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곰이 사람보다 많은 동네…곰들은 왜 다이어트 중일까?

한겨레 2024. 1. 8.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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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종영의 엉망진창 행성 조사반 1회
이누이트 마을인 알래스카 카크토비크 근처에 나타난 북극곰. 이누이트족이 사냥 후 남긴 고래 부산물에서 먹을 것을 찾고 있다. 류우종 기자
엉망진창 행성 조사반은?기후위기 논란의 현장에 ‘엉망진창 행성 조사반’이 출동합니다. 어지러운 숫자들로 뒤덮인 복잡한 자연-사회 현상을 엉망진창 조사반이 주제별로 조사해 쉽게 설명해드립니다. 조사반의 활동은 역사적 사건과 과학적 사실과 의견, 취재와 논문, 보고서 등을 통해 재구성한 것입니다.

조사반에 제보가 들어왔어요. 북극에 사는 북극곰이 다이어트를 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비만은 만병의 근원! 우리집 개 ‘아롱이’도 고도비만으로 체중 감량에 들어가긴 했는데, 걔야 개껌을 너무 많이 먹어서 그런 거고… 북극곰이 왜 다이어트를 하냐고요.

북극권은 북위 66.5도 북쪽의 지역을 일컫습니다. 북극하면 육지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남극은 육지(남극 대륙)이지만 북극은 바다(북극해)예요. 깨지고 부서지고 다시 붙어서 얼고… 시시각각 그리고 계절마다 움직이는 바다죠. 북극점에 가서 가만히 서 있어 보세요. 몸을 옮기지도 않았는데 얼마 뒤 북극점에서 떨어져 다른 곳에 있을 걸요. 바다얼음은 바다 위에 떠서 항상 움직이고 있으니까요.

전 세계 북극곰의 수도
이 문제를 조사하기 위해 캐나다 허드슨만의 작은 마을 처칠에 갔습니다. 북극곰이 마을을 활보하며 ‘똑똑똑’ 문을 두드리고 ‘콜라 한 병 없어?’라고 한다는 그곳. 슈퍼마켓 비닐봉지에도 북극곰이 그려져 있다는 그곳.

북극곰이 이 마을에 많은 이유는 다른 북극해 연안과 달리 매년 7월 말부터 11월 초까지 바다가 ‘완벽하게 얼지 않는다’(ice-free)는 점 때문입니다. 북극곰은 해안가에서 에너지를 비축하면서 바다가 얼기를 기다립니다. 특히 바다가 얼기 시작할 무렵인 10~11월에는 북극곰이 여기저기서 눈에 띕니다. 그래서 전 세계 과학자, 사진가, 기자들이 북극곰을 보러 이곳에 오죠.

캐나다 허드슨만의 작은 마을 처칠. 남종영

기차에서 내리자 ‘세계 북극곰의 수도’(polar bear capital of the world)라는 입간판이 반겨주었습니다. 북극곰전문가그룹(PBSG, Polar Bear Specialist Group) 소속 과학자가 나와서 조사반을 위해 브리핑을 해주었습니다.

“우리 북극곰전문가그룹은 1968년 창설된 세계 최고 북극곰 연구기구로서, 1973년 북극곰보호협약을 만들어내는 데 혁혁한 공로를 세웠고…”
“아니, 그거 말고요. 북극곰.”
“아, 흠흠. 북극곰은 유구한 역사를 가진 동물로서, 인간이 태어나기 전인 50만년 전에 그리즐리곰과 갈라져 바다에서 수영을 하다가 익사를 밥먹듯이 하던 중… (1시간이 흐르고) 본 단체가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에 보고한 추정치에 따르면, 현재 스코어 최소 2만2000마리, 최대 3만1000마리, 그러니까 약 2만6000마리가 있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추정이라면 정확하지 않다는 얘기?”
“북극곰은 외딴 서식지에서 아주 낮은 밀도로 서식합니다. 북극곰 찾으려면 헬리콥터 띄워야 하고… 통계 기법이 많이 들어갔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정~확해요.”

처칠은 사람보다 북극곰이 많은 곳입니다. 마을 인구는 899명인데, 여기 북극곰이 속하는 서부 허드슨만 계군의 개체수가 1030마리이거든요.

쓰레기 더미 앞을 지나고 있는 북극곰들. 게티이미지뱅크

처칠은 허드슨만 철도의 종착역이기도 합니다. 19세기만 해도 캐나다 대평원의 비버 모피를 실어 기차에 태우고 이 마을을 통해 유럽으로 보냈습니다. 20세기 중반까지는 대평원의 밀을 실어왔죠. 바다가 얼지 않는 7~9월 사이예요. 지구온난화 때문에 북극항로가 열릴 거라며 들썩거리지만, 처칠 항구에 가 보면 아직 녹슨 건물 그대로예요. 퇴락한 항구입니다.

처칠 마을의 역사에 북극곰이 처음 등장한 건 1942년이었습니다. 캐나다 군 기지 쓰레기장에 북극곰이 ‘먹을 거 없나?’ 하고 찾아온 거예요. 1960년대에는 처칠에 북극곰이 많다고 소문 납니다. 마을 쓰레기장 세 곳에 북극곰이 몰려든 거죠. 북극곰에 관한 한 최고 과학자 이언 스털링(Ian Stirling)이 말합니다.

