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쫌아는기자들] 검머외 꼬리표에 대한 알토스 한 킴의 진심

임경업 기자 2024. 1. 8.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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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스타트업들이 가장 투자받고 싶어하는 벤처캐피털(VC)은 어디일까요. 가장 빈번하게 언급되는 VC는 국내 투자사가 아닙니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는 매년 스타트업 창업자와 재직자를 대상으로 ‘가장 투자받고 싶은 VC’를 조사하는데 수년간 부동의 1위를 기록한 곳은 바로 미국 실리콘밸리에 기반을 둔 ‘알토스벤처스’입니다. 미국 VC가 유독 국내 스타트업에 인기가 많은 건 그만큼 한국에 애정어린 투자를 많이 했고, 또 좋은 성과를 냈기 때문입니다.

알토스를 이끄는 이는 한국계 미국인인 한 킴(58·한국명 김한준) 대표입니다. 그의 첫 투자는 1세대 동영상 공유 플랫폼 ‘판도라TV’. 쿠팡과 크래프톤, 우아한형제들(배달의 민족)과 비바리퍼블리카(토스), 당근...지난 17년간 누적 1조원이 넘는 돈은 한국 스타트업에 쏟았습니다.

알토스의 성과와 한 킴의 명성에 대해선 모르는 이가 없지만, 창업자인 한 킴의 스토리에 대해선 편파적으로 알려졌을 뿐입니다. 그의 인터뷰는 여럿있지만, 제한된 글과 포맷 속에서 알토스의 성과와 투자 전략에 초점을 맞출 수 밖에 없는 한계도 있습니다.

안상현 기자와 쫌아는기자들의 포맷은 이런 틀 밖에서 한 킴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합니다. 세탁소 집의 아들에서 웨스트포인트를 나와 주한미군 공병장교였던 그가 어떻게 VC 업계에 관심을 갖게 됐는지,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그의 이야기와 첫 투자부터 지금까지 그의 투자 철학. 그리고 그가 고국인 한국에 갖는 애정과 사업적 가능성까지요.

때로 어떤 인터뷰는 인터뷰이의 의도와 다르게 전달되기도 합니다. 간결한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미디어의 숙명 같은 것이도 하고, 누군가는 행간에서 다른 메시지를 읽기도 합니다. 쫌아는기자들은 이번 인터뷰를 조율한 알토스 정인혜님에게 이번 인터뷰 배경을 물어봤습니다.

“이번 기획은 알토스를 부각하려고 인터뷰를 한 것이 아닙니다. 최초의 취지는 해외에서 나거나 자랐지만 다시 고국에 돌아와 글로벌 가교 역할을 하는 멋진 분들과 함께하자는 뜻이었어요. (앞으로 다른 인터뷰로 등장합니다) 실제로 미 교포 1.5세~2세들은 이제 성인이 되어 미 산업사회의 주류 인력으로 자리잡아 글로벌시대 차세대 리더로서 한국을 빛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한국에서 활동하는 순간, 이른바 ‘검머외’라는 꼬리표가 붙습니다. 해외서 활동하는 한국인은 자랑스러운데 말이죠. 출산율은 곤두박질 치고, 생산가능인구는 늙어가고 있습니다. 포용성을 높여야 다음 세대가 또 잘 살 수 있습니다. 나가는 한국인, 들어오는 교포에 대한 다양성을 인정할 때, 비로소 한국의 넥스트 챕터가 열린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사회가 되길 염원합니다.”

아래는 인터뷰가 지면으로 나간 뒤 한 킴 대표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쓴 글입니다.

“세탁소 관련. 일단 맞습니다. 아버님은 한국서는 회사를 경영 하셨지만 미국가서는 그경험 별 소용 없기때문 세탁소를 하셨습니다. 그당시 시카고에서는 그런분들이 많았습니다. 우리는 부모님들이 100시간 이상 일하면서 작은 아파트에서 조금씩 커지는 집으로 또 동네로 이사하는 (조금이라도 공부하기 좋은 환경) ‘더더더’ 를 지켜보면서 컸습니다. (Sung Woo Jo 갑자기 런드리고 생각나네요. ㅋㅋㅋ 큰 부담 가지진 말고 이번 년도에 큰 ‘더더더’ 부탁합니다.)

