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서 탐닉한 기업: 카카오가 놓친 것 [컴퍼니+]
카카오 소통 활동 활발해
2023년 발행 보고서 9건
다양성, 윤리 등 내세워
카카오의 강점 알 수 있어
하지만 카카오 경영 상황
보고서와 따로 노는 경향
보고서 경영에 숨은 함정
카카오는 보고서를 자주 낸다. 2023년 이 회사가 발행한 보고서만 9건이다. 실적과 수익, 제품과 서비스로 평가받는 기업이 자체적으로 경영의 투명성을 높이려는 노력은 눈에 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리포트가 카카오를 그럴듯하게 포장해줬을진 몰라도, 정작 그들이 쇄신하는 덴 큰 역할을 하지 못했다. 더스쿠프가 '리포트 탐닉한 기업: 카카오의 민낯'을 살펴봤다.
"기술이 선하게 쓰일 때, 건강한 혁신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카카오는 기술의 건강성을 고민해 왔다." 2023년 12월 28일, 카카오가 31쪽 분량의 보고서를 발간했다. 이름은 '카카오 공동체 기술윤리 보고서'다.
이 보고서엔 2022년 7월 출범한 '카카오 공동체 기술윤리위원회(Tech for Good Committee)'의 다양한 행보를 담았다. 이 위원회는 그룹 전반에 걸쳐 기술 윤리를 점검하고, 기술을 사회와 함께 발전하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었다.
구체적으로 카카오는 2023년 3월 책임 있는 인공지능(AI)을 위한 지침을 제정했고, 6월부턴 카카오의 기술을 쉽고 투명하게 전달하는 온라인 매거진 '테크 에식스(Tech Ethics)'를 발간했다. 한국 테크기업이 윤리위원회를 구성한 건 카카오가 처음이었고, 그 활동 내역을 담은 보고서를 발행한 것도 최초였다. 구글의 창업 모토인 '사악해지지 말자(Don't be evil)'가 떠오르는 보고서였다.
'카카오 공동체 기술윤리 보고서'를 발간한 지 하루 만인 2023년 12월 29일 이번엔 카카오모빌리티가 '2023년 모빌리티 리포트: 글로벌 서비스 연말 결산'을 공개했다. 이 보고서엔 카카오모빌리티가 해외에서 거둔 성과가 담겼다.
카카오모빌리티는 카카오T를 통해 확보한 이동 빅데이터를 분석해 주기적으로 인사이트가 담긴 모빌리티 리포트를 발행하고 있다. 지난해 초에도 '2022년 모빌리티 리포트'를 발행하고 국내 모빌리티 생태계를 다각도로 조명했다.
카카오가 2023년 12월에 발행한 리포트는 또 있다. '2023년 카카오 다양성 보고서(12월 19일 발행)'다. 카카오가 다양성의 가치 증진을 위해 추진한 여러 활동을 담았는데, 내용은 대략 이렇다.
"… 카카오 내부에서 임직원 성비 격차는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이사회 여성 임원 비율은 국내 500대 기업 평균을 상회했다. 성별ㆍ연령ㆍ국적 등 임직원 개개인의 배경, 가치관에 따라 다양성을 존중하는 문화를 지향하고 있다…." 이 역시도 국내 테크기업이 낸 첫번째 다양성 보고서였다.
카카오의 '보고서 발행 랠리'는 12월에만 있었던 게 아니다. 그해 11월엔 '카카오 금융안전보고서'를 발행했다. 카카오는 2023년 초 카카오를 비롯해 카카오페이ㆍ카카오페이증권ㆍ카카오페이손해보험 등 금융안전을 취급하는 업무 담당자와 유관부서가 참여한 '금융안전테이블'을 신설했는데, 여기서 나온 얘기를 토대로 보고서를 만들었다. 금융안전테이블은 디지털 금융 플랫폼 이용자의 정보와 자산을 어떻게 더 안전하게 보호할지를 고민했다.
