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습 100구도 안 던지면서" 132승 좌완 레전드의 일침…28번 후계자 깨웠다
[스포티비뉴스=김민경 기자] "선배께서 '연습 때 100구도 안 던지면서 경기 때 100구 던질 수 있겠어?'라고 하시더라고요."
두산 베어스 좌완 에이스 기대주 최승용(23)은 야구밖에 모르는 선수로 유명하다. 중학교 3학년이 돼서야 뒤늦게 본격적으로 선수 생활을 시작하면서 스스로 '늦게 시작했으니 더 열심히 해야 또래 선수들을 따라잡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지금까지 구슬땀을 흘려왔다. 최승용을 잘 아는 동료 선수들은 "하루 종일 야구 생각밖에 안 한다. 야구에 미쳐 있는 사람"이라고 말하곤 한다.
덕분에 소래고를 졸업하고 2021년 신인드래프트 2차 2라운드 20순위로 두산 유니폼을 입었다. 두산 스카우트팀은 최하위 지명권을 행사해야 하는 상황이라 틈새를 노리는 지명을 구상해야 했고, 4라운드권으로 평가됐던 최승용을 일찍 지명하면서 좌완 선발투수로 키우는 구상을 밝혔다. 최승용은 2021년 데뷔 시즌부터 마운드에서 기대 이상으로 씩씩하게 자기 공을 던지면서 기회를 늘려가기 시작하더니 2022년부터는 1군 필수 전력으로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2022년과 지난해 모두 선발과 불펜을 오가면서 팀에 구멍이 난 자리를 잘 채워줬다.
좌완 레전드 장원준(39)은 그런 최승용이 가장 닮고 싶은 선배였다. 장원준은 2004년 1차지명으로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해 프로 생활을 시작했고, 2015년부터는4년 84억원 FA 계약을 하고 두산에서 뛰었다. 지난해까지 통산 446경기에 등판해 132승(119패), 2000이닝, 평균자책점 4.28을 기록하고 커리어를 마무리했다. 류현진(37), 김광현(36, SSG), 양현종(36, KIA) 등 한국 대표 좌완들과 비교해 조금은 덜 빛났을지 몰라도 장원준은 묵묵히 자신의 역사를 써내려 가면서 후배들에게 귀감이 될 프로 생활을 했다. 은퇴 직전까지도 팀 내에서 가장 훈련 강도가 높은 선수로 분류될 정도로 프로 생활 내내 야구에 진심이었다.
최승용은 장원준과 1, 2군에서 함께 있는 동안 늘 조언을 구했다. 지난해 본격적으로 선발투수로 풀타임 시즌을 뛸 기회를 얻었는데, 체력 문제로 불펜으로 밀려났을 때 장원준에게 들은 말은 지금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다.
최승용은 "내가 작년부터 공 던지는 체력이 문제점이었다. (장)원준 선배께 여쭤보니 '나는 시즌 때만 많이 던지는 게 아니라 캠프에 가면 매일 많이 던진다. 많으면 하루 150구까지도 던진다'고 하시더라. 그러면서 '훈련할 때 100구도 안 던지는데, 경기 때 어떻게 100구를 던질 수 있겠냐'고 하시더라"고 털어놨다.
이어 "사실 요즘 시대에는 훈련할 때 150구는 당연하고 100구까지도 안 던지는 편이다. 원준 선배한테 조언을 듣기 전에는 팀에서 시키는 훈련량 정도만 던졌다. 조언을 듣고 나서는 생각을 바꿨다. 시키는 것을 하는 선에서 그치지 않고, 내 몸 상태를 보면서 던질 수 있는 한 조금 많이 던지는 버릇을 들여야 공 던지는 체력도 늘고 감각도 생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조금 더 많이 던져 보고 싶다"고 덧붙이며 올봄부터는 더 많은 공을 던지며 단련하겠다고 했다.
왼손투수로 리그 정상을 찍은 선배와 함께하면서 배울 점은 이보다 더 많았다. 최승용은 "성적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정말 꾸준하셨다. 몇 년(8년, 2006~2017년) 연속 10승을 꾸준히 한다는 것 자체가 진짜 대단한 것 같다. 또 본인 주관이 뚜렷하신 것 같다. 선배의 노하우를 들었을 때 '확실히 야구 잘하는 분들은 잘하는 이유가 있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고백했다.
최승용은 장원준을 롤모델로 삼는 것에 그치지 않고 등번호까지 바꿨다. 입단 때부터 등번호로 64번을 썼는데, 지난해를 끝으로 장원준이 은퇴하면서 빈 번호가 된 28번으로 바꿔 달았다. 장원준의 28번은 최승용이 언젠가 한번은 꼭 품고 싶었던 번호였다.
