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억 배상?" 소송 무서운 의사, 산통 두려운 산모…자연분만 안한다

박정렬 기자 2024. 1. 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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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 제왕절개 공화국 (종합)
[편집자주] 한국에서 출생하는 아이 10명 중 6명은 제왕절개로 태어난다. 세계보건기구(WHO)가 권고하는 수준의 4배에 달한다. 고령·다태아 임신 외에도 통증에 대한 공포, 직장생활과 자녀 양육에 대한 부담, 의료사고에 대한 우려가 맞물려 '제왕절개 공화국'을 만들었다는 평가다. 전문가들은 산모와 태아, 나아가 가정의 건강을 위해 출산율만큼 출산 과정에도 관심을 가져야 할 때라고 강조한다.
"산통 다 겪고 응급 제왕절개 최악"…20대 절반은 자연분만 안했다

#지난해 4월, 아들을 출산한 김모(여·37)씨는 임신 사실을 알았을 때부터 자연(질식)분만이 아닌 제왕절개를 하려고 마음먹었다. 주변에서 "산통을 다 겪고 응급으로 제왕절개수술을 하는 게 최악"이라는 말을 너무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김씨는 "의사가 출산을 컨트롤할 수 있어 안전하다는 생각도 했다"며 "통증도 겁나고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해 또래 산모들은 대게 제왕절개로 아이를 낳는다"고 말했다.

과거 제왕절개는 사망했거나 죽어가는 어머니로부터 태아를 꺼내기 위한 기술로 사용했다. '제왕절개=어머니의 죽음'의 의미는 현대 의학의 발전과 함께 정반대로 전환됐다. 특히 고령 임신이 증가하는 오늘날 제왕절개는 산모와 태아 건강을 동시에 담보할 수 있는 안전한 분만법으로 자리매김했다.

세계적으로 1990년대 5%에 불과했던 제왕절개 분만율은 2014년 19%, 2018년은 21%까지 상승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1980년과 2010년대 중반 두 차례나 "전 세계 어느 지역에서도 이상적인 제왕절개 분만율은 10%~15% 수준을 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권고했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특히 우리나라 제왕절개 분만율은 세계적인 수준이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가 최근 공개한 '한눈에 보는 보건의료 2023'(Health at a Glance 2023)을 보면 2021년 기준 한국의 제왕절개 분만율은 1000명당 537.7명으로 터키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다. 지난 2017년 4위에서 두 계단 상승한 것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국내 제왕절개 분만율은 2014년 38.7%에서 2018년 47.3%, 2022년에는 61.7%로 급상승했다. 2014년 대비 2022년분만 건수는 43만건에서 26만건으로 거의 반토막 났지만 제왕절개 건수는 16만건에서 15만건으로 소폭 줄어드는 데 그쳤다.

제왕절개는 더는 고령 임신에 해당하는 30~40대의 전유물이 아니다. 오히려 나이가 어릴수록 제왕절개 분만율이 훨씬 가파르게 상승한다. 10대 산모는 2014년 4명 중 1명(23.5%)이 제왕절개를 했지만 2021년에는 3명 중 1명(39.2%)이 제왕절개를 선택했다. 같은 기간 20대 제왕절개 분만율은 32.7%에서 52.1%로 20%포인트가량 올라 30대(40.3%→57%)에 육박할 만큼 상승했다. 40대 역시 61.1%에서 70.6%로 상승해 모든 연령대에서 제왕절개를 선택하는 경우가 늘어난 것으로 파악됐다.

오정원 순천향대서울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WHO와 여러 분만 전문가는 적정 제왕절개 분만율을 15~20% 수준으로 제안하는데, 이는 제왕절개가 산모와 태아·신생아 사망률과 의료비 감소 등 가족 건강에 폭넓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라며 "출산 당사자인 여성의 입장에서 분만 선택과 경험을 파악하기 위한 연구와 정책적인 개입이 필요한 시점이지만 관련 연구는 아직도 부족하기만 한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평생 건강 좌우하는데…제왕 VS 자분, 제대로 물어볼 곳이 없다

