 잃다
- 스티븐 연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성난 사람들’ 3관왕
- “법무부, 김건희 여사 변호인 전락”…민주, 고발 나선다
- ‘지하철 침묵시위’ 전장연 대표 연행…혹한 속 실외 50분 대기
- 아픈 3살 아이, 생산 중단된 ‘딸기고래밥’ 먹고 싶단 말에 간호사가 한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