장원준의 28번 후계자가 된 최승용은 "처음 입단할 때부터 28번과 47번을 생각했다. 47번은 (곽)빈이 형이 달고 있고, 28번은 나중에 한번 달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기회가 와서 한번 달아보려 한다. 아무래도 팀마다 대표하는 선수의 등번호가 있는데, 그런 번호를 단다는 것 자체가 영광이지 않나. 64번에 정이 많이 들어서 남을 준다고 생각하면 아깝긴 한데, 28번 자체가 좌완 투수에게는 정말 좋은 번호니까. 원준 선배께 말씀 드리니 '자체 영구결변을 시켜야 한다'고 장난을 치시더라. 원준 선배께서 28번을 달고 워낙 잘하셨으니까, 나도 번호의 기를 받아서 이제 팬분들께 부응할 수 있는 선수가 되겠다"고 힘줘 말했다.
최승용은 올해는 꼭 선발투수로 한 시즌 동안 로테이션을 돌면서 규정이닝을 채우고 싶다고 했다. 이승엽 두산 감독은 지난 시즌을 마치고 마무리캠프를 진행하면서 이미 최승용을 선발투수로 분류해 뒀다. 두산을 대표했던 좌완 유희관과 장원준이 모두 은퇴한 상황에서 새 얼굴이 나타나야 하는데, 이 감독과 구단 모두 지금까지는 최승용이 다음 주자로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최승용은 "매년 시즌을 시작할 때 선발 후보에는 항상 들었는데, 작년과 재작년 모두 크게 그런 성과를 내지 못해 죄송한 마음도 있었다. 풀타임 선발로 뛰어보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 또 경쟁을 해봐야 한다. 지난해는 초반에 기회를 잡고도 내가 기회를 놓쳐서 중간에 왔다 갔다 했다. 올해는 그런 일이 없게 초반부터 안정적일 수 있도록 훈련해보려 한다"고 힘줘 말했다.
지난해 최승용은 프로선수로서 한 단계 더 성장할 기회를 잡았다. 11월 열린 '2023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APBC)' 대표로 선발돼 생애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달았다. 한국과 일본, 대만, 호주 등 4개 나라 24세 이하 유망주들이 모여 실력을 겨루는 자리인데, 최승용은 안정적인 경기 운영 능력으로 류중일 한국야구대표팀 감독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며 중요한 상황마다 왼손 불펜으로 힘을 보탰다.
최승용은 첫 국가대표 경험과 관련해 "처음에는 긴장됐는데, 하다 보니까 재미있더라. 나라를 대표해서 나간다고 생각하니 더 똘똘 뭉치는 느낌도 있고, 우리끼리 으쌰으쌰 하면서 재미있게 했던 것 같다. 처음에 국내에서 훈련할 때는 워낙 다 잘 던지는 선수들이니까 내가 가서 한 경기라도 던질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했다. 첫 경기에 내보내주셨을 때 그래도 괜찮게 던져 계속 기용해 주신 것 같아 뿌듯했고, 감독님께도 감사했다"고 되돌아봤다.
이어 "포수 (김)형준이 형이 공이 좋다고 칭찬을 많이 해줘서 자신감도 생기고 감사했다. 야수든 투수든 어떻게 보면 다들 나보다 높은 레벨의 선수들이라 생각해서 배우는 자세로 갔던 것 같다. 투수는 확실히 한화 (문)동주가 다르긴 다르더라. 선수가 봐도 진짜 공 날아가는 것부터 다르다. 나는 대회 때 커브가 잘 들어가서 그런지 NC (신)민혁이 형이랑 (김)영규 형이 커브를 알려달라고 해서 알려드렸다. 커브에 이제 헛스윙도 많이 나오는 것 같아서 점점 자신감이 붙고 있다"고 덧붙이며 짧은 기간에도 얼마나 성장하고 배우는 시간을 보냈는지 가늠하게 했다.
두산은 선발과 불펜 모두 왼손 투수 갈증이 심한 팀이다. 황금기 두산을 대표했던 좌완 장원준, 유희관, 이현승이 모두 은퇴한 상황에서 최승용은 2022년 1차지명 좌완 이병헌과 함께 다음 세대를 이끌 희망으로 떠오르고 있다.
최승용은 "팀의 기대가 부담되고 그렇지는 않다. 왼손이든 오른손이든 잘 던지는 투수가 경기에 나간다고 생각한다. 원준 선배처럼 꾸준하게, 남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꾸준하게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는 그런 선수가 되는 게 가장 좋은 것 같다"며 새해부터는 두산을 장기간 이끌 좌완 에이스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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