원래 이 기사 취지는 Innhye Annie Jeong 님의 말대로 해외교포 부터라도 조금이라도 좋은 인식을 가지게 하자...그리고 나중 교포가 아니라도 한국에 살게되는 사람들도 좋은 사람들 있다고 인식을 가지게 했으면 좋겠다 였습니다. 알토스 이야기로 부각할것은 아니였는데... 알토스 이제까지 이룬것은 우리 팀이 모두 한마음으로 다같이 이룬거고 그 과정에서 우리 도운분들은 엄청 많습니다 (종종 공유도 했고요). 또 하나. 참고로 지금은 전부 외국기관 자금이지만 시작할때는 한국서 도와주신 분들 또 기관들 많았습니다. 그분들 없었으면 지금 외국자본도 없었을거에요.”

쫌아는기자 2호는 CES 출장으로 라스베가스에 막 도착했습니다. 늘 이곳에 올 때마다 ‘누가 사막에서 이 화려한 도시를 개척했을까’를 생각합니다. 낯선 나라로 떠나 척박한 환경을 개척한 한인 이민자들도, 아무도 안 된다는 비즈니스에서 ‘제로투원’에 도전하는 창업자들도 비슷한 처지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쫌아는기자들의 인트로는 여기까지입니다. 아래부터는 안상현 기자의 인터뷰입니다.

2016년 5월, 알토스벤처스 첫 사무실에서 첫 촬영을 한 킴 대표. /알토스벤처스

◇10살 때 시카고로, “부모님도 ‘더더더’를 하셨다”

-한국계 미국인이신데, 어쩌다 미국인으로 살게 되셨는지 개인적인 스토리가 궁금합니다.

“10살 때쯤인 1976년 가족이 미국으로 이민을 갔습니다. 아버님이 한국에서 사업을 하다가 이런 저런 일로 안 됐고, 평택에 내려가서 작은 가게 하다가 미국 시카고로 이민을 가게 됐어요. 미국에 가서는 어머님이 세탁소를 하시고, 아버님은 공장을 다니며 자식들을 키우셨죠.”

-엄청 고생하셨을 것 같은데요.

”지금 생각해보면 부모님은 굉장히 힘들었던 세대죠. 적지 않은 나이에 낯선 나라에 가서 뭔가 만들어냈던 게 참 대단하셨던거 같습니다. 빈손으로 시작해 가게를 차렸죠. 가족이 4명인데 처음엔 작은 스튜디오에 살았습니다. 1년이 지나니 침실이 하나 생겼고 또 1년 지나니 침실 2개짜리 아파트로 옮겼죠. 제 방이 생긴 건 3년 정도 지났을 때 입니다. 작은 집을 산 건 4년 후였습니다. 외식을 1년에 한두번 할정도로 악착같이 돈을 모은 덕분이었죠. 오죽하면 웨스트포인트(미 육군사관학교)에 다닐 때 나오는 세계 각국의 음식 이름도 모를 정도였습니다. 집에서 먹던 한식 외에는 햄버거나 핫도그뿐이던 삶이었으니까요. 그때는 교수로 미국에 온 게 아닌 이상 모든 교포분들이 그런 삶을 살았습니다. 교수들도 교직이 없으면 막노동으로 벌던 세대니까요.”

-웨스트포인트에 입학한 계기가 궁금합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다기보단 뭔가 공공에 봉사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중·고등학생 시절부터 인생의 얼마 정도는 공공성을 띤 어떤 일에 바치고 싶다라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자연스럽게 군인을 하게 됐죠.”

-그랬던 군인이 어쩌다가 VC에 투신하게 됐나요?

”군대 첫 2년을 주한미군으로 복무했는데 그때가 힘들면서도 참 재밌었습니다. 공병 장교다보니 비행장 깔거나 시설을 철거하는 등 야외 작업이 많았습니다. (경기도) 여주나 이천 이런 데 있을 때 밖에서 텐트치고 몇 개월을 지냈는데 제게 한국처럼 추운 나라는 없었죠. 정말 너무 추웠습니다. 주한미군으로 있을 땐 제가 소대장이다보니 대대장 보고만 하면 곧바로 나가서 하고 싶은 작업을 할 수 있었고 그런 점은 제게 큰 매력이었습니다. 2년 뒤 미국 공병 본부로 다시 돌아가야했는데 미주리 주라는 완전 시골에 있었습니다. 본부다보니 굉장히 딱딱한 절차가 있었고, 몇주 전부터 계획한 게 아니라면 아무것도 못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거기서 답답함을 느꼈죠. 한국은 다이내믹한데 본부는 그렇지 않으니까. 그때 내가 뭘 좋아하는지 알게 됐습니다. (공병 장교니까) 폭파물 폭파 연습을 할 때 불발이 되면 장교가 직접 가서 터트려야 합니다. 만약 가까이 있을 때 터지면 죽을 수도 있죠. 저는 실전처럼 연습하는 그 순간이 오히려 편안했습니다. 오히려 스트레스가 좀 있으면 일을 빨리 처리하고 많은 일을 잘 해내는 스타일이었죠. 스트레스가 없는 게 제겐 스트레스인 셈이죠. 다이내믹한 한국에 있다가 공병 본부로 온 뒤 심심하다보니 대학원(MBA) 진학을 준비했습니다. 여러 군데를 지원하고 시험을 봤는데, 스탠퍼드대학에 합격해 바로 군인을 그만두고 가족과 함께 스탠퍼드로 향했습니다. 그때부터 비즈니스 세계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Han의 웨스트포인트 생도시절, 한국 육사생도들과 함께 찍은 사진. 누가 한 킴 대표인지 알 수 있다. /알토스벤처스

