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엔 꼭…일터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김현수 기자 2024. 1. 8. 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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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된 구미 한국옵티칼하이테크 공장 지키는 노동자들
최현환 금속노조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장이 지난 4일 경북 구미시 공장에서 무재해기록판을 가리키고 있다(위 사진). 조합원 소현숙씨가 농성장 주변에서 퍼온 지하수를 물탱크에 담고 있다.
대기업 납품하는 일본계 회사
2년 전 화재 뒤 전 직원 ‘해고’
평택에 동일 모기업 회사 설립
물량 승계하고 고용은 모르쇠
1년째 농성 중인 마지막 11명
“혜택받고 먹튀…책임 다해야”

“올해 소망요? 11명 모두 일터로 돌아가는 거죠.”

경북 구미시 구포동에 있는 한국옵티칼하이테크 공장에서 지난 4일 만난 최현환 금속노조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장(46)이 멈춰버린 무재해기록판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기록판에 표시된 날짜는 2022년 10월4일. 이 공장 생산동에 화재가 발생한 날이다.

최 지회장은 “불이 나고 한 달 뒤인 11월4일 (회사가) 공장을 폐업하겠다고 하더니 200명 넘는 직원들에게 희망퇴직을 통보했다”며 “화재 당일까지 신규채용을 하고 수백억을 벌던 회사가 하루아침에 문을 닫는다고 한다. 전형적인 ‘먹튀’ ”라고 말했다.

희망퇴직을 거부한 노동자 11명이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지난해 1월30일 시작한 농성이 곧 1년을 맞는다. 그사이 회사는 노동자 10명의 전세자금과 주택 등에 각각 4000만원씩 총 4억원을 가압류했다.

공장철거를 방해하는 노동자에게 하루에 50만원씩의 손해를 배상하라는 소송도 냈다. 최근 단수까지 이뤄져 직접 지하수를 퍼나르면서 공장을 지키고 있다. 이들이 투쟁에 나선 것은 회사의 구미 공장 폐업 이유를 납득할 수 없기 때문이다. 2022년에는 물량이 늘어 100여명을 신규 채용했고, 연 200억원대 흑자도 냈다. 하지만 화재 직후 사측은 공장을 복구하는 대신 구미 생산 물량을 ‘쌍둥이 회사’인 경기 평택시 한국니토옵티칼 공장으로 모두 옮겼다.

노동자 박재정씨(38)는 올해 유치원에 들어가는 아들을 위해 집과 가까운 데 유치원이 있는 곳으로 이사하려던 계획이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전세보증보험을 통해 전세금을 돌려받아야 하지만 가압류가 들어오면 지급할 수 없다는 답변을 받아서다.

박씨는 “아내가 결국 생업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다. 장인어른도 이제 그만할 때가 되지 않았느냐고 하신다”며 “스물 다섯에 회사에 들어와 안정적인 삶도 꿈꿔왔는데 모두 부서졌다”고 토로했다.

LG디스플레이에 액정표시장치(LCD) 핵심부품인 편광필름을 납품하는 한국옵티칼하이테크는 일본 닛토덴코의 자회사이다. 2003년 구미4국가산단 외국인투자전용단지에 완공된 구미공장은 당시 구미시가 외국인투자촉진법 등에 근거해 50년 토지 무상 임대 등의 혜택을 제공해 입주했다.

금속노조 법률원이 한국옵티칼하이테크의 재무제표를 분석한 결과 2004~2018년 총 매출 7조7102억원, 세후 이익 1983억원을 달성했다. 닛토덴코가 가져간 배당금만 해도 1734억원에 이른다.

18년간 이 회사를 통해 일본으로 건너간 돈은 무려 6조3354억원에 달한다. 반면 이 기간 회사가 부담한 법인세비용(지방소득세 포함)은 단 410억원이다. ‘먹튀’ 지적을 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회사 측은 LG에 납품하던 물량이 많이 줄어들고 공장을 재건하고 정상 가동하는 데 3년이 걸리는 점, LCD 사업 자체가 하락세인 점 등을 이유로 청산 결정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구미참여연대 등으로 꾸려진 공동대책위원회는 각종 세제 혜택을 제공했던 구미시가 노동자들의 고용을 책임지도록 사회적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박정혜 금속노조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수석부지회장은 “안정적으로 회사에 다니며 남들처럼 사는 것이 소원”이라면서 “내 일터로 돌아갈 수 있게 도움을 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글·사진 김현수 기자 kh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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