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개의 전쟁’ 중에 ‘사라진’ 미 국방장관 파문 확산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70)이 중환자실에 입원하고도 사흘 넘게 백악관과 군 핵심 참모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 않은 것을 둘러싼 파장이 커지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두 개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 도중 발생한 국방 수뇌부의 ‘공백’ 상태에 대해 공화당 의원들은 강도높은 조사를 예고했고, 조 바이든 행정부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고 미 언론들이 7일(현지시간) 전했다.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 로이터연합뉴스

오스틴 장관은 새해 첫 날인 지난 1일 연말에 받았던 수술 합병증으로 인해 월터 리드 국립 군 의료센터에 입원, 현재까지 중환자실에 머물고 있다. 그런데 이 사실은 4일 오후에야 백악관의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 등에 보고됐다. 군 통수권자인 바이든 대통령이 사흘 넘게 국방수장의 부재를 알지 못했던 것이다.

특히 국방부 ‘2인자’로 장관 역할을 대행하던 캐슬린 힉스 부장관 역시 장관의 입원 사실을 사전에 알지 못했다고 CNN방송은 이날 전했다. 당시 푸에르토리코에서 휴가를 보내던 그는 장관이 입원해 업무 수행을 할 수 없는 상황임을 알지 못한 채 장관 역할을 대행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힉스 부장관은 백악관과 같은 날인 4일에서야 오스틴 장관 입원 사실을 통보받았으며, 다음날(5일) 장관이 업무에 복귀할 것이란 소식을 듣고 즉각적인 휴가 종료 및 업무 복귀 결정을 하지 않았다고 외신은 전했다.

유럽과 중동에서 ‘두 개의 전쟁’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국방부 1·2인자가 모두 자리를 비웠고, 그 사실을 ‘군 통수권자’인 바이든 대통령이 전혀 몰랐던 셈이다.

특히 당시는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전쟁으로 불안이 고조된 중동 지역에서 또 다른 확전 위기가 커지는 중이었다. 미군은 이날 이라크에서 친이란 민병대 지도자를 제거했고, 앞서 이란에선 이슬람국가(IS)가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한 폭탄테러가 발생했다. 홍해에선 친이란 예멘 후티 반군의 상선 공격 등으로 인한 긴장도 높아진 상태였다.

오스틴 장관은 성명을 통해 “모든 책임은 내게 있다”고 사과했고, 바이든 대통령도 전날 오스틴 장과과 통화하는 등 신뢰를 재확인헀다고 당국자들은 전했다.

그러나 논란은 오히려 확대되는 조짐이다. 패트릭 라이더 국방부 대변인은 보고가 늦어진 배경에 대해 오스틴 장관 비서실장 역시 건강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지만, 국방부 내 시스템을 지적하는 목소리는 더욱 커지고 있다. 특히 공화당은 오스틴 장관이 행정부 기관장의 부재가 발생할 경우 관련 사실을 의회에 의무 보고하도록 한 규정(5 유에스 코드 3349)을 어겼다며 ‘검증’을 예고했다.

로저 위커 상원 군사위원회 공화당 간사는 이번 사건이 바이든 행정부의 의회에 대한 ‘혐오’를 보여준다면서 “국방부가 장관의 건강 상태를 며칠간 고의로 숨겼다는 사실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밝혔다. 하원 군사위원회의 마이크 로저스 위원장(공화당)과 애덤 스미스 의원(민주당)도 공동 성명을 내고 “오스틴 장관이 받은 수술과 합병증, 현재 건강상태, 국방장관 업무 위임이 이뤄진 시기, 대통령과 의회에 늑장보고한 이유” 등을 보고할 것을 요구했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역대 국방수장 중에 가장 ‘은둔형’ 인물로 분류되는 오스틴 장관의 스타일이 역풍을 맞았다고 지적했다. 한 고위 당국자는 워싱턴포스트에 오스틴 장관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나쁜 판단”을 보여줬다면서 이번과 같은 경우에는 투명성이 무엇보다 중요했다고 전했다.

워싱턴 | 김유진 특파원 yjkim@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