◇첫 투자는 판도라TV, “법으로 막았더니 빈자리는 유튜브가.. 참 아쉬웠다”

장병규 의장을 만나고 “이곳에 정말 기회가 많고 우리가 투자를 해야겠다”

-그럼 군대를 나온 후 첫 직장은 어디였나요.

“MBA를 다닐 때 취업이 잘 안 되다가 ‘P&G(프록터앤갬블)’ 한 곳이 받아줬어요. 당시 P&G에 웨스트포인트 출신이 많았는데, 그 덕분이었던 것 같아요. 다만 그곳에 똑똑하고 좋은 사람이 참 많으면서도 어느 틀이 있고 그 틀에서 벗어나면 매맞는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회사는 잘 나갔지만 저는 다시 갑갑함을 느꼈죠. 3개월만 일하고, MBA를 졸업하면서 부즈앨런해밀턴이란 컨설팅 회사에 입사해 컨설턴트 일을 했습니다. 그때 은사였던 스탠퍼드대 교수님(황승진 스탠퍼드대 석좌교수)에게 연락이 와서 첨단기술(IT) 분야 투자 건들을 보고 있는데 도와줄 수 없냐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당시 저는 하이테크도 잘 모르고 투자에도 관심이 없어 알토스벤처스를 함께 만들었던 친구로 지금도 알토스에 있는 남호를 소개시켜줬죠. 브랜든이라는 친구도 있었구요.”

-그럼 어쩌다가 알토스벤처스를 만들게 되신 건가요?

“당시 스탠퍼드 졸업생 출신인 국내 모그룹 회장님이 계셨는데, 1996년쯤 그 분이 초기 자본을 댈 테니 셋이서 같이 투자펀드를 맡아달라 하셨습니다. 고민을 거듭하다가 시작하게 됐죠. 하지만 이듬해 한국에 IMF외환위기가 터지면서 해당 그룹의 경영 사정이 어려워졌고, 보내주기로 한 펀드 투자금도 미처 다 채워주지 못하는 상황이 됐습니다. 나라가 망하는 상황인데 돈 더 달라고 얘기할 수도 없고, 결국 미국에 있는 다른 투자 기관을 통해 메꿨죠. 첫 공식펀드 규모가 6800만달러였습니다. 근데 문제는 닷컴버블이 꺼질 때 이뤄진 투자라 손실을 엄청 봤습니다. 그때만 해도 우리 투자 인생은 이제 끝났다. 돈을 잃은 투자자에게 누가 투자를 하겠냐며 망연자실했습니다.”

-그럼에도 투자를 계속 하셨는데, 첫 한국 투자 계기가 궁금합니다.

“첫 투자가 2006년 ‘판도라TV’였어요. 원래 실리콘밸리에 있었으니 유튜브에 투자하고 싶었어요. 근데 세퀘이아(미국의 대형 VC)가 먼저 굉장히 빨리 움직이는 바람에 투자 기회를 놓쳤고 다른 곳을 검토하고 있었어요. 그때 마침 인텔에서 투자 총괄하는 친구에게서 이야기를 듣게 됐죠. 그 친구 역시 한국계 미국인이였는데 ‘내가 한국 출장을 다녀왔는데, 판도라TV가 한국에선 완전 잘 나간다’ 이런 얘기를 해서 인텔과 같이 투자를 검토하게 됐습니다. 김경익 당시 판도라 대표도 미국으로 불러서 얘기도 듣고요.