의학적으로 제왕절개는 자연(질식)분만이 어려울 때 꺼내는 '두 번째 카드'다. 과거 제왕절개를 했거나 자궁 수술을 받은 경우, 태아가 거꾸로(역아) 또는 가로로(횡아) 누운 경우, 분만 진행에 실패했을 때, 태아 심장박동 이상과 같이 응급 상황이 발생했을 때 산모와 태아의 건강을 위해 제한적으로 시행한다. 고령 임신, 비만, 쌍둥이 이상 다태아 임신, 출산력 등이 제왕절개를 선택하게 하는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자연분만이 제왕절개보다 우선되는 이유는 분명하다. 일반적으로 산모, 태아에게 훨씬 안전하고 장기적으로 건강상 이점이 더 많기 때문이다. 자연분만의 평균 출혈량은 500㎖인데 제왕절개 수술은 평균 500~1000㎖로 최대 2배 많다. 전신 마취 후 태아가 사는 자궁까지 7~8층의 복벽을 절개하고, 아이를 꺼낸 후 층층이 꿰매야 해 절개 범위가 넓고 후유증 위험이 크다. 김수현 강남차여성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인위적으로 손상을 가하지 않는 자연분만이 제왕절개보다 산모의 회복이 빠르고 분만 후 산모, 신생아 합병증 위험이 유의하게 낮다는 건 증명된 사실"이라며 "의료진이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자연분만을 권고하는 배경"이라고 말했다.

자연분만의 이점은 지난 2018년 세계적인 권위의 국제학술지 '란셋'에 실린 '제왕절개가 여성과 어린이의 건강에 미치는 장단기 영향'이란 제목의 논문에서도 구체적으로 명시됐다. 이에 따르면 제왕절개는 자연분만과 비교해 산모에서 △사망률 △분만 중 자궁파열 △비정상 착상 △자궁외임신 △사산 △조산의 위험이 더 높았다. 아이에게 생리적으로 다른 출산 경로가 면역계에 영향을 줘 알레르기, 아토피, 천식, 비만과 장내 미생물 다양성(마이크로바이옴)에 대체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근거가 축적되고 있다.

오정원 순천향대서울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자연분만과 제왕절개는 단순히 출산 방식에 국한되지 않고 산모와 태아의 사망률과 합병증, 나아가 그 가족의 삶과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며 "장기적으로 의료비 감소와도 관련된 문제"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의학적으로 '부득이한' 사유를 넘어 훨씬 많은 제왕절개 수술이 이뤄지는 실정이다. 자연분만보다 제왕절개의 비율이 높고 갈수록 그 격차가 벌어진다. 지난해 제왕절개 분만율(전체 분만 건수 대비 제왕절개 분만 건수)은 61.7%로 절반을 훨씬 웃돌았다. 일반적으로 제왕절개의 대상이 되는 30, 40대만이 아니라 20대 산모도 절반 이상이 제왕절개를 선택한다.


이유는 다양하다. 첫째, 통증에 대한 공포다. 과거보다 산통(産痛)이 분만 방식의 선택에 미치는 영향은 점점 커지고 있다. SNS, 유튜브 등에는 "산통을 모두 겪고 제왕절개 수술하는 것이 가장 최악"이라거나 "자연분만은 (고통) 선불, 제왕절개는 (고통) 후불"처럼 산통과 관련한 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김수현 교수는 "산모들은 좋은 소식보다 나쁜 소식에 더 크게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며 "특히 요즘은 자연분만을 시도하다 응급 제왕절개 수술을 한 경험담이 다수의 산모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고 분석한다. 오정원 교수는 "분만 시 진통은 고통의 정도에서도 가장 높은 범위에 속한다"면서 "오늘날 가임기 여성이 통증에 약하다고 폄훼해선 안 되지만, 진료실에서조차 진통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등 '사전 준비'할 기회가 부족한 것은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둘째, 계획 출산에 대한 요구도가 높아졌다. 자연분만(유도 분만 제외)은 분만 날짜는 물론 진통 시작·지속 시간을 예측하기가 어렵다. 진통을 겪다 응급상황이 발생해 제왕절개를 하는 산모도 절반은 넘지 않지만 10명 중 2~3명으로 적지 않은 수준이다. 출산 과정에 회음부 절단으로 인한 통증, 단기적인 골반기저근 기능 저하로 제왕절개 못지않은 후유증을 경험할 수도 있다. 반대로 제왕절개는 출산 과정과 후유증을 어느 정도 통제·예상할 수 있다. 분만 전후로 양육과 휴가(휴직) 기간을 고려해야 하는 직장 여성에게 제왕절개는 자연분만보다 더욱 매력적인 선택지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출산을 담당하는 의사도 제왕절개 선택에 영향을 미친다. 세계적으로 의료 소송 경험이 더 많은 병원이나 법적 책임에 대한 부담감을 더 크게 느끼는 의사가 제왕절개 분만을 더 선호하는 경향이 관찰된다. 유럽 8개 국가를 대상으로 "의학적인 적응증이 없을 때 여성의 요청에 따라 제왕절개 분만을 얼마나 수용할 것인지" 조사했다. 그 결과 스페인 15%, 프랑스 19%, 독일 75%, 영국 79%로 차이가 컸는데, 의료 소송에 대해 두려움을 갖는 의사일수록 눈에 띄게 수용률이 높았다.

