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 1년 만에…일본 “다시 달 착륙 도전”
민간에선 이례적 신속 ‘재추진’…달의 흙 ‘레골리스’ 촬영 도전
19일에는 일 정부의 우주선 착륙 시도…전략적 우주 진출 주목
지난해 4월26일 오전 1시40분, 일본 우주기업 아이스페이스 관제실에서 기술진 수십명이 긴장된 표정으로 각자 자리에 놓인 모니터를 응시한다. 자신들이 개발한 달 착륙선 ‘하쿠토-R 미션 1’이 월면을 향해 하강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중이었다. 모니터에 표시된 하쿠토-R 미션 1 고도계 수치는 계속 줄어들다 결국 ‘0’을 가리킨다. 달 표면에 착륙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기술진 얼굴에는 여전히 수심이 가득하다.
그 이유는 하카마다 다케시 아이스페이스 최고경영자(CEO)가 당일 현장에서 마이크를 잡으면서 밝혀진다. 그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우리는 달 표면에 착륙을 완료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하쿠토-R 미션 1이 달에 닿기는 했지만, 월면에 강하게 충돌한 것으로 추정된 것이다. 임무 실패는 미국 우주탐사선이 찍은 달 표면 사진을 통해 한 달 뒤쯤 눈으로 확인됐다. 동체 파편 또는 충돌 자국이 월면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었다.
아이스페이스가 올해 달 착륙을 다시 시도한다. 새 달 착륙선 별칭도 성공을 향한 의지를 담아 지었다. 역경에 굴하지 않는다는 의미인 ‘리질리언스(RESILIENCE·회복력)’다.
막대한 자금이 들어가는 달 착륙 임무에 민간기업이, 그것도 1년여 만에 실패를 딛고 다시 나서는 경우는 드물다. 새 달 착륙선은 달의 흙, 즉 ‘레골리스’ 사진을 찍어 인간이 월면에 유인기지를 짓는 계획에 힘을 보탤 예정이다.
4분기에 ‘달 안착 재도전’
하카마다 CEO는 지난 1일 자사 홈페이지에 올린 신년사를 통해 “올해 4분기에 (달 착륙선인) ‘하쿠토-R 미션 2’를 발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하쿠토-R 미션 2의 등장은 ‘선배 달 착륙선’인 하쿠토-R 미션 1에서 시작된다. 아이스페이스는 하쿠토-R 미션 1을 지난해 3월 달 궤도에 진입시켰다. 다음달인 4월26일에는 월면 착륙을 목표로 고도를 끌어내리는 데까지 성공했다. 그런데 그다음이 문제였다. 달 표면에 닿기 직전, 하쿠토-R 미션 1에 탑재된 컴퓨터가 고도를 잘못 계산했다. 그러면서 동체가 월면에 충돌했다. 그렇게 임무는 실패했다.
아이스페이스는 달 착륙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는 의미를 담아 하쿠토-R 미션 2에 ‘리질리언스(회복력)’라는 별칭을 붙였다.
하쿠토-R 미션 2 동체는 하쿠토-R 미션 1과 형태와 크기가 같다. 다리가 4개 달린 상자 형태다. 폭 2.6m, 높이는 2.3m이다. 고도 계산 오류 등을 막기 위해 하쿠토-R 미션 1보다 소프트웨어가 개선됐다.
임무는 달 표면 흙 ‘찰칵’
하쿠토-R 미션 2의 주 임무는 달 표면에 깔린 흙, 즉 ‘레골리스’ 촬영이다. 이를 위해 소형 무인 달 탐사차량 ‘마이크로 로버’를 싣는다. 길이 54㎝, 높이 26㎝, 폭은 31㎝다. 사과 상자 크기다. 차체 전면에 장착된 HD급 카메라로 레골리스를 찍어 지구에 전송한다. 일단 달에 안착하면 하쿠토-R 미션 2는 자신의 동체 밖으로 마이크로 로봇을 내보낸다.
레골리스를 왜 찍을까. 레골리스를 물리적·화학적으로 분해하면 산소가 나와서다. 산소는 우주비행사의 호흡은 물론 로켓 연료를 태우기 위해 꼭 필요하다. 특히 미국과 한국, 영국, 일본 등 33개국이 참여한 ‘아르테미스 계획’을 추진하는 데 산소 조달은 관건이다. 아르테미스 계획의 핵심 목표는 달에 광물 채굴을 위한 유인기지를 건설하는 일이다.
한마디로 산소를 지구에서 비싼 로켓 운송 비용을 들여 공수하지 않고 달에서 현지 조달할 수 있는 길을 레골리스로 열 수 있다는 뜻이다. 아직 레골리스에 대한 정보가 충분치 않아 이런 촬영 자료가 향후 연구에 중요한 도움이 될 가능성이 크다. 하카마다 CEO는 “하쿠토-R 미션 2는 ‘시스루나 경제권(지구와 달 사이에서 태양광과 광물자원 등을 개발해 운영하는 경제권)’을 만들기 위한 발판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 정부 차원 착륙도 시도
이런 가운데 일본 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가 만든 달 착륙선 ‘슬림’이 오는 19일 월면에 내릴 계획이다. 이달에는 일본 정부기관이, 올해 4분기에는 민간기업이 달 착륙을 시도하는 셈이다. 구소련과 미국, 중국, 인도에 이어 일본이 올해 안에 세계 5번째 달 착륙 국가가 될 가능성이 커졌다.
이창진 건국대 항공우주정보시스템공학과 교수는 “일본은 40~50년 전부터 미국과 외교적인 동맹 관계를 바탕으로 우주 개발을 해왔다”며 “그렇게 키운 국가적인 우주기술 역량이 민간기업으로 확대돼 아르테미스 계획에 일본이 깊숙이 참여하는 바탕이 됐다”고 진단했다. 최근 미·일 정부는 일본인 우주비행사를 달에 착륙시키기로 했고, 달을 공전하는 우주정거장인 ‘루나 게이트 웨이’도 함께 짓기로 했다. 이 교수는 “반면 한국은 아르테미스 계획에서 특별한 역할을 하고 있지 못한다”며 “일본이 달 개척을 국가적인 전략 차원에서 접근하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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