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대책 없이는 협의 못해” vs “先 유예, 後 대책 보완을” [심층기획-중대재해법 유예 논란]

김승환 2024. 1. 8.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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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인 미만 기업 ‘2년 유예’ 놓고 대립
당정, 83만곳 안전진단·예산 확대 추진
野 “기존 정책 짜깁기”… 논의 불투명
재계 “이번 유예시 추가 요구 안할 것”
노동계 “무책임한 법 미루기” 비난도
일각선 “민주, 총선 의식한 반대” 지적
“부칙 제1조 제1항 중 ‘공포 후 3년’을 ‘공포 후 5년’으로 한다.”
 
국민의힘 임이자 의원이 지난해 9월 대표 발의한 중대재해처벌법 개정안은 이 내용이 전부다. 이 하나의 문장을 놓고 지난 연말부터 정부·여당과 야당, 경영계와 노동계가 ‘샅바싸움’을 계속 벌이고 있다.

7일 정치권에 따르면 개정안은 현행법상 상시 근로자 50인 미만 사업장(건설업의 경우 공사금액 50억원 미만의 공사)에 대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시점을 ‘법 공포 후 3년’에서 ‘법 공포 후 5년’으로 고쳐 2년 더 미루자는 취지다. 법 공포 후 3년이 지나는 날이 바로 오는 27일이다. 개정안은 소관 상임위인 법제사법위원회에 아직 상정도 되지 못한 상태다.

국민의힘 유의동 정책위의장(가운데) 등 국민의힘 지도부와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왼쪽에서 다섯 번째)이 지난 2023년 12월 국회에서 열린 중대재해 취약분야 지원대책 당정협의회를 진행하고 있다. 뉴시스
경영계는 준비 부족, 경영 악화 등을 들어 50인 미만 사업장 적용 추가 유예를 요청해 왔고, 정부·여당은 지난해 12월 공식적으로 2년 추가 유예를 추진하기로 했다. 즉각 노동계는 “법 개악 시도”라며 반발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사망 사고 등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때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소홀히 한 사업주나 경영 책임자를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하는 게 골자다.

‘열쇠’를 쥔 쪽은 더불어민주당이다. 168석으로 과반 의석을 가진 민주당의 협조 없이는 법 개정이 불가능하다. 민주당은 이 문제와 관련해 ‘조건부 협의’가 가능하다는 입장이지만, 정부·여당과 경영계가 내놓은 산업안전 지원 대책 등에는 조건을 충족시키기에 한참 못 미친다고 혹평했다. 여야 협의가 최근까지 한 걸음도 내딛지 못한 이유다.

경영계에선 이런 민주당을 향해 “애초에 협의할 마음이 없었던 것 아니냐”는 불만이 터져 나온다. 노동계는 노동계대로 “법 적용 유예 동조 세력은 사회적 살인에 동조하는 것”이라며 민주당을 계속 압박하는 중이다.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왼쪽),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뉴시스
◆조건 단 야당 “정부, 좀 노력하시라”

민주당이 법 적용 추가 유예 논의 가능성을 내비친 것은 불과 한 달여 전이다. 홍익표 원내대표는 대신 협의 개시를 위한 선결조건 3가지를 내걸었다. △정부 공식 사과 △산업현장 안전 제고 대책 마련 △경제단체의 2년 후 모든 기업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약속이 바로 그것이다.

홍 원내대표는 특히 “정부가 지난 2년 유예기간 중 일 처리를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에 대해 공식 사과를 요청한다”고 했다. 2021년 1월 공포된 중대재해처벌법은 1년 뒤인 2022년 1월 시행됐다. 50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 여건을 고려해 예외로 두고 그 시행을 2년간 유예했는데, 그동안 영세중소기업 대상으로 중대재해처벌법을 시행할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한 데 대해 정부가 잘못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사과 요구 취지였다.

조건이 붙기는 했지만 야당이 협상 가능성을 시사하자 정부·여당도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난달 3일 당정은 50인 미만 사업장 중대재해처벌법 2년 추가 유예 추진을 공식화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50인 미만 사업장 대상으로 한 1조5000억원 규모 ‘중대재해 취약분야 기업 지원대책’을 관계부처 합동으로 발표했다. 대책에는 △50인 미만 사업장(83만7000곳) 산업안전 대진단(자체 안전진단) 실시 △중점관리 사업장(8만여곳) 안전관리 지원 △공동안전관리전문가(600명) 선임 지원 등이 담겼다. 이달 4일에는 경제6단체가 “유예기간 2년 연장 후에는 추가 유예를 요구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담은 공동성명을 공개했다. 모두 민주당이 내건 선결조건을 겨냥한 것이었다.

