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 문제집 ‘판박이’ 2023학년도 수능 영어 문항 수사 의뢰

202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인 2022년 11월17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여자고등학교에서 수험생들이 시험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수능 한달 전 판매된 학원 모의고사와 지문 내용이 동일해 논란이 일었던 202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영어 영역 문항에 대해 교육부가 지난해 7월 뒤늦게 경찰에 수사를 의뢰한 것으로 확인됐다.

임소희 교육부 사교육·입시비리대응담당관은 8일 “(2023학년도 수능 동일 지문 출제 의혹과 관련해) 지난해 7월 경찰청에 사설 모의고사를 제공한 강사 등을 수사 의뢰했다”고 밝혔다. 교육부가 수사 의뢰한 문항은 2022년 11월17일 치러진 2023학년도 수능의 영어영역 23번 문항이다. 이 문항은 지문을 읽고 주제로 가장 적절한 것을 고르는 3점짜리 문제다. 지문은 캐스 선스타인 미국 하버드대 교수가 출간한 ‘Too Much Information’에서 발췌됐다. 문제는 동일한 지문이 수능을 한 달여 앞둔 10월께, 대형입시업체의 한 ‘일타 강사’가 만들어 판매한 모의고사에 실려 있었다는 점이다. 다만 모의고사에서 해당 문제는 문맥상 낱말의 쓰임을 묻는 것으로, 동일한 지문에서 다른 문제를 냈다.

2023학년도 수능 직후부터 영어영역 23번은 논란의 문항이었다. 수능 출제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평가원) 이의 신청 게시판에는 해당 문항이 사설 모의고사 문항과 동일하다는 내용으로 100여건의 이의신청이 쏟아졌다. 하지만 당시 평가원은 “(영어 23번 문항은) 문항 및 정답 오류에 관한 것이 아니라 심사 대상에 해당되지 않았다. 지문의 출처만 동일할 뿐 문항 유형이나 선택지 구성 등이 다른 문항”이라며 이를 심사하지 않았다. 교육부는 문항이 논란이 된지 8개월여가 지난 7월에 이르러서야 해당 문항을 수사의뢰한 것이다.

교육부 쪽은 뒤늦게 수사의뢰에 나선 데 대해 “현직교사와 사교육 업체 간 문항 거래 의혹을 조사하던 중 이 사안도 추가로 파악해 수사의뢰했다”고 설명했다. 지난 7월 사교육 카르텔·부조리 신고센터를 운영하며 교육부는 현직 교사에게 돈을 주고 문항을 사들인 학원 강사에 대한 제보를 받았는데, 해당 학원 강사가 문제가 된 모의고사를 만든 강사라는 점을 파악해 관련 의혹을 수사 대상으로 추가했다는 의미다. 임 담당관은 “이번 의혹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수능에 대한) 업무방해 혐의가 적용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문항 거래 의혹과 관련해서도 해당 강사와 현직 교사 4명을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경찰에 수사 의뢰했다.

감사원은 사설 모의고사 지문이 수능에 그대로 출제됐다는 논란에도 교육부와 평가원이 바로 대처하지 않은 경위를 두고 감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감사원 조사 결과를 지켜본 뒤 수사하겠다는 입장이다. 우종수 국가수사본부장은 이날 정례 기자간담회에서 “수사 의뢰가 들어와 일부 사실관계를 확인했다. 다만 감사원에서 동일 건에 대한 조사를 진행 중이라 이중수사가 될 수 있다. 감사원 조사를 지켜보고 수사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김민제 기자 summer@hani.co.kr, 장나래 기자 wi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