“하필이면 1960년대부터냐고요? 역설적이지만 인간이 북극곰을 더는 해치지 않았기 때문에 북극곰이 가까이 온 거라고 봅니다. 원인은 확실치 않지만 1957년 허드슨베이 상사(Hudson’s Bay Company)가 모피 무역기지인 요크 팩토리(York Factory) 운영을 270년만에 중단하고 캐나다 군 부대는 철수했습니다. 1954년 원주민을 제외한 북극곰 사냥이 완전히 금지됐고요.”

북극곰이 마을을 어슬렁거리기 시작한 때는 인간의 압력이 현저히 줄어들었을 때와 일치한다는 것입니다. 1968년 11월에는 마을 쓰레기장을 북극곰 40마리가 뒤덮은 사건이 있었죠. 쓰레기 반, 북극곰 반.

그뒤 소문이 나면서 과학자들이 찾아오고 여행자들이 몰려들었습니다. 과학자들은 1967년 처음으로 북극곰에 전파발신기를 부착해 위치 추적을 시작했지요. 1970년대에 북극곰을 관광 자원으로 활용하자는 제안이 나왔고 1980년대부터 북극곰 생태관광이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북극곰 보안경찰’ 제프 처치머치가 북극곰 순찰을 위해 마취총을 준비하고 있다. 남종영

지금은요? 처칠은 ‘세계 북극곰의 수도’가 아니라 사실 ‘세계 북극곰 관광의 수도’이죠. 도로는 없고 기차와 비행기로 갈 수밖에 없는 외딴 이 마을에 성수기인 10~11월에 오려면, 일년 전에 교통과 숙박을 예약해야 합니다. 그 즈음엔 과학자, 사진가, 기자, 여행객이 뒤엉켜 마을이 북새통을 이룹니다.

그동안 처칠에 좋은 일만 있었던 건 아닙니다.

북극곰들이 시시때때로 마을 주변 쓰레기장에 들어가려고 했거든요. 당연히 마을 안에도 들어와 위험한 상황이 자주 발생하기도 했고요. 1975년 마을에서는 북극곰이 못 들어가도록 쓰레기장 주변에 울타리를 쳤는데, 이 놈들이 그걸 뚫고 들어가는 방법을 알아낼 정도였습니다. 동물원으로 이송되거나 어쩔 수 없이 사살되는 북극곰이 허다했죠.

결국, 북극곰 보안경찰단을 설립하기에 이릅니다. 연간 300통의 신고 전화를 처리하고, 매일 순찰을 돌면서 북극곰을 쫓아내는 겁니다. 공포탄을 쏴도 도망 안 가고 말썽 부리는 개체는 ‘북극곰 감옥’에 가둡니다. (잠깐! 매니토바주에서 정정을 요청했습니다. 북극곰관리시설(Polar bear holding facility)로 바꾸겠습니다) 감방이, 아니 객실이 28개 있는데, 두 배나 넓은 가족실도 2곳이라고 합니다. 에어컨도 나온대요. 한 달 동안 가뒀다가 풀어주는데, 바다가 얼고 난 뒤엔 헬기에 태워 마을에서 60km 떨어진 바닷가에 갖다 놓죠.

쓰레기장이 없어져서일까?
“당신이 제프 처치머치 경감이군요.”
“아닙니다. 정확히는 매니토바주 환경보전국 소속입니다.”
“북극곰이 다이어트를 하고 다닌다던데… 쓰레기장의 음식물을 먹고 고도비만이 된 거 아닙니까?”
“아닙니다. 쓰레기 매립장 뒤지는 건 옛날 얘기예요. 2006년에 마을 북쪽에 실내 자원재활용 센터를 만들었어요. 바닥이 콘크리트입니다. 정문과 창문은 금속 막대 자물쇠로 채우고요. 북극곰은 못 들어옵니다.”

그때, 한 조사반원이 들어와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북극곰이 먹던 다이어트약이 마을 외곽에서 발견됐다고 합니다. 지금 미국에서 싹쓸이해서 한국 사람들은 구경도 못하는 ‘삭센다’랍니다!”

긴급 상황 발생!

‘북극곰 보안경찰’ 제프 처치머치가 북극곰 관리시설을 점검하고 있다. 남종영

북극곰 경찰차에 올라 ‘삐뽀삐뽀’ 경광등을 켜고, 차 한 대 없는 마을 도로를 달렸습니다. (“폼 나서 켰다”고 처치머치 경감이 말했습니다) 도착한 곳은 북극곰이 마을로 진입하는 통로인 마을 북쪽 해안가 주변의 나대지.

12월이 됐는데도 바다는 여전히 파란 파도가 치고, 바람은 습한 온기를 머금고 있었습니다. 얼지 않은 툰드라의 땅에 북극곰의 것으로 보이는 발자국이 어지럽게 찍혀 있었습니다. 돋보기를 들고 발자국을 따라가던 조사반원이 소리쳤습니다.

“종이 한 장이 떨어져 있습니다. 뭐라고 적혀 있네요!”
“어? 무슨 내용이지?”

약을 먹고 버린 듯한 포장지에는 삐뚤삐뚤한 글씨로 다음과 같이 써 있었습니다.

‘조심하라, 당신들은 길을 잃었다.’

*1월15일에 이어집니다.

남종영 환경저널리스트·기후변화와동물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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