그러나 민주당은 여전히 법 개정 여건이 마련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특히 문제로 삼고 있는 게 바로 당정이 내놓은 중대재해 취약분야 기업 지원 대책이다. 민주당 이개호 정책위의장은 당정 발표 다음날 열린 정책조정회의에서 “기존 정부 정책을 짜깁기한 것에 불과하다. 2024년 예산안의 포장만 바꿔 놓은 겉핥기식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홍 원내대표도 “정부가 좀 노력을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민주당 원내 관계자는 통화에서 “산업안전보건청 설립 등 보다 실효성 있는 대책을 내놓지 않는 한 추가 유예 논의는 필요치 않다는 입장이 유지되고 있다”고 말했다.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지난 2023년 12월 국회 앞에서 결의대회를 열고 중대재해처벌법 50인 미만 적용 유예 연장 반대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경영계 “일단 유예 후 대책 보완해야”

민주당의 이런 평가는 노동계 입장과 궤를 같이한다. 양대노총은 당정 지원대책을 “맹탕 대책”이라고 이미 규정한 바 있다. 한국노총은 성명에서 “정부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지원한다는 내용은 없고 재해예방 역량이 강화될 것만 기대하고 있다”며 “감나무 밑에 누워 홍시가 입안에 떨어지길 기다리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법 추가 적용 유예를 위해 열악하고 위험한 중소규모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 생명과 건강을 포기한 맹탕 수준의 지원책”이라고 했다. 민주노총도 “산업안전 대진단은 실제 정부 진단 리스트에 따라 사업장이 자체 진단을 하는 것에 불과하다”며 “숫자놀음에 불과한 대책으로 국민을 오도하지 말고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유예 연장 논의를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 소장은 통화에서 “안전보건 전문인력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관련 학과를 만든다’는 내용도 (대책에) 들어가 있다. 학과 신설이 당장 영세중소기업의 안전 문제 해소에 얼마만큼 실효성이 있겠나”라며 “기존에 반복된 유관부서 관련 대책을 가져와 합쳐 놓았다는 인상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당정 지원대책에는 안전보건관리 전문인력 부족에 대응하기 위해 전문교육과정 운영, 산업안전 전공학과 추가 신설, 안전관리자 자격인정 요건 완화 등을 통해 2026년까지 전문인력을 2만명 양성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당정 대책에 대한 경영계 평가는 노동계와 상반된다. 경제6단체는 최근 공동성명에서 “대대적인 산업안전 진단을 하고 맞춤형 지원을 연계하며 노사 모두의 요청이었던 공동안전관리전문가 지원사업이 신설되는 등 실효성 있는 대책이 다수 반영됐다”고 진단했다. 공동안전관리전문가 지원사업은 지역·업종별 협회·사업주단체 등이 50인 미만 사업장 대상으로 공동 안전관리 컨설팅 등을 추진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게 골자다.

이명로 중기중앙회 인력정책본부장도 통화에서 “민주당에서 정부 대책이 실효성이 부족하다고 지적하는데, 현 정부가 건전재정 기조를 유지하는 중에도 산업재해 예방 관련 예산은 지난해 대비 11.6% 늘었다”며 “거기다 50인 미만 사업장 83만여 곳에 대해 전부 안전진단을 하기로 한 만큼 이전보다 진전된 조치를 내놨다고 본다”고 말했다.

결국 당정 대책에 대한 노동·경영계의 평가 또한 양자 간 평행선을 달리는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유예 입장의 연장선에 놓여 있는 형편이다. 경영계는 이대로 50인 미만 사업장이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받게 되면 “준비가 부족한 중소기업에 처벌이 집중되면서 중대재해 예방이라는 입법 취지보다 폐업과 근로자 실직 등 부작용으로 이어질 우려가 매우 크다”(경제6단체 공동성명)는 입장이다.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왼쪽),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장. 뉴시스
노동계는 이 같은 논리에 대해 “본말이 전도된 주장”이라 비판한다. 김종진 소장은 “50인 미만 사업장의 특징은 대개 대기업 하청을 얼마나 수주하느냐에 따라 경영상 영향이 크다는 것”이라며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고 (약 2년간) 200건 조금 안 되는 사건이 법 적용 관련 조사를 받았는데 (폐업과 근로자 실직으로 이어지는) 그런 효과가 있었다고 볼 만한 현상을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가지고 기정사실로 해서 노동자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법을 미루자는 건 적절치 않은 주장”이라고 했다.

경영계는 노동계와 입장차를 좁힐 만한 여지가 없는 상황에서 결국 민주당만 바라볼 수밖에 없는 처지다. 이명로 본부장은 “민주당이 내놓은 3가지 조건이, 저희가 볼 때는 어느 정도 충족됐다고 본다”며 “민주당이 당정 대책에 대해 ‘맹탕이다’, ‘실효성이 부족하다’고 본다면 국회에서 추가 대책을 논의할 수도 있지 않겠나. ‘이런 게 부족하니 보완해라, 수정해라’ 하면서 고치면 되는 것 아닌가 싶다”고 했다. 그는 “(기업 입장에선) 형사처벌이 가장 두려운 거니깐 일단 유예하고 대책을 추가로 마련할 수도 있는 문제”라고도 했다.

그러다 보니 경영계 일각에선 민주당이 내건 3가지 조건이 결국 유예 요구를 거부하기 위한 ‘명분 쌓기’에 지나지 않는 것 아니냐고 의심한다. 실제 민주당 지도부 내에서도 조건 충족 여부와 별개로 정략적 차원에서 법 적용 유예에 협조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있다. 한 지도부 인사는 최근 통화에서 “총선을 앞두고 노동계가 강하게 유예를 반대하는 상황에서 우리 당이 거기에 반하는 입장을 취하는 건 적절치 않다”고 했다.

김승환 기자 hwa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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