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 가면 ‘국가소멸’…저출산 해결사 나선 기업들

2024. 1. 8. 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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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포커스]

2023년 3월 네 쌍둥이를 자연분만한 송리원 SK온 PM(왼쪽)과 아내 차지혜 씨. 사진=SK온



한국의 합계출산율이 0.7명까지 급감하며 저출산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이대로라면 2050년에는 경제성장률이 0% 아래로 추락하고 2070년에는 총인구가 4000만 명을 밑돌 것이란 경고가 나오고 있다.

G마켓에서는 2023년 1~3분기 반려동물용 유모차 판매량이 사상 처음으로 유아용 유모차를 넘어서기도 했다. 출산율은 가파르게 줄어드는 반면 개·고양이 등 반려동물과 사는 가구는 갈수록 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2050년엔 제로성장…병력 50만 명도 붕괴

한국의 저출산 문제는 해외에서도 연구 대상이다. CNN은 ‘한국군의 새로운 적: 인구 추계’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저출산을 한국 국방력의 약화 요인으로 분석했다. CNN은 “한국이 북한 핵·미사일 위협을 경계하기 위해 약 50만 명의 병력을 유지하고 있지만 여성 1인당 0.78명의 합계출산율을 기록하고 있어 ‘인구 셈법’이 한국의 가장 큰 적이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현재 병력 수준을 유지하려면 연간 20만 명이 입대해야 하지만 2022년 태어난 신생아는 25만 명에 불과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앞으로 태어날 신생아 수 역시 2025년 22만 명, 2072년 16만 명으로 계속 줄어들 것으로 추산된다.

앞서 로스 다우댓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도 ‘한국은 소멸하나’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선진국이 떠안은 인구 감소 문제에 있어 한국은 대표 연구 대상”이라며 “흑사병 창궐 이후 인구가 급감했던 14세기 중세 유럽 시기보다 더 빠르게 한국 인구가 감소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초저출산으로 인한 인구 고령화는 기업의 인건비 상승과 생산성 저하, 제조업 경쟁력 약화를 유발한다. 인구 절벽을 넘어 국가 소멸이라는 암울한 전망이 이어지자 기업들도 발 벗고 나섰다.

인구 감소는 노동 자원의 감소만 의미하는 게 아니라 고용과 생산, 소비, 투자 등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미쳐 저성장 악순환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저출산 및 인구 감소 대응은 기업들이 추구하는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 가운데 ‘사회(S)’ 영역과도 맞닿아 있다.

저출산은 다양한 사회·경제·문화적 요인이 맞물린 복합적인 현상이지만 주택가격과 교육비 등 경제적 요인 외에도 육아휴직 실사용 기간이 길어지고 고용 안정 등 여건이 개선되면 출산율이 높아질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많다. 2006년 한국을 ‘인구 소멸 1호 국가’로 전망했던 데이비드 콜먼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유연한 노동환경과 가족친화적인 기업문화 조성을 해법으로 꼽고 있다.

그는 2023년 5월 ‘저출산 위기와 한국의 미래: 국제적 시각에서 살펴보는 현실과 전망’ 심포지엄에서 “저출산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결혼에 대한 사회의 인식을 비롯해 한국의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며 “정부 정책을 통한 문화의 변화는 얼마든지 가능하고 한국은 특히 ‘일과 삶의 균형’과 관련된 측면에서 저출산 해결을 위해 기업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래픽=송영 기자



 

 “셋째 낳으면 승진”…파격 복지 내걸어

포스코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경력단절 없는 육아기 재택근무’를 시행 중이다. 8세 이하 자녀가 있는 직원은 전일(8시간), 반일(4시간) 재택근무를 선택할 수 있어 경력단절 걱정 없이 아이들의 등교를 돕고,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을 맞이할 수 있어 워킹맘·워킹대디들에게 호응을 얻고 있다.

LG전자는 육아휴직 2년, 유급 난임치료 휴가 3일 등 법정 기준 이상으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실제 난임 휴가를 사용하는 직원 수는 2020년 30여 명에서 2022년 60여 명으로 늘었고, 매년 500~600명의 직원이 육아휴직을 사용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임신·출산·육아기 관련 다양한 지원뿐만 아니라 직원들이 재충전 기회를 부여받으며 가정을 돌보고 업무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도 진행 중이다. 2022년 4월 의무 근로 시간을 충족한 직원들이 월 1회 금요일 재충전의 시간을 갖는 ‘해피프라이데이’ 제도를 도입했고, 장기근속휴가를 5년 단위 1주와 10년 단위 3주로 확대 적용했다. SK이노베이션은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를 통해 9세 이하 자녀 1명당 최대 1년간 하루 4시간만 근무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SK온은 송리원 PM과 아내 차지혜 씨가 2023년 3월 자연분만을 통해 네 쌍둥이를 출산하자 출산 기념 선물로 육아도우미를 지원했다. 최고경영자(CEO)는 친필 카드와 선물 바구니를 보내 축하했다. 송 PM은 SK온의 복지제도 중 의료비 지원정책과 상사의 결재를 받지 않고 자유롭게 쓰는 휴가제도, 유연근무제 등을 통해 송 PM은 임신 기간 정기검진 때마다 회사의 눈치를 보지 않고 아내와 병원에 동행할 수 있었다. 아내 차 씨는 “일회성 이벤트보다는 금전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아이들을 큰 걱정 없이 잘 키울 수 있는 제도와 문화가 가장 중요한 것 같다”며 “아이들을 건강하게 잘 키우겠다”고 말했다.

