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조원 수출 잭팟 터뜨린 ‘검은 반도체’…한국 ‘김’ 어떻게 날았나
美·러에서도 ‘김밥 열풍’…한국 김 경쟁력, 글로벌 수요 만나
식품업계, 조미김 제품 다변화…해외 소비자 입맛 공략
(시사저널=조유빈 기자)
'검은 반도체'. 한국 김을 수식하는 말이다. 김은 현재 한국에서 생산되는 수산물 중 해외에 가장 많이 수출되는 식품으로, 지난해 '수출 1조원'의 기록을 썼다. 글로벌 시장 수요가 늘어나면서 한국 김의 경쟁력이 주목을 받게 된 것이다. 한국 김은 세계 시장 1위에 올라선 뒤에도 여전히 꺾이지 않는 성장세를 자랑하고 있어 '바다의 반도체'로 여겨지고 있다. 정부와 식품업계가 '김'을 주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바다의 잡초'에서 '슈퍼푸드'로 인식
지난 7일 해양수산부(해수부)가 공개한 수출 성과에 따르면, 김 수출액은 지난해 1조200억원을 달성하면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해수부는 이 같은 성과가 난 배경에 '기술 혁신'과 '수출 시장의 다변화 전략'이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 김의 수출 대상국은 124개국으로, 2010년보다 두 배가량 증가했다.
현재 전 세계 김 시장에서 한국의 점유율은 70.6%(2022년 기준)에 달한다. 한국 김이 수출되는 상위 5개국은 미국, 일본, 중국, 태국, 러시아 순으로, 김을 외면했던 서양에서 김 소비가 대폭 늘어난 것이 수출 증가에 큰 영향을 미쳤다. 과거 서양의 소비자들은 해조류를 '바다의 잡초'로 인식했고, 김을 '검은 종이'라 일컬으며 먹지 않는 것으로 여겨왔다.
인식이 달라진 것은 해초류가 고단백·저칼로리의 '슈퍼푸드'라는 점이 알려지면서다. 미국과 러시아에서는 냉동김밥 열풍도 일었다. 해외 채식주의자들에게도 김밥이 인기를 끌면서, 김밥용 김 매출도 덩달아 늘어났다. 김과 김밥을 경험해 본 소비자들의 후기가 숏폼 플랫폼인 틱톡을 타고 확산하면서 각종 '비법 영상'과 '먹방 영상'도 공유됐다. K팝과 K드라마 등 문화적 노출로 인해 높아진 한식에 대한 관심도가 한국 김의 부흥에 힘을 보탰다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시장 1위·제조법 표준…한국 김이 우세한 이유는?
현재 김을 생산하는 주요 국가는 한국, 일본, 중국이다. 그중에서도 한국 김은 생산성과 가공 기술 등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전국의 김 양식 면적은 600㎢가 넘는다. 서울 여의도의 218배에 달하는 면적으로, 양식 품종 중 가장 넓은 규모를 차지한다. 1년에 생산되는 55만t의 막대한 물량을 가공하는 기술도 뛰어나다.
김밥용 김의 전 세계 공급을 한국이 거의 독점하고 있는 것도 제조 기술력 때문이다. 국제식품규격위원회(코덱스·CODEX)는 2017년 한국의 김 제조법을 '표준'으로 정하기도 했다. 이미 경쟁력을 갖추고 있었던 한국 김이 급증한 세계 시장의 수요를 만나면서 '수출 잭팟'을 터뜨리게 된 것이다.
현재 한국 김 수출은 중견기업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해수부에 따르면, 신안천사김, 성경식품, 만전식품, 동원F&B, 광천김 등 5개 브랜드의 수출량이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신안천사김은 2022년 단일 기업 최초로 '김 수출 1억 달러'를 달성해 해수부로부터 수출공로탑을 수상하기도 했다.
김이 'K푸드'로 부상하자 식품 기업들은 김을 스낵처럼 가공하거나, 주류 안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맛을 더하면서 '검은 한류'에 올라탔다. 양반김을 일본, 태국, 미국 등 32개국에 수출하는 동원F&B는 지난해 약 300억원의 수출액을 기록한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에는 김부각 등 간식 용도의 조미김 제품을 통해서도 수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CJ제일제당은 웰빙 간식에 대한 수요가 높은 유럽과 미국을 '전략 국가'로 삼고 김 스낵에 힘을 실었다. 긴 스틱 형태의 김 스낵과 코리안 바비큐·핫칠리 맛의 조미김을 내놓으며 현지 소비자를 공략했다. 지난해 상반기 기준 비비고 김의 해외 매출은 전년 대비 30% 증가했다.
'기후 변화'는 과제…日 '노리' 대신 韓 '김' 명칭 세계화
김은 국내 연안에서 생산되고, 산업 전 과정도 국내에서 이뤄진다. 이 때문에 김은 지역 경제에도 큰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식품으로 꼽힌다. 최근 일본이 '고급 김 시장'에 집중하면서 한국을 추격하는 데 따라, 한국 김의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일본이 운영하는 '김 등급제'처럼, 우리나라도 김 품질을 선별할 수 있는 명확한 기준을 세워 고급화를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이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자, 최근에는 태국과 베트남 등에서도 김 산업에 발을 들이고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품종 개발도 시급한 상황이다. 기후 변화로 해수면 온도가 상승하면서 고수온에서도 잘 성장하는 김 품종이 필요해졌다. 기후 변화 등 이유로 수확량이 급감할 경우 수출량에 영향을 미치게 되고, 원초 가격이 오르면서 유통되는 김 제품의 가격까지 상승할 수 있다.
지난해 '김 산업 진흥 기본계획'을 수립한 정부는 2027년까지 김 수출 규모를 1조3000억원(10억 달러)까지 늘리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수온 상승에 강한 종자를 개발하고, 일본식 이름인 '노리' 대신 우리식 명칭인 '김'을 세계에 알리면서 세계 1위 자리를 지키겠다는 것이다. 각국이 식품 안전과 관련해 통관 절차를 강화하고 있는 만큼, 위생 품질 관리가 병행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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