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들은 왜 CES에 열광할까 [EDITOR's LETTER]

2024. 1. 8. 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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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LETTER]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세계 4대 강국을 두려워하지 않는 유일한 민족.” 한국인에 대한 여러 가지 표현 중 하나입니다. 돌아보면 그 무모함의 흔적들은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삼성전자 스마트폰 갤럭시가 대표적입니다. 애플은 당대 세계 최고의 기업입니다. 그럼에도 한국 사람들은 삼성이 위대한 기업에 도전해주기를 바랍니다. 애플에 밀리면 삼성 내에서도 휴대폰 사업부는 욕을 먹습니다. 애플에 졌다고 욕먹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을 겁니다.

오래전에도 한국 기업들은 기술도 없이 일본 기업들을 따라잡겠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많은 이들이 비웃었지만 결국 일본 전자업체들을 궤멸 직전으로 몰고 간 것도 한국 기업입니다.

스포츠도 비슷합니다. 일본 슈퍼스타 한 명의 몸값이 한국 선수단 전체의 몸값을 합친 것보다 높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래도 한국인들은 “한·일전은 다르다”며 목 빠지게 응원했습니다. 그런데 또 이걸 이겨버립니다. 이승엽이 홈런 치던 시절 얘기입니다. 굳이 중국, 러시아는 언급할 필요조차 못 느낍니다.

중소기업들도 마찬가지. 웬만한 중소기업들의 목표는 모조리 세계 진출입니다. 이 무모함이 한국의 기적 같은 발전을 설명할 수 있는 다이너미즘의 원천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매년 초 한국인들의 극성스러움이 드러나는 이벤트가 하나 있습니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CES입니다. 언제부터인가 한국 사람들은 방문단을 꾸려 이 쇼를 관람하기 시작했습니다. 안 가면 시대에 뒤처진다고 판단한 듯 떼지어 몰려갑니다. 2020년 한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CES 관람객을 보낸 나라로 기록됐습니다.

코로나19를 완벽히 벗어난 올해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은 기업 참가 수로는 미국, 중국에 이어 세계 3위, 관람객은 최종 집계가 나와 봐야 하지만 인구수 대비로는 당연히 세계 1위를 차지할 것으로 보입니다.

CES에 대한 기억은 2010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해 CES의 주인공은 삼성전자와 LG전자였습니다. TV는 당시 쇼의 핵심 제품이었고, 한국 업체들은 가장 화려한 부스를 차렸습니다.

도시바, 샤프, 소니 등도 있었지만 왠지 부스의 분위기는 침침했습니다. 눈에 띄는 것은 중국이었습니다. 하이얼 등 중국 기업들은 TV 세계 1위인 삼성전자 부스를 포위라도 하듯 둘러싸고 부스를 차렸습니다. ‘중국의 진격이 시작되는구나’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후 중국은 예상대로 세를 불렸습니다.

그로부터 14년이 흘렀습니다. TV와 노트북 등을 전시하며 당당히 부스를 차지했던 도시바와 샤프 등 몇몇 일본 업체는 무대에서 사라졌습니다. 중국은 올해 CES에 복귀했습니다. 코로나19와 미국-중국의 분쟁으로 움츠러들었던 중국은 1500개가 넘는 업체가 전시에 나섰습니다. ‘차이나 어게인’이라는 표현이 나왔습니다.

한국의 대표 기업들도 다양한 기술을 갖고 참여했습니다. 하지만 올해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CES 2024 최대 화두인 인공지능(AI) 분야에서 한국은 나름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지만, 이 시장을 이끄는 것은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입니다. 자칫 AI 시대에 한국은 하드웨어 강국으로 남는 것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을 지울 수 없습니다. 미국이 소프트웨어로 머리를 담당하고, 한국 등의 국가가 손발을 담당하는 미국 중심의 새로운 국제 분업체제가 형성되는 첫해가 아니었으면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당장 돈이 되지 않아도 미래 기술에 투자하는 기업, 민간 기업 홀로 연구하는 것이 부담스러운 원천 기술에 과감히 투자하는 기업가형 정부, 뒷다리 잡지 않는 정치권. AI 시대에도 성공 법칙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한국의 현실은 다르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갈 수 없는 길이 아니라, 가지 않은 길이 될 듯한 불안감도 따라 옵니다.

고령화와 저출산, 제조업 기피 그리고 이에 따른 저성장은 그동안 한국 경제가 갖고 있던 다이너미즘의 상실을 표현하는 단어입니다. 이 상황이 지속되면 그 앞에는 무엇이 있을까. CES에서 돌아봐야 할 또 하나의 교훈은 무대에서 사라진 기업들의 명단이 아닐까 합니다.

김용준 한경비즈니스 편집국장 juny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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