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이슈 찬반토론] 정부가 사립대 입시까지 감놔라 배놔라, 바뀔 때 됐나

허원순 2024. 1. 8.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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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8학년도 대학입시 방식이 2023년 말에 발표됐다. 늘 그렇듯이 발표 주체는 교육부다. 선택과목이 폐지되고, 내신성적은 상대평가 체제를 유지하되 9등급에서 5등급으로 바뀐다. 수학은 미적분, 기하, 확률과 통계 가운데 선택하는 현행 방식에서 문과생 수준의 쉬운 수학으로 단일화된다. ‘심화수학’이라는 난도가 높은 학습 과정이 빠지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공과대 등 이공계통 대학에서 기본적인 미적분을 다시 가르치게 되면서 기초학력 저하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 제기는 학생 선발 자율권을 왜 대학에 주지 않고 정부가 계속 간섭하느냐다. 국립대학은 몰라도 사립대학은 건학 이념에 따라 스스로의 기준에 맞춰 학생을 선발하는 게 맞다는 지적이다. 사립대학 입시 과목까지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정부, 이제는 바뀌어야 할 때인가.

[찬성] 학생 선발은 대학 독립·발전의 대전제…건학 이념·지향 교육 가치 따라 자율로

대한민국에서 민간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억압하는 규제·간섭·감독 행정으로 ‘관치금융’을 언급하지만 더 심한 관치는 교육이다. 정부가 대학입시의 과목 선정과 난이도까지 시시콜콜 간섭하고, 그나마도 매년 조삼모사 조변석개로 바꾸는 나라가 어디 있나. 현대 국가의 합리적 행정권을 넘어서는 전근대적 국가만능주의에 다름 아니다. 과도한 간섭에 대학은 자율성·창의성·독립성을 잃은 채 경쟁력만 저하되고 있다. 대학의 질적 저하는 관치교육에 큰 원인이 있다. 왜 대학을 법에서 ‘고등교육기관’이라고 하는가. 스스로 책임지면서 홀로 서야 한다는 철학이 그 밑바탕에 깔려 있다.

여러 번 양보해도 대학입시에 대한 정부의 간섭과 감독은 국공립 대학에 한정돼야 한다. 국공립 대학조차도 대학이 자율적으로 알아서 하게 해야 자율성과 책임성이 강화된다. 사립대학에 대해 왜 정부가 간섭하나. 사립대학은 건학 이념이 저마다 다르고 교육 방식과 전통도 다르다. 이는 고등교육의 다양성과 창의성을 확보하는 차원에서 필요하다. 그래야 학문과 기술, 국가와 사회가 발전한다. 사립대학이 설립 취지를 구현하고 지향하는 철학대로 교육하려면 그 정신에 맞는 학생을 잘 뽑아야 한다. 학생 선발 자율권은 그래서 중요하고, 대학 자율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기독교 이념을 바탕으로 설립한 연세대와 불교 정신에 맞춰 건립한 동국대가 정부가 정한 일률적 선발 기준을 왜 받아들여야 하나.

스스로 원하는 인재를 자기 책임하에 선발하는 기본 권리를 대학에 돌려줘야 한다. 교육 선진국이라는 미국이 그렇게 하고 있다. 공정성, 형평성 같은 입시의 기본 준칙은 대학 스스로 잘 지키게 하면 된다. 만약 편법적 우대나 입시 관리에 문제가 있다면 교육부가 감사 등으로 바로잡으면 된다. 정부는 시시콜콜 과목의 난이도까지 간섭할 게 아니라 입시의 공정 관리에 주력해야 한다.

[반대] 대학 공공성 감안해 정부 감독 필요…부정 개입 소지 있고 입시 관리 역량 미흡

대한민국에서 교육은 어떤 의미를 갖나. 사회 진출의 주된 기반으로 대학이 차지하는 비중은 어떠한가. 말로만 국공립과 사립이 따로 있을 뿐, 현실적으로 별다른 차별성이 없는 고등교육기관이다. 많은 대학은 정부로부터 각종 보조금과 지원금도 받고 있다. 학교 제도를 포함해 학생 활동 전반을 관할하는 정부의 교육정책에서 예외 지대가 될 수 없다. 대학은 학사와 석·박사까지 학위 제도를 정부로부터 위임받아 실행하는 기관이기도 하다. 이래저래 정부 정책에 따를 수밖에 없다.

국공립이든 사립이든 대학은 국가 사회의 공기관이면서 청년 학생이 사회 진출을 하는 중요한 과정이고 징검다리다. 교육에서 형평성과 공정은 국가 운영의 중요한 원리다. 사회 진출의 첫 관문이자 사다리인 대학 입학이 공정·투명하지 않을 경우 빚어질 혼란은 상상을 초월한다. 기회의 공정·공평성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대학이라는 중요한 기회의 관문에서 한 치의 오류가 있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교육제도와 입시는 정부가 책임져야 할 사안이다.

현실적으로 한국의 대학 가운데는 공정·투명·신속·정확하게 입시를 관리할 역량이 안 되는 대학도 부지기수다. 수백 개 대학 중 입시 문제 출제부터 전형까지 자체적으로 잘해낼 곳이 몇 개나 되겠나. 교육부가 일괄적으로 이를 대행해주면서 관리하는 것이 효율적이고 사회적 비용도 줄이는 길이다. 적지 않은 대학이 정부의 재정 지원을 받고 있는 판에 정부에 그에 부응하는 요구를 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본고사가 있던 시절과 달리 입시제도도 복잡해졌다. 고등학교 때의 생활 전반을 담은 학생부도 입시에 반영되니 정부가 나서 초중고부터 대학까지 과정을 체계적으로 일괄해서 볼 필요가 있다. 그것이 교사와 초중고교, 교수와 대학을 행정적으로 도와주는 길이기도 하다. 입시에 반영 과목, 수학 문제의 난이도 조정 등에 대한 정부 정책도 이런 맥락에서 당위성을 갖는다. 국민이 이를 수용해야 한다.

√ 생각하기 - '관치금융' 넘어 관치교육 벗어나야 다양·창의 가능…힘들어도 '자율'로

학생 선발권, 입시에서라도 자율이 보장되면 대학은 지원하는 학생이 고등학교에서 어떤 수업을 받았고 성적은 어떠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필기 고사가 아니어도 학생부를 보거나 면접으로 파악할 수 있다. 대학은 이런 정도의 자율권은 지녀야 한다. 입시에서 심화수학을 배제하면 결국 대학이 가르쳐야 한다. 그 결과 학문과 기술 수준이 떨어질 것이다. 사교육 부담 경감 노력도 좋고, ‘수포자’에게 길을 터주는 것도 좋다. 하지만 ‘어려운 수학 공부는 힘드니 안 된다’는 논리는 곤란하다. 힘들다고 배제하면 어떤 과목이 남겠나. ‘현실에서의 유용성’도 황당한 논리다. 물리와 화학, 어려운 언어영역 과목은 현실에서의 쓰임새가 수학보다 더 많은가. 핵심은 대학의 자율권을 더 보장하고 그에 따르는 공적 책임도 제대로 묻는 것이다. 그래야 교육 선진화, 미래를 준비하는 교육, 학문 발전을 주도하는 대학이 가능해진다. 관치교육에서 벗어날 때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수석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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