우리나라는 특히 지난해 뇌성마비 신생아 분만을 담당한 산부인과 의사에게 12억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오면서 의료 현장의 분위기가 과거와 크게 달라졌다고 한다. 김수현 교수는 "판결문에서 제왕절개 수술을 왜 빨리하지 않았는지, 무리해서 자연분만 시도를 지속한 것이 아이의 건강에 영향을 미치진 않았는지 등이 언급됐다"며 "이후 의사들도 분만을 진행하다 조금이라도 위험이 감지되면 응급 제왕절개 수술을 더 빨리 결정하는 경향이 강해졌다"고 전했다.

분만 교육하고 산모와 공감하는 '출산파트너'…제왕절개 절반으로 '뚝'

텅빈신생아실./사진=뉴스1
지난해 9월 광주광역시에 위치한 문화여성병원이 문을 닫았다. 25년 동안 운영돼 온 대형 산부인과의 폐업 소식은 지역민은 물론 의료계에도 적지 않은 충격을 안겼다. 산부인과의 '도미노 폐원'은 전국적인 현상이다. 보건복지부 등에 따르면 국내 상급종합병원·종합병원·병원·의원을 포함해 분만실을 갖춘 분만 기관은 2014년 675개에서 2022년에는 474개로 200개 넘게 감소했다. 서울마저도 용산·강북·성동구는 의료기관 중 분만실이 있는 곳이 각각 단 1곳에 불과하다.

산부인과 세부 전공은 출산을 담당하는 산과(産科)와 자궁근종이나 난소암 등 질환을 책임지는 부인과(婦人科)로 나뉜다. 이 중 임신·출산을 다루는 산과는 거의 전멸 직전이다. 산부인과 전공의 지원율이 60~70%로 저조한 상황에 산과를 선택하는 의사는 '씨가 마르고' 있다. 김수현 강남차여성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산과 분야에서 젊은 의사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며 "최근 법원이 분만 시 불가항력적 사고에 대해서도 수억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하면서 병원을 지켰던 의사들마저 그만둘 생각을 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산부인과는 '병원에서 유일하게 진단받은 환자가 기뻐하는 과(科)'였다. 그러나 임산과 출산이 의무가 아닌 선택이 되면서 아이를 낳는 일도 온전히 기쁨으로 받아들이지는 못하는 시대가 됐다. 산부인과 폐원과 전문의 부족, 제왕절개율 62%(2022년 기준)라는 수치는 이런 변화한 시대상을 대변한다. 오정원 순천향대서울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제왕절개 분만율은 가임기 여성이 전 세계에서 가장 낮은 비율로 아이를 낳는 사회에서 분만이 어떤 사건으로 여겨지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로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제왕절개의 증가는 의학적으로 고령 임신, 다태아 임신의 증가가 큰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30대 이상뿐만 아니라 10대, 20대 등 모든 연령 집단에서 제왕절개 분만율이 증가하고 있어 이것만으로 증가 추세를 설명하기는 어렵다. 제왕절개는 자연분만과 비교해 산모와 태아 건강에 모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쳐 제한적으로 시도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산모의 요청 등이 선택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 아이를 받는 의사도 자연분만을 위해 길게는 수일을 대기하며 긴장하는데, 전문의 부족이 점점 심해지는 만큼 향후 물리적인 한계 등으로 제왕절개 분만율은 더 상승할 가능성이 크다.

(서울=뉴스1) 민경석 기자 =서울 용산구보건소 모자보건실 산모와 신생아 지원사업 관련 포스터 모습.2023.12.27/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산통(産痛)에 대한 걱정과 분만 시 손상 등에 대한 산모의 공포와 불안을 다스릴 수 있는 의료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의사가 산모 한 명에게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게 수가 체계를 손보고, 산모와 파트너를 대상으로 산전 교육을 진행하거나 호흡법 등 분만 훈련을 진행하는 식이다. 실제 미국 오하이오 클리블랜드 병원에서 '둘라'(doula)라는 출산 코치를 배정해 부부 대상 교육과 진통 과정에 눈맞춤, 손 쓰다듬기 등의 정서적으로 지지를 제공했다. 그랬더니 둘라와 출산한 경우 제왕절개 분만율은 13.4%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25%로 큰 차이를 보였다.

산모가 원하는 방식으로, 안전하게 분만할 '권리'를 확보해주는 것은 장기적으로 출산율 상승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필수 의료를 구성하는 산부인과 유인·육성으로 이어질 수 있다. 오정원 교수는 "자연분만과 제왕절개는 단순히 출산 방식을 넘어 산모와 태아의 건강과 그 가족의 삶, 평생 의료비와도 연관된다"며 "우리나라 여성이 제왕절개를 선호하거나 받아들이는 이유에 대한 양적·질적 연구를 정부 차원에서 진행하고 이를 조절할 수 있는 정책이 조속히 개발·실행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박정렬 기자 parkj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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