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바이오업계, 보툴리눔 독소 제제 생산기술 관한 정부 고시서 '국가 핵심기술' 해제 요청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가 철 지난 '산업기술' 관련 정부 고시 때문에 해외 진출에 애를 먹고 있다. 2010년 1월 공표된 '보툴리눔 독소 제제 생산기술'에 관한 개정 고시 얘기다. '산업기술의 유출방지와 보호에 관한 법률'에 근거해 나온 이 고시는 흔히 '보톡스'라 불리는 보툴리눔 톡신 제제 생산 기술을 '국가 핵심기술'로 규정했다. 정부는 6년 후인 2016년 11월의 추가 고시를 통해 아예 보툴리눔 톡신 균주까지 국가 핵심기술로 지정했다.
정부 고시 두 건의 문제점은 최근 한국제약바이오협회가 보툴리눔 톡신 관련 국가 핵심기술 지정의 해제를 요구하면서 불거졌다. 8일 제약바이오 업계에 따르면 한국제약바이오협회는 국내에서 보툴리눔 톡신 제제 품목 허가를 받은 17개 기업으로부터 보툴리눔 균주와 보툴리눔 톡신 제제 생산 기술의 국가 핵심기술 해제 관련 찬반 의견을 취합했다. 조만간 산업통상자원부에 전달할 예정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달 산업기술보호전문위원회를 열어 보툴리눔 톡신 안건을 심의할 계획이다. 17개 기업 중 압도적 다수가 '핵심기술 해제' 찬성으로 의견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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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미생물이 국가 핵심기술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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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툴리눔 톡신 제제 생산 기업 대부분은 2016년 톡신 균주의 핵심기술 지정 자체가 비상식적인 고시로 받아 들인다. 산업기술보호법에 따르면 국가 핵심기술은 방법 내지 기술상의 정보를 가리킨다. 보툴리눔 균주를 포함한 세균은 살아 있는 미생물이다. 법률상 아무리 적극적으로 해석해도 물건에 해당하지, 방법 또는 정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보툴리눔 균주는 해외기관을 통해서 구매가 가능하고 실제로 상업적 매매가 활발하게 이뤄지 있다. 물론 생화학무기로서의 전용 우려 방지를 위한 규제가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세계적으로 균주 거래는 기업들 간에 예외적인 게 아니다. 한국에서도 해외 균주를 일정한 대가를 지불하고 구입해온 사례가 존재한다. 관리는 필요하지만 국가 핵심기술로 볼만한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업계는 보툴리눔 톡신 제제 생산기술에도 비밀이랄 게 없다는 입장이다. 균주를 활용해 보툴리눔 톡신 제제를 만드는 공정은 다수의 논문과 특허를 통해 1950년대부터 공개됐다. 톡신 제제를 생산하는 한 기업 관계자는 "톡신 제제의 상업성이 각광 받으면서 제조 기술이 이미 범용화 단계에 접어들었다"며 "한발 물러서 14년 전 핵심기술 지정의 필요성을 인정하더라도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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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제약사들, 보툴리눔 톡신 제제 적응증 확대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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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브비, 입센 등 보툴리눔 톡신 제제로 큰 매출을 올리고 있는 글로벌 제약바이오기업들은 최근 미용시장을 넘어 치료시장으로 사업을 급속히 확장하고 있다. 포츈 비즈니스 인사이트에 따르면 세계 톡신 시장 규모는 2022년 기준 8조6000억원 규모다. 미용 시장이 4조원, 치료 시장이 4조6000억원 등으로 집계된다.
보툴리눔 톡신 제제 생산기술은 한국 기업을 빼고도 세계 10개국의 29개 기업이 보유하고 있다. 이들 기업은 10조원 규모에 이르는 톡신 제제 시장을 장악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현재 보툴리눔 톡신 제제의 경쟁력은 생산 기술이 아닌 시장 개척을 위한 다양한 적응증 확대에 있다고 볼 수 있다. 톡신 제제의 치료 적응증 확대를 위한 임상과 마케팅 경쟁이 격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반면 국내 보툴리눔 톡신 기업들은 생산 기술 단계에서부터 '국가 핵심기술'이란 명목으로 애를 먹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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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의 관련 법령 이미 존재… 중복 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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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복 규제도 문제로 꼽힌다. '국가 핵심기술'을 규정하고 있는 산업기술보호법이 아니더라도 최소 6개의 정부 부처가 6개의 법령을 통해 보툴리눔 톡신 균에 대해 '관할'을 내세우고 있다. 핵심기술 지정이 아니어도 엄격한 관리가 가능하단 얘기다.
예컨대 핵심기술 지정의 주무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 업무 관련 법률만 봐도 생화학무기법, 대외무역법 등이 존재한다. 이와 함께 테러방지법, 약사법, 감염병 예방법 등을 통해서도 보툴리눔 톡신에 대한 관리가 충분히 가능하다.
업계 관계자는 "균주 매매가 정상적인 방식으로 글로벌하게 이뤄지고 있고 다른 신약처럼 고도화한 연구개발이 필요한 분야도 아니다"며 "보툴리눔 톡신에 대한 중복 규제는 과도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보툴리눔 톡신 제제는 이미 국내외 수십개 기업에서 연구개발을 완료해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보편화된 기술"이라며 "국내 경쟁을 넘어 글로벌 시장으로 확대해야 하는 시점에서 정부의 과도한 규제가 오히려 수출 지연 등 부정적인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지용준 기자 jyjun@mt.co.kr <저작권자 ⓒ '성공을 꿈꾸는 사람들의 경제 뉴스' 머니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