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50% 손실날 판, 억장 무너져”…손실 시작된 19조원 ‘이것’ 뭐길래

류영상 매경닷컴 기자(ifyouare@mk.co.kr) 2024. 1. 8.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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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ELS 상반기 10조 만기 ‘지수 반토막’
“검사·분쟁조정·제도개선 신속할 터”
지난해 12월 15일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열린 홍콩지수 ELS 피해자 집회 모습. [사진 =연합뉴스]
“이렇게 새해(1월)가 안 왔으면 했는데, 지금 그 돈을 다 잃어 버리면 어떻게 살아야 하나, 앞이 깜깜합니다. 억장이 무너져 내려요.”

원금이 반토막 난 채로 상환된다는 ‘손실 확정’ 문자 메시지를 받은 A씨는 이렇게 토로했다. 그의 확정 수익률은 -48%. 지난 4일부터 홍콩 H지수에 연계된 ELS 상품의 만기가 도래하면서 이달부터 수조 원대의 손실이 현실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ELS는 기초자산이 되는 지수가 만기(통상 3년)까지 일정 수준을 넘으면 약속한 수익률을 지급하는 고위험 상품이다. 지수가 일정 비율 이상 하락할 경우 녹인(Knock-In·손실 발생 구간)으로 원금의 상당액을 잃을 수 있다. H지수는 연계 ELS가 집중 판매된 2021년 2월 1만2229를 찍고 줄곧 하락해 1월 5일 기준 5606까지 떨어져 원금 손실 가능성을 키웠다.

홍콩항셍중국기업지수(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금융권 가입자는 10만명에 이른다. 지난해 11월 15일 기준 홍콩 ELS 총판매 잔액은 19조3000억원으로 은행 15조9000억원(24만8000계좌), 증권 3조4000억원(15만5000계좌)이다.

이 중 녹인은 전체 55.8%(10조8000억원)에 달한다. 2021년 초 판매를 시작하면서 새해부터 손실을 입은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1분기 3조9000억원(20.4%), 2분기 6조3000억원(32.3%) 등으로 올 상반기에 전체 투자금액의 52.7%인 10조2000억원의 만기가 몰려있다.

문제는 투자자 상당수가 불완전판매를 주장하고 있다. 반면 홍콩 H지수 ELS 판매사들은 “상품과 관련한 충분한 설명을 했고, 가입자가 이를 확인하는 녹음도 갖고 있다”는 입장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H지수 ELS 가입자의 90% 넘게 재투자자”라며 “고령 투자자라는 이유만으로 판매사의 책임만 묻는 것은 과도하다”고 말했다.

실제 65세 이상 고령 투자자 수는 8만6만 계좌(21.6%), 금액으로 5조4000억원(30.5%)에 달한다. 다만, 과거 파생결합증권 투자 경험이 없는 투자자 비중은 계좌 수 기준 8.6%고, 나머지 91.4%가 재투자자인 만큼 단순 피해자라고 보기 어렵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이에 금융감독원은 8일부터 주요 판매사 12곳(KB국민·신한·하나·NH농협·SC제일은행, 한국투자·미래에셋·삼성·KB·NH·키움·신한투자증권)에 대해 순차 현장검사를 실시한다.

업권별 최대 판매사인 KB국민은행, 한국투자증권을 시작으로 이달 중 나머지 10개 판매사에 대해서도 검사를 진행한다. 특히, KB국민은행, 한국투자증권에 대해서는 분쟁민원 사실관계를 파악하기 위한 민원 조사도 동시에 실시할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원 관계자는 “이날부터 판매사 12곳에 대한 현장검사에 착수한다”며 “특히, 은행권은 2019년 DLF 등 사모펀드 사태 이후 투자자 보호를 전제로 ELS 같은 고난도 금융상품의 신탁판매 허용을 요청했던 점을 고려해 고객 이익을 고려하지 않은 영업 행태로 인한 위법 사항이 확인되면 엄중 조치하겠다”고 강조했다.

앞서 금감원의 현장조사 결과 KB국민은행은 지수 변동성이 30% 이상이면 ELS 상품 판매 목표금액의 50%만 판매한다는 기존 규정을 80%로 변경하면서 영업 우선정책을 펼쳤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또 은행 핵심성과지표(KPI) 총점 1000점 중 고위험 ELS나 주가연계 신탁(ELT)과 직·간접적으로 연계되는 점수 비중이 30∼40%로 높아 직원들에게 ELS 판매 확대를 유도했다는 지적이다.

KB국민은행은 고객 수익률을 KPI에 반영하면서, ELS가 손실 구간에 있더라도 고객이 환매를 신청하지 않으면 조기상환한 사례와 마찬가지로 쿠폰 수익률을 그대로 인정했다. 이 같은 구조로 인해 은행 직원이 ELS를 많이 판매할 유인이 생겼고, 고객이 중도해지를 요청했을 때도 해주지 않은 사례가 생겼다고 금감원은 보고 있다.

신탁계약서와 투자자정보 확인서 등 일부 계약 관련 서류는 금융소비자보호법에 의해 10년동안 보관해야 하지만, 일부 금융사가 보관하지 않은 사례도 발견됐다.

금감원 관계자는 “신속하게 불완전판매나 판매 행위에서의 불법 사항 등을 조사해 배상기준을 마련할 것”이라며 “아울러 검사, 분쟁조정, 제도개선 검토에 이르는 절차를 빠르게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는 불완전판매가 확인될 시 통상 판매사에 최대 80%의 배상책임을 물리고 있다.

한편 최근 이복현 금감원장은 출입기자단 신년인사회에서 “자기책임 하에 투자해야 하는 게 기본 원칙이지만 과거 DLF나 사모펀드 환매중단 사태를 겪은 판매사들이 여전히 면피성으로만, 실질적인 투자자 보호에 소홀했다면 책임이 불가피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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