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거면 지역의사제 법안 폐기"…이재명 헬기이송에 의사회 항의 빗발
'정치 텃밭' 성남시 의사들 "진료 새치기 사과하라" 요구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119응급의료헬기(소방헬기) 이송을 두고 각 지역 의사회의 규탄이 잇따르는 가운데, 8일엔 이재명 대표의 정치 텃밭인 성남시를 비롯해 대구시·울산시·대전시 각 지역 의사회에서 항의 성명이 쏟아졌다. 지난 4일 부산시 의사회에서 첫 반발 성명이 나온 이후 이날까지 9개 지역으로 확산됐다.
게다가 이재명 대표를 비롯해 이번 이송에 관여한 것으로 알려진 그의 측근 등 3명은 의사 단체로부터 검찰에 고발당했다.
8일 성남시의사회는 긴급 성명을 통해 "야당 대표 지위를 남용해 서울대병원으로 응급헬기 이송을 요구하고 진료 새치기를 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반성과 사과를 요구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더불어민주당은 필수의료, 지역의료 붕괴 문제 해결과 거리가 먼 공공의대와 지역의사제를 국회 보건복지위에서 통과시킨 주역"이라면서도 "하지만 정작 그 당의 대표는 특권을 이용해 부산에 2대밖에 없는 응급헬기를 이용해 서울대병원으로 이동하고, 심지어 일반 국민들은 발을 동동 구르며 자기 순서를 기다려서 받는 수술을 새치기해 받는 이율배반적 행동을 보여줬다"고 질타했다.
성남시의사회는 '연고지 병원'으로의 이송이 목적이었다면 이재명 대표가 성남시장에 재임하던 시절, 지역의료 발전과 공공의료를 표방하며 시민 세금으로 헬기장까지 갖춘 성남시의료원으로 이송을 요구했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이들은 "본인도 이용하지 않으며 매년 수백억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공공의료기관 성남시의료원은 대체 누구보고 이용하라는 것인가"라며 "이런 공공병원을 전국에 70개나 지으려 했다는 그의 대선공약에 새삼 실소를 금하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대구시·울산시·대전시 각 의사회도 이날 목소리를 냈다. 대구시의사회는 8일 성명을 내고 "지역 의료를 살리자며 지역의사제와 공공의대 설립을 주장한 야당의 대표가 지역의 우수한 의료기관을 무시하고 서울에 있는 병원에 119 헬기까지 이용해서 가는 것은 모순"이라며 "민주당이 단독 입안한 공공의대, 지역의사제에 대한 법안을 폐기하고 실효성 있는 정책 제정을 촉구한다"고 덧붙였다.
또 울산의사회는 "최근 정부·여당에서 의대 정원 확대를 일방 추진하는 와중에, 더불어민주당은 한술 더 떠 보건복지위원회에서 공공 의대와 지역의사제 법안을 여당과의 합의 없이 일방적인 날치기로 통과시켰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부산대병원 권역외상센터는 그동안의 평가에서 4년 연속 A등급을 받은 국내 최고 수준의 권역외상센터"라며 "그럼에도 이재명 대표의 서울대병원으로의 헬기 특혜 이송은 촌각을 다투는 위중한 다른 응급 환자의 이송 기회를 놓치는 잘못된 결정"이라 지적했다.
대전시의사회는 "처음에는 초응급자이며, 서울대병원에서 치료하는 게 최선의 치료라 후송한 것처럼 언급했지만 시간이 흐르자 초응급자는 아니었고 부산대병원을 이용하는 응급환자를 위해 연고지인 서울대병원으로 전원한 것이라고 설명했다"며 "변명이 나올 때마다 지방 의료가 희화화되고 있다"고 비난했다.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장은 "부산대병원이 서울대병원 보다 외상센터의 규모나 의료진의 수, 연간 치료 환자 수가 압도적으로 많아 이 대표를 서울대병원으로 이송할 의학적인 이유가 전혀 없었다"고 봤다. 부산대병원 권역외상센터는 국가지정외상센터로 아시아 최대 권역외상센터다. 2개의 소생 처치실, 응급진료구역 12병상, 3개의 외상중환자실, 3개의 외상 수술실과 82병상의 외상 전용 병동, 다양한 진료과의 교수진 42명과 전담 전문의 17명, 간호사 157명을 갖추고 있다. 반면 서울대병원 중증외상최종치료센터는 서울시가 지정한 외상센터로 전담 전문의는 6명이다.
임현택 회장은 "야당 대표가 국회의원들을 동원해 서울대병원으로의 이송을 요청한 건 의료진에 대한 갑질이고 특혜 요구이자 부산대병원과 서울대병원에 대한 업무방해 행위"라며 "이재명 대표는 2021년 12월 대통령 후보 시절 지역의료 격차 해소를 공약으로 발표했다. 부산대병원 국가지정외상센터가 우리나라 최고 수준의 센터이므로 부산대병원에서 수술받는 것이 본인 말을 지키는 것이었다"고 꼬집었다.
이들은 이번 이송의 경우 소방청의 '119응급의료헬기 구급활동지침'의 제4조(응급의료헬기 요청기준)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임 회장은 "사고 당시 부산에는 119응급의료헬기(소방헬기)가 1호기(AW-139)와 2호기(BK-117) 등 총 2대가 있었지만, 이 중 2호기(1997년 도입)는 교체를 앞두고 있을 정도로 노후화해 실제 1호기 위주로 운행하고 있었다"면서 "이 대표가 119응급의료헬기를 이용하는 동안 부산지역은 사실상 '119응급의료헬기 공백 현상'이 발생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는 지난 4일자 머니투데이 보도를 인용한 것이다.
이어 5일 서울시의사회는 "거대 야당 대표가 정작 본인에게 위급 상황이 닥치니 의료전문가의 의견을 무시하고 가족이 원한다는 단순한 이유로 지역 최고 중증외상센터의 치료를 외면하고 응급 헬기를 타고 서울대병원을 찾아 날아가 버리는 모습을 보여줬다"며 "이재명 대표의 헬기 특혜 이송은 모든 국민이 지키는 의료전달체계를 뛰어넘는 선민의식과 내로남불 행태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말았다"고 비판했다.
같은 날 광주시의사회는 "(이재명 대표는) 다른 응급 환자가 헬기를 이용할 기회를 박탈한 것이다. 응급 처치를 한 부산대병원은 권역외상센터평가에서 4년 연속으로 최고 등급인 A등급을 받는 등 외상 치료에서 손꼽히는 병원"이라며 "특권의식에 몰입된 행동"이라고 성토했다. 경상남도의사회도 "지금의 이 모든 문제는 의료가 정치의 도구로 몰락한 데 가장 큰 원인이 있다"며 "정치인들은 국민의 눈을 가리고 전문가 의견은 밥그릇 지키기로 폄하하며 숫자놀음과 표심의 향방에만 관심이 있는 듯하다"고 날을 세웠다.
6일 전북의사회는 이 대표의 헬기 이송에 대해 "국민의 눈높이로 보면 그렇게 이송하는 건 어렵기도 하고, 국민들에게 권유하고 있는 의료전달 시스템에도 벗어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지역의료를 살리기 위해서는 지역에서 진료할 수 있는 환자는 지역의료기관을 이용하자는 인식이 생길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우선"이라며 "이를 위해 정치인을 비롯한 사회지도층이 모범을 보여야 마땅함에도 그렇지 못한 모습을 보면서 정치권의 각성을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정심교 기자 simky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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