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이 미래다] 〈111〉세계 33번째로 남극조약 가입
“남극조약 가입을 올해 적극 추진하겠습니다.”
1986년 1월 22일 오전 전두환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이원경 외무부 장관으로부터 새해 업무계획을 보고받았다.
이원경 장관은 이 자리에서 “국력 신장에 따른 국제 지위 향상을 위해 경제기술협력 협정 등 양자조약 체결과 남극조약 등 다자조약 가입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보고했다.
이 장관은 “남극조약 등 다자조약을 위해 대공산권 외교를 강화하고 중국과 소련에 대한 연구를 강화하며, 이 분야 전문가를 양성할 계획”이라면서 “공산권 국가와 비정치 분야 교류를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남극 진출에 대한 전두환 대통령의 관심은 각별했다. 전 대통령은 1985년 11월 6일 한국남극관측탐험대가 한국 최초로 남극탐험에 나섰을 때 외무부에 “미국과 칠레 정부와 협조해서 우리 탐험대에 긴급사태가 발생할 경우 탐험대 안전에 만전을 기할 수 있도록 협조 요청을 하고, 주재공관에서 탐험대에 필요한 모든 편의를 제공하라”고 특별지시했다. 전 대통령은 탐험대가 귀국하자 전 대원을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을 함께하며 이들을 격려했다.
남극조약은 남극대륙을 평화롭게 이용하기 위한 국제 규약이다. 미국, 영국, 일본, 칠레, 소련 등 12개 국가 대표들이 1959년 12월 1일 미국 워싱턴에 모여 체결했다.
남극조약은 전문과 14개 조항으로 구성했다. 남극조약 전문은 남극의 평화적 이용, 과학 조사와 교류 허용, 영유권 주장 금지, 군사 행동 금지 등이 주요 내용이다. 남극조약은 1961년 6월 23일부터 효력을 발휘했다.
우리나라는 1978년 처음 남극조사에 나섰다. 당시 수산청(현 해양수산부)이 남극해 해양 생태계 조사와 크릴조업을 위해 시험조사선단을 파견한 게 최초다. 조사단을 태운 5500톤급 '남북'호는 그해 12월 7일 부산을 떠나 남극 인근에서 해양 생태계를 조사하고 1979년 3월 7일 크릴 510톤을 싣고 귀국했다. 이후 한국은 1988년까지 8회에 걸쳐 시험조업을 했다.
그러나 1980년대 초까지 남극조약에 대한 정부의 관심도는 그리 높지 않았다.
조광제 전 주칠레 대사가 회고록에서 밝힌 내용. “내가 주칠레 대사로 부임했을 때인 1981년 9월에는 남극의 중요성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그런데 부임해 보니 남극 크기가 호주의 1.5배이고, 주변 대륙붕에는 석유 등 각종 지하자원이 묻혀 있고, 크릴새우 등 식량자원이 풍부하다는 걸 알았다. 비록 영유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지만 미국 등 여러나라가 남극조약에 가입해 탐사연구 활동을 하고 있었다. 남극기지 활동은 당시 칠레가 가장 활발했다. 나는 칠레 관계기관들을 수시로 방문해 남극조약에 관한 자료를 얻어 외무부 본부로 보내면서 우리나라도 남극조약에 하루속히 가입해야 한다고 건의했다.”(한 직업외교관의 회상록)
남극조약 가입은 남극조약협의당사국 규정에 따라야 한다. 방법은 두 가지였다. 유엔 가입국의 경우 언제든지 남극조약에 가입할 수 있었다. 아쉽게 한국은 당시 유엔 가입국이 아니었다. 다른 방법은 남극조약 협의 당사국 전원의 동의를 얻는 일이었다.
한국이 처음 남극조약 가입을 추진하자 국교가 없던 공산권 국가들이 반대했다. 이 같은 기류는 한국 남극관측탐험대가 1985년 11월 남극에 도착해서 그곳 기지를 방문해 88서울올림픽을 화두로 대화를 시작하면서 확 바뀌었다. 소련·중국·폴란드 기지들이 한국 가입에 긍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중국기지 대장은 한국탐사대를 초청해 오찬까지 제공하면서 “한국이 킹조지섬에 진출하면 우리가 적극 지원해 주겠다”고 말했다.
이 같은 변화는 한국의 남극조약 가입 청신호였다. 남극조약 수탁국인 미국도 한국 가입을 적극 지원했다.
외무부는 1986년 4월 24일 국무회의 심의 안건으로 '남국조약 가입'을 의안번호 182호로 제출했다. 외무부는 제안 이유로 △광물 수산자원 보고인 남국대륙에 진출하고 미지의 세계에 대한 국민의 진취적 기상을 고취하며 △석유와 광물자원 개발에 참여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하기 위함이라고 밝혔다. 이 안건은 그해 5월 1일 국무회의 심의를 통과했다.
전두환 대통령은 5월 15일 외무부가 마련한 '남극조약 기입' 문서를 재가했다.
