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탄강댐 갈등 조정 실패 보며 대화로 답 못 찾는 현실에 한숨
노, 조찬에서 새만금 원칙 천명하며
“사패산, 사회공론 토론에 부치자”
나·권오규 수석 찬성, 이병완 반대
3시간 걸린 갈등해결시스템 보고회
대통령 “정책기획위·지속위 협력
갈등 해결의 대화틀 만들라” 지시
지속위에 사회갈등 해결 과제 부여
관저에서 열린 경제장관 만찬회의
노, 사교육비·부패 문제와 함께
사회갈등 해소를 3대 과제로 꼽아
탄핵 뒤 대통령 없는 수석회의에서
한탄강댐 갈등, 지속위에서 관리키로
엄청난 조정 노력에도 결국 법정으로
2003년 3월 참여정부 벽두부터 환경단체와 불교계가 부산 금정산 구역 고속철도 공사를 반대하는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서울 북한산 관통도로와 경인운하 건설도 불교계와 시민단체의 반대에 부딪혀 중단됐다. 고속철도가 지나갈 부산 천성산의 도롱뇽 서식지가 훼손된다고 지율 스님이 100일간 단식투쟁을 벌여 목숨이 위태로워지자 문재인 민정수석이 농성장을 찾았지만 뾰족한 성과가 없었다. 온갖 갈등이 쏟아지는 천하대란의 시대였다. 환경은 중요하지만 환경근본주의는 곤란하다.
6월16일(월) 12시 당시 온갖 갈등의 한가운데에 있던 환경부의 한명숙 장관, 실국장들과 오찬을 같이 했다. 경인운하와 새만금, 한탄강댐과 북한산터널 공사 등을 의논했다. 6월20일(금) 저녁 비서실장 공관에서 열린 수석들 만찬에 노무현 대통령 내외도 참석했다. 유인태 수석이 당시 쟁점이던 사패산 터널을 설명했다. 불교계는 불교계 10대 대선 공약대로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사실은 한나라당이 먼저 공사 중단을 공약했고, 권양숙 여사가 불교계 인사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은 뒤 민주당 공약에도 포함됐다. 유인태 수석은 ‘민족정기 훼손’이라는 반대 이유는 터무니없고, 원래 불교가 산을 훼손해놓고 지금 와서 산 훼손을 이유로 터널 공사를 반대하는 것은 문제라고 불교계를 비판했다. 듣고 보니 옳은 말, 과연 촌철살인의 대가다웠다.
7월18일(금) 아침 7시 관저 조찬에서 노 대통령이 새만금 원칙을 천명했다. 그러면서 사패산 터널 문제를 사회공론 투표에 부치면 어떠냐고 물었다. 예를 들어 국민 5백명, 교수 5백명이 온종일 토론한 뒤 표결하는 방식이다. 물론 표결 결과에 승복한다는 사전 합의가 필요하다. 이 방식에 권오규 수석, 정만호 비서관과 나는 찬성했고, 이병완 비서관(나중에 홍보수석, 비서실장)은 반대했다. 식사 중 노 대통령이 농담했다. “예전에 모친이 식사하며 국을 흘리는 것을 보고 형하고 내가 모친을 놀리고 구박하고 그랬는데, 내가 요즘 그래요. 국물을 흘려 넥타이를 다 버리고 그래요.” 노 대통령은 늘 꾸밈없는 직설적 화법으로 인간적인 면모를 보였다.
7월29일(화) 9시 국무회의에서 핵폐기장 후보였던 위도 현금지원 문제와 윤진식 산자부 장관의 사과 문제를 토의했다. 국무위원들은 ‘원칙적으로 안 된다. 나쁜 선례를 남긴다’는 의견이 많았다. 사패산 터널은 공론투표 방식을 취하되 불교계와 대화, 설득을 계속하기로 결론 내렸다. 8월23일(토) 12시 환경부 장관, 환경정책국장, 고철환 지속가능발전위원장, 사무국장과 오찬(도원)을 하며 지속가능발전위 구성과 기능을 의논했다.
9월15일(월) 10시 집현실에서 갈등해결 시스템 보고회가 있었다. 회의는 점심을 도시락으로 때우면서 3시간이나 계속됐다. 지속위 고철환 위원장과 여러 위원이 참석했다. 이재은(충북대) 교수가 대화, 참여가 부족해 핵폐기장 부지 갈등이 일어났다며 갈등 해결을 위한 대화틀과 교육, 훈련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내용의 발제를 했다. 또 사회갈등을 해결할 원로가 없어 아쉽다며 정책대화를 통해 ‘내 뒷마당에서는 안돼’(Not In My Back Yard)라는 님비(NIMBY)를 ‘이제 나도 참여해야겠어’(Now I Must Be Involved)라는 님비(NIMBI)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20명으로 구성된 새만금위원회가 1999년부터 활동했지만 각자 자기주장만 되풀이하다 결국 11:9로 결론 내렸다. 사패산 등 모든 위원회가 실패했다. 시민단체와 언론이 의제를 채택하고,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이 중요하다”며 갈등 해결의 대화틀을 정책기획위와 지속위가 협력해 만들라고 지시했다.
