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애구의 情… 가슴 아픈 그리움 [한주를 여는 시]
이승하의 ‘내가 읽은 이 시를’
이장희 시인 청천의 유방
「금성」 제3호 1924년
친일파 부친 명령 거절하고
「금성」 제3호 통해 등단
끝내 부친에게 버림 받아
어머니 향한 사무친 그리움
청천의 유방
어머니 어머니라고
어린 마음으로 가만히 부르고 싶은
푸른 하늘에
따스한 봄이 흐르고
또 흰 볕을 놓으며
불룩한 유방이 달려 있어
이슬 맺힌 포도송이보다 더 아름다워라
탐스러운 유방을 볼지어다.
아아 유방으로서 달콤한 젖이 방울지려 하누나
이때야말로 애구哀求의 정이 눈물겹고
주린 식욕이 입을 벌리도다
이 무심한 식욕
이 복스러운 유방……
쓸쓸한 심령이여 쏜살같이 날라지이다
푸른 하늘에 날라지이다
「금성」 제3호(1924)
「봄은 고양이로다」를 쓴 고월古月 이장희 시인은 1900년에 태어나 1929년에 죽은 시인이다. 한겨울에 방에 틀어박혀 어항 속 물고기 그림을 계속해서 그리다 음독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대구에 출생한 이장희는 다섯살 때 어머니를 여읜 후 모성에 대한 그리움을 간직한 채 살아간다. 일본 유학 시절에 첫사랑의 대상이 있었지만 이루지 못한 채 귀국해 모성 콤플렉스가 더 심해졌다.
이 시에서 시인은 자신이 영아기로 되돌아가 어머니의 젖을 마음껏 빨아보는 꿈에 잠긴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봄날의 푸른 하늘에 어머니의 유방 같은 뭉게구름만 흘러갈 뿐이다.
시인은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마음에 사로잡혀 나른한 봄날, 푸른 하늘만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다. '애구의 정'이라고 했다. 애타게 그리워하고 있다는 뜻이다. 어머니의 복스러운 유방을 대신할 여인도 없었고 현실은 시인에게 저주스럽기만 했다.
시인의 아버지 이병학은 대구의 부호이자 골수 친일파로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參議를 지냈다. 일본에서 교토중학교를 마친 아들이 청산학원에 진학하겠다고 하자 귀국명령을 내린다. 자신의 부족한 일본어 실력을 메워줄 비서 노릇을 해달라고 명하자 이장희는 아버지의 명을 거역하고 문우들을 사귀고 「금성」 제3호를 통해 시인으로 등단한다.
지금까지 발견된 것은 34편인데 이 밖의 8편은 이웃 동네에 사는 이상화 시인에게 좀 봐달라고 부탁했다 가택수색의 과정에서 빼앗겨 영영 되찾지 못한다. 이것도 자살의 이유가 됐을 것이다.
서울에서 하숙하고 있던 이장희에게 아버지는 송금을 끊어버린다. 그러자 자신을 어항 속의 물고기라 생각하고 물고기만을 공책에 그리다가 자살을 결심하고는 대구 고향집에 내려가 자살을 실행한다.
두번째 부인을 맞아 5남 6녀를, 세번째 부인을 맞아 4남 2녀를 둔 아버지는 아들을 내쳤다. 어릴 때부터 말이 너무 없어 꿀 먹은 벙어리라는 뜻의 '꿀봉'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는 이장희 시인. 어머니의 유방에 대한 사무친 그리움은 이렇듯 전혀 외설적이지 않고 그저 이 독자의 가슴을 아프게 때린다.
이승하 시인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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