당시만 해도 판도라TV는 서버가 자꾸 다운되고, 돈이 없어서 추가 서버를 못 사는 상황이었습니다. 트래픽의 30%가 접속을 못하고 있었죠. 미국의 다른 투자자들은 이런 측면을 기술력 부족으로 평가했습니다. 이런 곳에 왜 투자하냐는 것이었죠. 하지만 저랑 인텔에 있던 친구는 다르게 생각했습니다. 30%가 못 들어올 정도로 대단한 인기라고. 서버 증설은 돈과 시간만 있으면 해결되는 문제였고, 소비자를 이토록 끌어들이는 서비스가 값어치 있다고 여겼습니다. 인텔에선 끝내 투자 허가가 나지 않았지만 알토스는 300만달러를 투자하고 후속 투자까지 해서 총 500만~600만달러 정도로 투자했었습니다. 물론 이후 사이트에 올라오는 불법 콘텐츠 책임을 플랫폼에 전가하는 법이 제정되면서 판도라TV가 무너져 손실을 봤지만요. 그 빈자리를 유튜브가 차지했죠. 타다가 법 때문에 망해서 억울한 것과 비슷했습니다. 투자란게 플러스가 있으면 당연히 마이너스가 있지만, 그런 식으로 마이너스가 나면 참 아쉽습니다.”

-첫 한국 투자마저 실패였는데 계속 투자를 하셨네요?

“복합적이긴 한데 일단 장병규(크래프톤 창업자 겸 이사회 의장)님이 떠오르네요. 2007년쯤인가 주변에서 둘이 잘 맞을 것 같다며 장병규님을 소개해줬습니다. 사람이 참 좋았습니다. 당시 그분은 ‘첫눈(장병규 의장이 설립한 검색엔진업체로 2006년 네이버 운영사 NHN에 350억원에 매각)’을 막 매각한 뒤라 투자에 관심이 많았고 우리에게 투자를 배우고 싶어했습니다. 저 역시 이 사람에게 배울게 참 많다고 생각해 많은 시간을 함께 했습니다. 당시 장병규님은 집을 하나 마련해서 대학생들 데려와 하고 싶은 개발 맘껏하라며 재워주고 먹여주는 프로그램을 운영했습니다. 사재 털어서 학생들에게 기회를 주는 걸 보면서 이 사람 돈 정말 멋있게 쓴다고 생각했죠. 그런 분이다보니 늘 주변에 좋은 사람과 팀이 따랐습니다. 2008년엔 게임 테라를 만들던 블루홀(크래프톤 전신)에도 투자를 했고, 그분의 소개로 배달의 민족에도 투자를 할 수 있었습니다. 다른 분에게 소개 받아 쿠팡에도 투자를 했고요. 어느 순간부터인가 장병규 의장이 내개 한국에 와서 시간을 더 보내고 (국내 IT 스타트업들) 투자 좀 해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그분은 늘 ‘투자해주면 도움이 많이 될 것 같다’며 절 꼬셨죠. 당시 한국의 VC 펀드들은 부품이나 제조업 분야 투자를 잘해서 성공했지, 인터넷이나 모바일은 거들떠보지도 않았거든요. 장 의장님처럼 돈을 번 1세대 창업가가 자기 돈까지 써가면서 유망주들을 지원하는데 그 다음 단계 투자를 해주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다는 게 제 투자 계기였습니다. 여러 회사 대표를 만났습니다. 그때 생각했죠. 이곳에 정말 기회가 많고 우리가 투자를 해야겠다고.”

#크래프톤, #배민, #지그재그, #쏘카, #직방, #토스 #당근 대표님들과. 그 유명한 ‘누가 밥값을 냈을까’ 사진. /알토스벤처스

◇100% 미국에서 출자 받은 돈, 투자자들 설득 어떻게 했나

“쿠팡 왜 투자? 한국 상위 5개 도시가 미국보다 크다, 한국에 투자하지 않으면 바보”

-전체 포트폴리오에서 한국 투자 비중은 얼마나 되나요?

“투자금액으로 보면 30~40% 정도입니다.”

-펀딩은 모두 미국 쪽에서 이뤄지나요?

“거의 100% 다 미국에서 출자받은 돈이죠. 초기에는 한국 기관들도 만났는데, 경력 얼마 이상인 사람이 몇 명 이상이여야 하는 등 준수해야할 조건들과 귀찮은 요구들이 굉장히 많았어요. 저희는 자격미달이라 도무지 맞춰줄 수가 없었죠. 그래서 우리는 처음부터 미국 자본으로만 투자를 해왔습니다.”

