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비애·체념·좌절에도···‘내일 다시 쓰겠습니다’
“명료하면서도 쓸모 있고 고귀한 시”
“냉소주의에 빠지지 말자. 그런 말은 또 한번 써줘요. 냉소주의는 우리의 적들이 제일 좋아하는 것이기 때문에. 거기에 빠지면 안 됩니다.”
2009년 용산 철거지역에서 일어난 참사. 경찰의 폭압적인 진압이 끝나고 울부짖던 송경동 시인은 조세희 선생의 전화를 받았다. “경동이가 그곳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라는 조세희 선생의 말에 시인은 눈물을 왈칵 쏟았다. 조 선생은 “혁명이 필요할 때 우리는 혁명을 겪지 못했어”라고 했다. “냉소주의에 빠지지 말자”는 것도 선생의 말이었다. 송경동의 시 ‘혁명이 필요할 때 우리는 혁명을 겪지 못했어’는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저자 조세희 선생을 향한 추모 시다.
송경동 시인이 최근 시집 <내일 다시 쓰겠습니다>를 출간했다. 아시아 출판사의 K-포엣 시리즈로 나온 책에는 35편의 시가 실렸다. 그의 다섯번째 시집이다.
폭력적인 자본에 맞서 싸우는 문인,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 곁에 있는 문인,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 문인, 송경동은 ‘그런’ 시인이다. 시집에는 용산 참사 현장, 세월호 시위 현장, 을지로 ‘노가리’ 골목까지 그가 다녀간 ‘눈부신 폐허’의 현장과 분노가 담겼다. 그의 시 ‘종신형’은 재판부가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25년형을 선고한 날의 씁쓸함이 배어 있다. ‘온갖 지배이데올로기들로 무장된 삼중 사중의 감옥/감옥에 갇혀 있는 것은 박근혜가 아니라/아직도 우리 아닌가라는 서글픔에/오래 잠겨 있었다’.
시 ‘A는 B다’에서 그는 미얀마의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쿠데타군에게 목숨을 잃을 미얀미 시인 켓티의 뜻에 연대를 표하기도 한다.
그의 시는 살을 베어내는 듯한 현실에 절망하고 절규하면서도 다시금 일어선다. 시집에 담긴 ‘시인의 노트’에서 그는 ‘오늘’ 우울과 좌절을 하면서도 ‘내일’ 다시 쓰겠다고 한다. ‘자본과 권력은 그런 우리의 우울과 비애와 체념과 좌절을 사랑하지요.//(중략)//무슨 말도 잘 떠오르지 않고 세상과 삶이/안개 속처럼 뿌옇고 흐릿한 날이 있습니다./오늘이 조금 그렇습니다.//내일 다시 써보겠습니다.’
송경동은 함께 실린 에세이에선 자신의 분노 또한 경계한다. “분노하는 일이 관습이나 체면치레처럼 굳어지지 않기를 바라며, 사랑한다는 일들에 대한 언급이 조금은 더 깊어지기를 기다리며 적어지기를 바랍니다.”
진은영 시인은 “명료하면서도 쓸모 있고, 정직하며, 고귀한 시”라는 추천사를 썼다. 고명철 문학평론가는 “그가 시를 궁리하는 서재는 어엿한 집필 공간이 아니라 우리 시대의 도처에서 생겨나고 있는 폭압과 착취와 죽음이 엄습하는 삶의 현장 속”이라고 했다.
임지선 기자 visi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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