김헌민(이화여대) 교수는 새만금, 핵폐기장은 갈등 해결 틀에 넣어 해결을 시도해볼 수 있지만 자유무역협정(FTA)은 그런 성격이 아니라고 말했다. 이재은 교수가 지속위가 갈등 해결에 나서는 안에는 찬성하되 위원회의 권위 유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헌민 교수는 중립성 유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이 부연 설명했다. “우리 사회 원로는 대화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지속위는 개점휴업 상태다. 지속위는 대통령 자문기구지만 대통령이 결정을 존중해주면 거의 의결기구가 된다. 각 지역의 양심적이고 참여의식을 가진 중립적 전문가로 지속위를 구성해 사회갈등을 해결하자. 5년 전 김대중 당선자 시절 대구 인근 위천공단 사건과 강원도 동강 건을 보고 내가 구상해본 안이다.”
전기정(상명대) 교수는 “당사자 해결이 최선이다. 현자 그룹의 결정에 사람들이 반발할 것이므로 조정은 몰라도 결정은 무리”라고 말했다. 강영진 전 동아일보 기자는 “선 당사자 해결, 후 위원회 개입이 좋겠다. 어떻게 반발을 최소화하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다른 갈등 과제들은 장관들에게 맡기고 대통령이 할 일은 우리 사회의 큰 갈등을 해결하는 것이다. 5년간 열심히 하겠다. 갈등해결 시스템 마련을 가장 중요한 업적으로 남기고 싶다”고 말했다.
이날 회의에서 지속위에 사회갈등 해결이라는 중요한 새 과제가 부여됐다. 이날 저녁 관저에서 열린 경제장관 만찬에서도 노 대통령은 “우리 사회의 뭐든지 법대로 하자는 사고방식도 문제, 정서법도 문제다. 우리의 3대 과제는 사회갈등 해소, 사교육비 해소, 부패 척결”이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이 사회갈등 해소를 얼마나 중시했는가를 알 수 있다.
9월25일(목) 오후 5시 고철환, 이재은, 전기정, 신봉호 등 10여명이 모여 지속위 구성 및 기능을 의논했다. 갈등과제 조정은 각 부처(1단계)와 국무조정실(2단계)이 맡는다. 지속위는 몹시 어렵고 중요한 문제만 맡되, 조정 없이 배심원 역할을 한다. 현안인 사패산 문제 공론조사는 부담이 커 지속위가 맡지 않기로 정했다.
9월27일(토) 오전 9시 대통령에게 지속위 구성 계획을 보고했다. 80명 위원 중 48명(16개 지자체 각 3명씩)은 지방에서 추천받고, 32인은 전국에서 최고의 인물을 찾아 선정하자는 고철환 위원장의 의견을 보고하니 노 대통령이 좋다고 했다. 그리고 지방에서 이상한 정치적 인물을 추천하면 곤란하니, 정치인 배제 구절을 넣자고 제안했다. 그 뒤 지속위 인선에서 지역 추천인사 중 환경단체 출신이 너무 많고 명망 있는 인사는 드물어 고충이 컸다. 11월24일(월) 오전 대통령 집무실에서 정찬용 인사보좌관과 함께 지속위 인선을 보고하면서 보완책을 의논했다. 노 대통령이 갑자기 내 머리를 보더니 “정책실장 머리와 인사보좌관 머리가 비슷하게 희네. 나도 염색 안 했으면 아마 비슷할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염색한 줄도 몰랐다.
2004년 3월15일(월) 대통령 탄핵 직후 대통령 없는 수석회의에서 한탄강댐 건설 갈등을 지속위에서 관리하기로 했다. 당시 여야 가릴 것 없이 댐 무효화를 선언하는 분위기였다. 2차 세계대전 뒤 댐 건설 붐이 일어 전 세계 댐 숫자가 6배로 불어났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댐은 환경파괴 문제가 심각했다.
4월8일(목) 오후 3시 관저 간담회에서 고철환 위원장이 한탄강댐 갈등 조정 건을 보고했다. 앞으로 지속위가 갈등관리 워크숍을 갖겠다고 하자 노 대통령이 청중석에 앉아서라도 꼭 참석하고 싶다며 고 위원장에게 일 많이 했다고 격려했다. 그런데 지속위가 의욕적으로 추진한 사회갈등 해결의 첫 시범 케이스였던 한탄강댐 공사 건은 막대한 시간 투입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갈등 조정에 실패하고, 결국 법정에서 결론이 났다. 이게 성공했더라면 후속 성공사례가 이어졌을 텐데 이 실패는 아팠고 지속위에 치명타가 됐다. 우리 사회는 대화와 순리로 문제를 풀기가 이렇게 어려운지 한탄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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