-당시 한국 기업에 투자한다고 하면 미국 LP(출자자)들이 반기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당시 해외 LP들이 한 제일 어려웠던 질문은 ‘왜 한국에선 (IT분야) 큰 회사가 안 나오냐’였습니다. 그때 그나마 네이버가 가장 컸고, 카카오는 나오기도 전이었습니다. 미국 기관 입장에서 보기엔 제대로 된 엑싯(투자금 회수)도 이뤄진 적이 없는 곳이었습니다. 한국은 구조적으로 엑싯이 어려운 곳이었습니다. VC펀드는 다 만기가 5년짜리에 회사를 팔면 나쁜 놈, 외국 회사에 팔면 더 나쁜 놈 취급을 받았으니까요. 유일하게 돈을 버는 길은 상장 뿐인데, 상장을 하려면 이익이 나야 하니 비용 절감 엄청해서 이익 몇십억 내고 IPO를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럼 투자자들은 상장 첫날에 지분을 다 팔고 나와버리죠. 회사 입장에선 간신히 상장해도 더 치고 나갈 동력을 잃어버리는 겁니다. 되레 사업 아이템이 괜찮다고 생각한 큰 기업에서 인재 빼가고 기술 탈취하면서 경쟁에서 밀려나죠. 그렇다보니 인터넷쪽 회사 투자를 기피했습니다.”

-그럼 어떻게 설득했나요?

“일단 우리는 장기 투자를 내세웠습니다. 우리는 팔고 나오지 않을 것이고 장기적으로 회사를 키울 거라고 했습니다. 한국에도 1조 넘는 회사가 더 많이 나와야하고 충분히 나올 수 있다고요. 실제 알토스벤처스는 펀드 만기가 기본 12년이예요. 12년에 GP(투자 책임자) 마음대로 2년 연장이 가능하고, 14년이 지난 후에는 LP들 과반수 동의 매년 계속 연장할 수 있습니다.”

-장기 투자의 논리는요?

“예컨대, 쿠팡의 거래액이 1조가 되는 기간은 미국 아마존 거래액이 1조가 되는 기간보다 훨씬 짧았습니다. 그럼 다음 질문이 ‘한국은 굉장히 작은 나라인데 어떻게 미국보다 더 빨리 1조를 달성하느냐’겠죠. 중요한 건 인구 사이즈와 소득 등인데, 당시 한국은 온라인 이용률이 굉장히 높았고 인구 역시 전체 인구가 아닌 (배송 서비스가 주로 이뤄지는) 도시 인구를 봐야 했습니다. (당시 인구 통계를 보았을 때) 미국에서 큰 도시 중심으로 배송이 이뤄지는데, 한국 상위 5개 도시가 미국 상위 5개 도시 인구보다 훨씬 컸습니다. 상위 10개 도시로 넓혀도 결과는 같았습니다. 이렇게 보면 한국이 미국보다 큰 시장인 거죠. 거기다 한국은 (다인종·다문화 측면에서) 미국 같은 나라도 아니니까 고객 하나를 얻는데 드는 비용도 더 적습니다. 한국에 투자하지 않으면 바보라는 논리로 설득했죠.”

알토스 벌링게임 미국 본사에 걸려있는 고슴도치 사진. 알토스 오피스를 방문한 창업자, 오랜 인연들은 해당 사진 앞에서 기념촬영을 한다. /알토스벤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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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트포인트에서 배운 전술, “3대 1 어드밴티지가 있어야 이길 수 있다.

좁은 타깃에서 이겨야 넓은 시장을 나갈 자격이 생긴다.”

-요즘 미국에서도 한국 기업에 대한 투자 관심이 높은 편인가요?

-국내 스타트업의 해외 진출도 적극 지원하시는지.

-또 투자한 회사 중 자랑할만한 곳이 있을까요.

알토스 애뉴얼미팅을 4년만에 한국에서 개최했다. 애뉴얼 미팅에서는 전 세계 LP들이 한국에 방문한다. 23년에는 약 100여명의 70여개사 LP들이 방문했다. 해당 세션에서는 유망한 한국 스타트업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지며 23년엔 플레이리스트, 엘리스, 토스뱅크가 발표했다. 사진은 엘리스 김재원 대표. /알토스벤처스

◇“결국 창업자가 해내는 것, 투자자 때문에 회사가 잘 될 수는 없다”

매출 수백억원 때 김봉진 창업자에게 한 이야기, 그가 ‘더더더’를 말하는 이유

-그럼 기억에 남는 실패 사례도 있을까요.

-모바일 시대에 적기 투자를 해서 큰 성공을 거뒀듯이 지금은 AI 시대가 펼쳐지고 있습니다. 어떤 기준을 갖고 투자를 하시나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알토스벤처스가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에 어떤 변화를 줬다고 자평하시나요.

스탠포드 캠퍼스에서 있었던 56회 Jack MacDonald's Investments Class에서의 강연. 왼쪽부터 Anthony Lee, Han Kim, Ho Nam. 모두 스탠포드MBA에서 만난 인연으로 지금의 알토스 GP로 함께하고 있다. /알토스벤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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