외무부는 전 대통령에게 조약 수탁국인 미국이 한국에 공식 가입을 요청하면 즉시 외무부 장관 명의로 가입서를 미국에 기탁하겠다고 보고했다. 아울러 남극조약 가입시 관보에 실을 공포안과 국무회의 회의 내용 등도 설명했다.
외무부가 작성한 남극조약 가입서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남극조약은 1959년 12월 1일 미국 워싱턴에서 채택했고 대한민국은 남국 탐사와 해양생물 자원 보존 활동에 관심이 있는 국가로 동 조약 제13조 1항에 따라 남국조약협의 당사국 전원이 대한민국 가입을 요청해 왔고 조약가입을 위한 대한민국의 모든 헌법상 요건을 충족했으므로 대한민국 정부는 동 조약을 심사 한 후 조약에 가입하며 이를 포함한 모든 규정을 성실히 이행할 것을 약속한다.'
6월 미국이 정부에 남극조약 가입을 요청하자 외무부는 즉각 이원경 장관 명의로 신청서를 수탁국인 미국으로 보냈다.
한국이 남극조약 가입신청서를 제출하자 공산권 국가들이 한국과 북한 동시 가입을 제안했다. 북한은 그해 3월 27일 소련대사관을 통해 미국에 남극조약 가입을 신청한 상태였다. 예상하지 못한 돌발변수였다.
정부는 동시가입 제안을 수용하지 않았다. 한국은 1978년부터 남극해 조사와 크릴조업, 극지탐험을 한 실적이 있었다. 한국은 1984년 4월 28일 남극해양생물자원보존에 관한 협약에 가입한 상황이었다.
외무부는 남극조약협의 당사국을 대상으로 직접 설득에 나섰다.
11월 28일. 낭보가 들어왔다. '18대 0.' 미국과 일본 등 12개국 원서명당사국을 비롯한 18개 당사국 전원이 한국 가입에 찬성했다. 세계 33번째였다. 한국 외교력의 승리였다.
12월 3일 외무부는 우리나라가 지난 11월 28일 세계 33번째로 남극조약에 가입했다고 발표했다. 외무부는 “한국은 앞으로 광물과 수산자원 보고인 남극대륙에 진출해 과학탐사 추진을 위한 기반을 구축했다”고 밝혔다.
외무부는 “우리나라는 그동안 남극조약 가입을 추진했다”면서 “미국, 일본, 소련, 중국 등 18개 당사국 전원의 동의를 얻어 회원국으로 가입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이날 남극조약 가입을 관보(조약 908호)에 게재하고 이를 공포했다.
미국 국무부는 12월 5일 주미대사관을 통해 '남극조약 전문과 12개 원서명당사국'이 서명한 동의서 사본을 외무부로 보냈다.
전두환 대통령의 회고록 증언. “남극관측탐험대 활동이 국제적으로 공인을 받아 우리나라는 미국, 일본 소련, 중국 등 남국조약협의 당사국의 동의 아래 1986년 11월 28일 세계 33번째로 남극조약에 가입했다. 이에 따라 남극과 그 주변의 평화적 이용과 과학연구의 자유를 보장받을 수 있었다. 북한도 바로 뒤를 이어 1987년 2월 남극조약에 가입했다. 당시만 해도 소련과 중국과는 수교가 없었다. 남극조약 가입에 소련과 중국 동의를 얻은 일은 외교에서 큰 의미가 있었다. 또 86아시안게임에 중국이 대규모 선수단을 파견해 성공적인 대회를 치른 데 이어 88서울올림픽에 소련 등 동구권 나라의 참가 가능성을 한층 더 높여 준 것으로 평가했다.”(전두환 회고록2)
남극조약에 가입한 정부는 다음 단계로 남극과학기지 건설을 추진했다. 이 사업은 전 대통령의 특별지시였다.
권원기 당시 과학기술처 차관의 말. “한국 최초의 남극기지 건설 시작은 우리가 남극조약에 가입한 이듬해인 1987년 1월 전두환 대통령이 남극에 과학기지 건설을 검토하라는 특별지시를 내리면서부터다.”(과학한국, 그 꿈을 위한 선택)
정부는 남극과학기지 건설과 극지연구 업무 일원화를 위해 부처 간 업무를 조정했다. 남극과학기지 건설과 극지연구 활동은 과학기술처가 주관키로 했다. 그동안 남극조약 가입을 주도한 외무부는 대외관계를 담당키로 했다.
박승덕 당시 과학기술처 연구개발조정실장의 회고. “우리 역사상 최초의 해외기지인 남극과학기지 건설과 극지연구 활동은 과학기술처가 주관하고 외무부는 대외관계를 전담키로 했다. 나는 남극기지 건설 실무책임자로 이 업무를 주관했다.”(살며 생각하며)
남극과학기지 건설은 남극시대를 여는, 미래에 대한 도전이었다.
이현덕 대기자 hdlee@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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