포스코그룹은 2023년 4월 네 쌍둥이를 자연분만한 김환 씨 부부에게 카니발, 돌봄서비스 지원금 3600만원, 양육비 2000만원 등을 지원했다. 사진=포스코홀딩스



현대차는 출산 전·후 휴가, 출산 지원금, 직장 어린이집 등 제도 외에 대기업 최초로 저출산·육아지원 전담팀(TFT)을 구성해 저출산 문제에 대응할 수 있는 현대차 노사 차원의 방안을 찾고 직원 생애주기(결혼-임신-출산-육아-취학)에 기반한 종합 지원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유급 15일(다태아 20일)의 배우자 출산 휴가와 유급 5일의 난임 휴가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2023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국내 임직원의 육아휴직자 수는 남성 1310명, 여성 3054명 등 총 4364명이다. 육아휴직 복귀율은 남성 96.5%, 여성 98.9%다.

 

 롯데, 남성 육아휴직자 8000명 돌파…저출산 TF 꾸린 현대차

국내 대기업 최초로 상사 결재 없이 출산 여성 직원이 휴직할 수 있는 ‘자동 육아휴직’, ‘남성 육아휴직 의무화’를 도입한 롯데그룹은 남성 직원이 경제적 이유로 휴직을 꺼리지 않도록 첫 달에는 통상임금과 정부 지원금의 차액을 회사가 전액 지급한다.

제도 도입 전 롯데그룹의 육아휴직 비율은 60% 수준이었지만 2018년부터는 매년 95%를 넘긴다. 2022년까지 8000여 명의 남성 직원이 육아휴직을 썼는데 전체 남성 휴직자 수가 14만6000여 명인 점을 고려하면 100명 중 5명이 롯데 직원일 정도로 남성 육아휴직 문화가 자리 잡았다는 평가다.

정기선 HD현대 부회장이 사내어린이집에 자녀를 등원시키는 여성 직원들과 간담회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HD현대



HD현대는 두 아이의 아버지인 정기선 HD현대 부회장이 직접 나서 ‘육아 걱정 없는 회사’를 만들기 위해 경기도 판교 글로벌R&D센터에 사내 어린이집 ‘드림보트’를 개원했다.

오전 7시부터 최장 밤 10시까지 운영해 직원들이 유연근무제를 선택하거나 귀가가 늦어지는 상황에 맞춰 등·하원 시간을 조정할 수 있고 아침, 점심, 간식, 저녁 등 친환경 재료로 만든 하루 4끼 식사를 무상 제공한다. 초등학교 입학 전 3년간 임직원 자녀의 유치원 교육비를 자녀 1인당 연 600만원, 총 1800만원까지 지원하고 있다.

한미글로벌은 다자녀 출산을 장려하기 위해 채용에서도 자녀가 있는 지원자를 서류와 면접 전형에서 우대하고 있다. 직원들의 결혼과 출산, 육아를 위한 적극적인 지원 제도로 유명한 한미글로벌은 결혼 시 1억원 주택자금대출, 최대 1000만원 다자녀 출산 축하금, 자녀 보육비 및 대학교까지의 학자금 지원, 셋째 출산 시 조건 없는 특진 등 생애주기별 가족친화 복지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금호석유화학그룹은 올해부터 신규 복지 제도인 ‘금호 케어’를 통해 임신과 출산, 육아를 병행하는 직원들에게 출산 축하금을 최대 2000만원까지 지원하고 배우자(남편) 출산휴가를 기존 10일에 ‘아빠도움휴가’ 5일을 추가로 준다.

기존 가족돌봄휴가와 휴직제도에 더해 자녀 초등학교 입학 전후 최대 1개월간의 초등입학돌봄휴직을 신설했다. 금호석유화학그룹 관계자는 “우리 사회가 당면한 저출산 문제의 심각성에 공감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본 제도를 시행하게 됐다”며 “앞으로도 사회에 대한 책임 의식을 가지고 다양한 제도와 공헌 활동을 이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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