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 글릭, 어둠이 주는 위안의 힘 알고있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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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빛은 우리에게 평화를 주지 않을 거예요."
최근 출간된 글릭의 시집(시공사) 13권을 모두 번역한 정은귀(사진) 한국외국어대 영미문학·문화학과 교수는 글릭에 대해 "어둠이 주는 기묘한 위안의 힘을 알고 있었던 시인"이라고 말한다.
"글릭은 어둠이 주는 기묘한 위안의 힘을 알고 있었던 시인이기에, 죽음이 그에게 그다지 큰 사건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아마 예감하고 조용히 준비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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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 속 고통 바닥까지 드러내
꾸밈없는 목소리에 치유 받아”
“하지만 빛은 우리에게 평화를 주지 않을 거예요.”
2020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미국 시인 루이즈 글릭(1943∼2023)의 시 ‘우화’의 마지막은 이 말로 끝난다. 최근 출간된 글릭의 시집(시공사) 13권을 모두 번역한 정은귀(사진) 한국외국어대 영미문학·문화학과 교수는 글릭에 대해 “어둠이 주는 기묘한 위안의 힘을 알고 있었던 시인”이라고 말한다. 지난달 서울 중구 문화일보에서 정 교수와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2020년부터 3년을 글릭의 시 번역에 매달렸던 그는 글릭의 시와 생이 “참 징하다”고 했다. “남편과의 관계, 부모와의 관계 등을 너무나 솔직하게 드러낼 뿐 아니라 관계의 바닥까지 끝까지 물고 늘어져서 이야기합니다. 상처도 켜켜이 들여다보고요. 어떨 땐 정말 징하다는 생각도 들죠.”
그럼에도 글릭의 시에 푹 빠져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시인의 고통이 시인 자신만의 것이 아니게 느껴지기 때문. 글릭의 시는 개인적인 동시에 보편적이다. 개인적인 아픔을 다루면서도 주관적 관념론에 빠지지 않는다. “삶에 대해 감상적인 부분이 전혀 없어요. 시의 형식은 서정시지만 내용은 이지적이에요. ‘내가 너를 치유해주겠다’고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지만, 시를 읽고 나면 위안이 되고 치유가 되지요.”
서정시라는 틀 안에서 시도한 다양한 형태의 시적 실험들 역시 정 교수를 붙들었다. 그는 “글릭이 서정 시인으로서의 자리를 꼿꼿이 지키면서 시집마다 시도하는 실험들이 재미있어서 지겨운 줄 몰랐다”고 말한다.
글릭의 시가 갖는 위안의 힘은, 어둠과 절망에서 나온다고 정 교수는 설명했다. “잔혹해요. 시 ‘아이들 이야기’를 보면 ‘우리가 희망을 다시 찾고 싶다면/우리는 희망이 사라진 곳으로 되돌아가야 한다’고 말해요. 잔혹한 현실 속에서 그냥 스러지는 게 아니라 어떻게든 다시 살아내야 하는 운명을 다부지게 각인시키는 거예요.”
글릭은 지난해 10월 다른 세상으로 건너갔다. “글릭은 어둠이 주는 기묘한 위안의 힘을 알고 있었던 시인이기에, 죽음이 그에게 그다지 큰 사건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아마 예감하고 조용히 준비했을 거예요.”
글릭의 마지막 시집 속 표제작 ‘협동 농장의 겨울 요리법’은 겨울, 노인들의 이야기다. 겨울이 오면 숲으로 향하는 노인들이 그곳에서 이끼를 모으고 이끼를 삭혀 샌드위치를 만들며, 예쁜 이끼로 분재도 만드는. “힘든 시절의 힘든 이야기”를 하며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같은 순서로 같은 일을 할 것”. 탄식하지 않고 묵묵히, 같은 걸음, 같은 순서, 같은 속도로. 엄혹한 겨울의 세계를 우리가 어떻게 지나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듯하다.
박세희 기자 saysay@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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