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분 자아내는 사람들 신상 공개…사적 제재인가, 공적 기여인가 [핫이슈]

이은아 기자(lea@mk.co.kr) 2024. 1. 8. 09:06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여성가족부는 2021년 7월부터 이혼 후 자녀를 양육하는 전 배우자에게 양육비를 제대로 주지 않은 '나쁜 아빠'와 '나쁜 엄마'들의 명단을 공개하고 있다.

양육비이행법 시행으로 여가부가 나쁜 아빠·엄마의 신상 공개를 시작하자 '배드파더스'는 사이트를 닫았다.

마땅히 지급해야 할 양육비를 안 준 나쁜 아빠·엄마라 하더라도 그들의 신상을 온라인에 공개하는 것은 명예훼손죄가 된다는 것이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배드파더스 홈페이지. [사진 출처 = 배드파더스 홈페이지]
여성가족부는 2021년 7월부터 이혼 후 자녀를 양육하는 전 배우자에게 양육비를 제대로 주지 않은 ‘나쁜 아빠’와 ‘나쁜 엄마’들의 명단을 공개하고 있다. 지금까지 명단이 공개된 나쁜 아빠·엄마는 72명이다. 492명은 출국이 금지됐고, 461명은 운전면허가 정지됐다. 중복 인원을 제외한 제재 대상자는 총 504명이며, 이 가운데 121명이 양육비를 전부 또는 일부 지급하는 등 제재 효과도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나쁜 아빠·엄마 명단 공개 제도 도입에 큰 역할을 한 것이 ‘배드파더스(Bad fathers)’다. ‘배드파더스’는 정부가 나서기 전인 2018년 7월부터 자녀 양육비 미지급자의 사진과 이름, 출생 연도, 거주지역, 직장명, 전화번호 등을 공개했다. ‘배드파더스’는 한 때 하루 평균 방문자가 7만~8만명에 육박할 정도로 큰 관심을 끌었다. 양육비이행법 시행으로 여가부가 나쁜 아빠·엄마의 신상 공개를 시작하자 ‘배드파더스’는 사이트를 닫았다. 하지만 여가부의 신상 공개는 사진 없이 이름과 주소만 공개되는 한계가 있다. ‘배드파더스’ 운영자는 다시 ‘양육비 해결하는 사람들(양해들)’을 통해 양육비 미지급자의 얼굴을 공개하고 있다.

이처럼 많은 사람의 지지를 받고 양육비 지급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에 기여한 ‘배드파더스’도 명예훼손이라는 법의 심판을 피해 가지는 못했다.

대법원은 지난 4일 ‘배드파더스’ 운영자에 대해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죄를 인정해 벌금 100만원의 선고유예를 내린 원심을 확정했다. 선고유예는 유죄 가운데 가장 가벼운 처벌이기는 하지만 무죄는 아니다. 마땅히 지급해야 할 양육비를 안 준 나쁜 아빠·엄마라 하더라도 그들의 신상을 온라인에 공개하는 것은 명예훼손죄가 된다는 것이다.

나쁜 아빠·엄마뿐 아니라 공분을 자아내는 사람들에 대한 신상 공개는 계속되고 있고, 그와 관련한 논란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유튜브 채널 등을 통해 ‘부산 돌려차기 사건’의 가해자 신상이 공개됐고, 서울 강남구에서 롤스로이스 차량을 몰고 인도로 돌진해 피해자에게 중상을 입힌 피의자 신상도 밝혀졌다. 최근에는 배우 고(故) 이선균 씨를 협박해 돈을 뜯어낸 혐의를 받는 여성의 이름과 얼굴도 공개됐다.

대중들은 ‘정의 구현’이라며 지지하고 있지만 신상 공개는 현행법상 불법이다. 범죄 피의자의 신상정보 공개는 강력범죄나 성범죄에 한해 경찰 내외부 위원들로 구성된 신상정보공개심의위원회에서 과반의 찬성을 얻어 이뤄진다. 이런 절차 없이 개인이 피의자의 신상을 공개할 경우 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등에관한법률(정보통신망법) 위반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

대법원도 ‘배드파더스’ 판결을 통해 공적 관심 사안에 관한 사회의 여론 형성이나 공개토론에 기여했더라도, 신상정보를 일반인에게 공개함으로써 인격권과 명예를 훼손하고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사적 제재는 유죄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법과 달리 사적 제재는 명확한 기준이 없고, 자칫 마녀사냥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점에서 권장할 일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왜 사적 제재에 많은 이들이 열광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필요하다. 신속하고 정확한 수사와 강력한 처벌이 있었다면 사적 제재는 지금처럼 지지를 얻지 못했을 것이다. 나쁜 짓을 한 사람은 합당한 처벌을 받는다는 것을 명백히 보여줄 수 있는 공권력과 법체계 정비가 필요하다.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