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신년 기자회견 언제까지 검토만 할텐가[핫이슈]

김병호 기자(jerome@mk.co.kr) 2024. 1. 8.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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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서울 광화문역 인근에서 거부권거부전국비상행동 주최로 열린 ‘거부권 남발 윤석열 정권 거부한다! 긴급행동’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 4일 신년 기자회견을 했다. 자민당 정치자금 스캔들로 내각 지지율이 한때 10%대로 떨어지는 등 최악의 상황에서 카메라 앞에 섰다. 자민당 총재를 겸한 기시다 총리는 모두 발언에서 정치 비자금 의혹에 대한 사과와 함께 극복 방안을 제시했다. 또 일본인들이 새해 발생한 지진 등에 관해서도 정부 입장이 궁금하던 차에 신년 기자회견은 좋은 기회였다. 새해 벽두 ‘대국민 사과’보다는 기자들 질문에 답하는 형식으로 해서 본인 입장을 분명히 밝힐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작년 말부터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 여부를 놓고 말만 무성하지 언제 성사될지는 여전히 블랙박스다. 대통령실은 아직도 검토중이라는 말만 반복한다. 신년에 국민과 소통 창구가 되는 기자회견을 놓고 정치적 유불리를 따지는 모양새가 보기 안 좋다. 기시다 만큼이나 윤석열 대통령에게 묻고 싶은 게 많은 우리 국민한테는 참 몹쓸 짓이다. 2022년 8월 ‘대통령 취임 100일’ 기자회견이 마지막인 점을 감안하면 국민이 이후 사건들에 대해 윤 대통령 입장을 직접 듣고 싶은 것은 당연하다.

일명 ‘김건희 특검법’ 거부에 대해 대통령실 비서실장이 아니라 윤 대통령이 직접 견해를 밝히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부인 얘기를 직접 꺼내기 껄끄러울 수 있지만 윤 대통령은 자신이 최고 공인 신분인 점을 감안하면 뭐를 계산하고 따질 계제가 아니다. 특검 실시에 대한 찬성 비율이 60~70%나 되는 마당에 비서실장을 통해 재의요구(거부) 배경을 밝히고, 대안으로 특별감찰관 임명, 제2부속실 검토를 거론한 것은 정공법이 아니다. 이런 제도를 새로 둔다고 해도 단속 효과를 장담할 수 없고, 국민은 이들 기관의 활동을 잘 믿지 않는다. 박근혜 정부 때 처음 임명된 특별감찰관은 청와대 민정수석 비위를 감찰하다 갈등을 빚고 사표 내면서 역할 한계가 불거졌다. 제2부속실은 대통령 부인 수행을 하며 권력기관이 됐다. 앞으로 특별감찰관 임명 과정에서 정치권 갈등과 ‘문고리 권력’을 잡은 부속실 인사들의 전횡 문제도 터질 수 있다.

그렇다고 대통령 비서실장이 나와 특검 거부 이유까지 분명히 밝힌 마당에 되돌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결국엔 대통령이 직접 나서 국민에게 설명하고 설득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만일 거부권 행사가 당당하다면 윤 대통령은 법률가 답게 비서실장보다 논리적으로 더 잘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많은 국민은 김 여사 특검법이 지난해 11월 터진 ‘몰카 명품백’ 사건에 대한 것으로 오해하고 있다. 몰카 건만 해도 사건 발생 직후 대통령실이 서둘러 입장 표명과 함께 경위를 설명하고 재발 방지 노력을 강조했다면 지금까지 야당 공세를 받을 일은 아니다. 명품백 수령이 김영란법 위반이라면 그것 자체로 상응한 처벌을 받으면 되는데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이 침묵하다 보니 야권은 그것도 특검 대상에 추가하려고도 한다. 대통령 부인이 300만원이나 되는 명품백을 개인적으로 받은 것은 명백히 잘못된 것인데도 여당은 이에 대한 사과는 없고 왜 몰카 행태만 탓하나.

대다수 국민이 대통령 부인을 상대로 함정을 파서 망신을 주는 자칭 목사라는 인간의 기이한 행태에 공분하고 있다. 몰카 작업을 한 양반이 좌파 매체와 인터뷰한 유튜브 영상 댓글조차 90% 이상이 김 여사가 아니라 목사의 행태를 뜨겁게 비판하고 있다. 그렇다면 윤 대통령은 뭐가 두려운가. ‘이런 게 잘못됐고 앞으론 이렇게 잘 하겠다’는 말을 왜 시원하게 못하나.

어려운 사과를 할 줄 아는 사람이야말로 자존감이 높은 자다. 자존감이 낮으면 솔직한 사과 대신 거짓 변명하고 피하기 마련이다. 이 점에서 윤 대통령이 부인 문제에 가만히 있는 것은 그동안 보여줬던 당당한 모습과 맞지 않는다. 윤 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경시하는 중국과 러시아에 굽히지 않고 나름 소신을 밝히는 ‘파이터형’이다. 국내 문제에서도 야당 비판을 감수하고 속시원히 말하고 해야 할 일을 한다. 사람들을 불러모아 맏형 같은 통큰 리더십을 발휘할 정도로 인간적 매력도 있다. 자신감과 자존감이 높을 게 분명한데도 국민이 무척 의아해하는 부인 일에는 왜 작은 변명조차 없는지 모르겠다.

김 여사 건에 대한 해명이 없으면 더불어민주당은 이번 총선만이 아니라 윤 대통령 임기 내내 물고늘어질 것이다. 시간이 갈수록 특검법 약발은 떨어질 것이지만 윤 대통령도 흘러가는 시간 앞에서 불리하다. 4월 총선에서 민주당이 승리하고 대통령 임기가 2년 남짓 된다면 지금보다 더한 야당 독재와 식물 정부가 재현된다.

윤 대통령 말투는 어수룩했던 박근혜, 문재인에 비하면 힘이 있고 호소력이 있다. 기자회견에서 김 여사 건 말고도 해외 출장시 기업 총수들과의 폭음 소문, 부산 떡볶이 회동 등과 관련한 불편한 질문이 나올 수 있다. 진정성 있는 답변을 통해 대통령이 솔직함과 인간미, 관용, 유머 감각까지 보여준다면 이는 오히려 대통령 지지도에 플러스가 될 수 있다. 2000년대 초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생중계되는 ‘국민과의 대화’에서 어린 학생의 돌발 질문에 기민하면서도 위트 있는 답변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학생이 “첫 경험이 언제였나요?”라고 묻자 푸틴은 당황하지 않고서 “언제 처음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마지막은 언제였는지 또렷하다”고 말해 환호를 받았다.

김 여사 건에 대한 국민적 의혹을 불식하려면 특검을 거부한 상황에서 윤 대통령이 직접 나서는 수밖에 없다. 그 방법 중 하나는 신년 기자회견을 조속히 열어 대통령이 진솔한 견해를 밝히고 더 이상 정치쟁점화 하지 말 것을 호소하는 것이다. 야당은 반응이 없겠지만 집권 3년 차를 맞아 커져가는 불통 이미지를 쇄신할 수 있다. 그래야 총선 승리의 길도 보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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