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신용 사면’ 200만명 안팎… 금융 당국, 대상 선별 착수

김보연 기자 2024. 1. 8. 15: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 피해 취약차주 연체이력 삭제
2021년 신용사면 때와 규모 비슷할 듯
당정협의 후 최종 확정 계획
“신용평가 시스템 흔들려 불안 커질 수도”
경기침체 속 취약계층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는 가운데 미등록 불법 대부업체 운영, 법정금리인 연이율 20%를 넘는 고금리 부과, 불법 채권추심, 불법 광고, 불법 수수료, 유사수신행위 등 불법 사금융 사례가 늘고 있다. 사진은 서울 거리의 대출 전단. /연합뉴스

금융 당국이 ‘코로나19 신용 사면’ 지원 조건 및 대상을 추리는 작업에 착수했다. 코로나19로 불가피하게 빚을 갚지 못하다가 상환한 차주(돈 빌린 사람)의 연체 이력을 삭제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연체 이력이 있으면 대출이 거절되는 등 상당 기간 불이익을 받게 되는데, 빠른 재기를 위한 신용 회복을 지원하는 것이 목적이다. 다만 금융권 안팎에선 빈번한 신용 사면에 따른 신용평가 체계 왜곡으로 인해 시장 불안이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8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 금융데이터정책과는 과거 세 차례의 신용 사면 전례를 참고해 지원 조건 및 대상 등을 선정하는 작업에 돌입했다. 금융 당국은 오는 9일 당정협의회에서 최종 확정된 내용을 바탕으로 은행연합회와 여신금융협회 등 금융협회와 신용정보원, 민간 신용평가사들과 구체적인 신용 사면 적용 조건을 논의할 예정이다.

신용 사면 대상자 기준은 2021년 8월 이후부터 지난해 말까지 연체 기록이 있는 소상공인·자영업자 및 취약계층이 될 전망이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지난번 1차 코로나19 신용 사면 때와 유사한 수준일 것”이라며 “구체적인 내용은 당정협의 후 금융권 당사자들과 논의를 거쳐 최종 확정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는 코로나19 시기인 2020년 1월부터 2021년 8월까지 2000만원 이하의 대출을 연체했다가 갚은 소액 채무자 약 250만명의 연체 이력을 삭제했다.

신용 사면은 1999년 처음 실시됐다. 김대중 정부는 1997년 IMF 사태로 빚을 제때 갚지 못해 신용불량자가 된 차주 중 1000만원 이하 금융기관 대출금 또는 100만원 이하 신용카드 대금을 6개월 이상 연체했다 전액 상환한 차주 약 40만명에 대해 신용 사면을 실시했다. 이어 2013년 박근혜 정부에서 IMF 여파에서 벗어나지 못한 신용불량자들의 빚을 감면하고 10만명의 연체 기록을 없앴다.

그래픽=정서희

이번 신용 사면은 지난 4일 열린 민생토론회에서 연체 이력으로 어려움을 겪는 자영업자의 사례를 들은 윤석열 대통령이 대책을 마련할 것을 주문한 데 따른 조치다. 경기 평택에서 온 슈퍼마켓 사장은 토론회에서 “코로나19 때문에 대출을 연체한 경우 추후 상환을 완료해도 연체 기록이 남아 은행 대출이 어려워진다”고 토로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연체 관련 신용 회복 지원 방안을 강구하겠다”며 “연체 이력 정보를 삭제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의미다”라고 했다. 박춘섭 대통령실 경제수석도 브리핑을 통해 “연체 정보가 있으면 대출에 불이익을 받기 때문에 이력 정보를 삭제하는 것을 검토할 것이다”라고 했다.

통상 금융사는 차주가 1개월 이상 원리금을 상환하지 못하면 금융사는 금융협회, 신용정보원을 통해 다른 금융사에 이 사실을 공유한다. 연체 이력은 최장 5년간 보관되는데, 차주가 대출을 갚아도 수개월간 연체 이력이 유지돼 상당 기간 이자율, 대출 한도 등 금융 거래 조건이 나빠져 제약이 생긴다. 연체 이력을 삭제하면 성실히 빚을 갚은 차주들이 제도권 금융에서 밀려나 불법 사금융으로 내몰리는 것을 막는 효과가 있다.

다만 부작용도 우려된다. 금융권 안팎에선 거듭된 신용 사면이 금융권 신용 시스템의 근간을 흔든다는 비판이 나온다. 은행 관계자는 “성실하게 빚을 제때 갚은 사람이 높은 신용등급을 받는 것이 신용 평가 체계의 기본 원칙인데, 무분별한 신용 회복은 시스템을 왜곡하고 이는 곧 시장 불안으로 확대될 수 있다”고 했다. 은행 등 금융사는 연체 기록을 공유해 신용불량자를 걸러 대출 부실 리스크를 관리한다. 연체 이력 삭제로 관련 정보를 공유할 수 없게 되면 은행은 부실 위험에 대한 선제적 파악이 어렵게 된다. 이는 곧 금융 부실로 이어질 수 있다. 다중채무자의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 역차별 논란 등에 대한 지적도 제기된다.

총선을 앞둔 포퓰리즘성 금융 지원책이라는 시각도 있다. 정치권 관계자는 “빚 탕감, 신용불량자 구제 공약은 대선, 총선을 앞두고 매번 나오는 단골 메뉴다”라며 “정치권 논의 과정에서 지원 대상 및 규모가 커질 가능성이 큰데 경기침체와 고금리,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여파로 부실 우려가 커진 국내 금융 시장에 미치는 영향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 Copyright ⓒ 조선비즈 & Chosun.com -

Copyright © 조선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