지난 9월엔 '카카오 안정성 보고서'를 발간했다. "일상의 당연한 연결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유지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란 발간사에서 드러나듯, 카카오가 서비스를 어떻게 안정적으로 운영하는지를 설명했다. 카카오의 첫 자체 데이터센터 '카카오 데이터센터 안산'이 2024년 1분기부터 본격 가동할 거란 소식을 알렸고, 2023년 정보보호 투자를 48.8%나 늘렸다는 내용도 강조했다.
큰 기업이라면 대부분 발행하는 ESG 보고서도 빠뜨릴 리 없었다. 카카오는 2023년 5월 '2022년 카카오의 약속과 책임'을 발간했다. 여기에 2023년 초 발행한 '2022년 카카오모빌리티 리포트'를 포함하면 카카오가 지난해 낸 보고서의 숫자는 9건에 이른다.
재무정보가 담긴 사업보고서를 제외하면 연례행사로 ESG 보고서를 내는 일반적인 대기업과는 차별화한 행보다. 애초에 공시 의무가 없는 내용을 자체적으로 발행하고 공개하는 것부터가 이색적인 일이다.
보고서의 숫자만큼이나 내용도 다채롭다. '다양성' '안정성' '윤리' 등의 키워드에서 드러나듯, 카카오가 얼마나 지속가능한 경영에 진심인지를 강조하고 있다. 접근성도 좋다. 홈페이지에 공개해 언제든 관련 정보를 찾아볼 수 있도록 했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인포그래픽을 적극 활용한 점과 해법을 다각도로 모색하고 있다는 점도 눈에 띈다.
더구나 2023년 발간한 대부분의 보고서는 정기 발행을 목표로 하고 있다. 올해에도 카카오가 경영 관련 보고서를 많이 쏟아낼 거란 얘기다. 구성원에게 플랫폼 정보를 최대한 투명하게 공개하고, '착한 비즈니스 모델'임을 강조하는 상생 성장 전략인 셈이다.
문제는 보고서가 공언한 내용과 달리, 카카오의 경영이 안전하고 윤리적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카카오는 지금 '창사 이래 최대 위기' 상태에 놓여있다. 수사ㆍ금융당국의 압박과 내부비리 폭로 탓이다. 이 때문에 카카오는 2023년에 발간한 수많은 보고서와 무관하게 제2ㆍ제3의 혁신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새해 들어선 새 그룹 컨트롤타워인 CA(Corporate Alignment) 협의체의 구성을 발표하면서 김범수 창업주 겸 경영쇄신위원장과 정신아 대표이사 내정자를 공동 의장으로 선임했다. 2021년 이후 골목시장 침탈, 플랫폼 독점, 경영진 모럴 해저드, 공정거래법 위반, 먹통 사태 등 숱한 논란에 휘말리면서 그때마다 쇄신책을 꺼내놓고 보고서를 발간했지만 말짱 도루묵이었다는 거다.
실제로 카카오가 발간한 것 중엔 '반성문' 성격의 보고서도 있었지만, 이 역시도 겉만 번지르르한 레토릭(rhetoricㆍ수사)에 그쳤다. 가령, 2023년 처음 발행한 '안정성 보고서'에선 '카카오 먹통 사태'의 재발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의지를 담았지만 그 이후에도 여러 차례 메시지 송수신 장애나 결제 서비스 오류를 빚었다.
카카오가 연간 두차례씩 발표하는 '기업집단 설명서' 역시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이 보고서는 그룹의 사업 방향성과 지배구조를 분석한 결과인데, 각 계열사를 사업 방향성과 목적에 따라 분류하고 있다. 계열사 숫자가 많더라도 대부분이 핵심 사업과 연관돼 있으니 문어발식 확장이 아닌 '선택과 집중'으로 그룹의 내실을 다지고 있다는 걸 강조하려는 의도다.
그런데도 카카오는 여전히 골목상권의 눈총을 사고 있다. 택시 수수료와 독과점 논란, 선물하기 수수료 과다 논란 등은 현재진행형이다. 카카오 노조 관계자 "카카오 공동체의 위기는 크루의 위기가 아닌 경영 실패이며 공동체 시스템의 실패"라면서 "경영 보고서를 여럿 발행한다고 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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