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가 국영수보다 중요해요”…일상 속 탄소 탐지 나선 초등생

박고은 기자 2024. 1. 8.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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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동초 5학년3반 학생들이 지난 2일 환경 수업 때 만든 학습 자료 위로 ‘브이’를 하고 있다. 박고은 기자

“6학년 때 쓸 학용품을 사는 건 스코프3(Scope3·기타 간접배출)예요. 물건을 만드는 과정에서 (화석연료를 사용해 이산화탄소 같은) 탄소가 배출되니 꼭 필요한 학용품인지 사기 전에 고민해봐야 해요.”

지난 2일 서울 노원구 용동초등학교 5학년 3반에선 ‘탄소배출을 줄이는 현명한 겨울방학 보내기’를 궁리하는 환경 수업이 한창이었다. 이수민 학생은 새 학용품을 사는 것도 탄소배출이라고 발표했다. 다른 학생들도 질세라 “‘라면 끓여 먹기’는 스코프1” “‘전기장판 틀기’는 스코프2”로 척척 분류해 나갔다. 탄소 배출은 크게 3가지로 구분하는데 스코프1은 직접배출(가스 사용 등 활동에서 직접 배출), 스코프2는 간접배출(전기·수도 사용 등으로 인한 배출), 스코프3은 기타 간접배출(물건 제조·쓰레기 처리 과정에서 배출)이다. 어른도 잘 모르는 기후위기 지식을 용동초 5학년 3반 학생들은 지난 1년 동안 익혔다.

용동초는 지난해 서울시교육청이 지정한 ‘탄소 제로 실천 선도학교’(선도학교) 10곳 중 하나다. 선도학교에선 두 학기 동안 교내 탄소 배출이 어느 정도인지를 확인하고 학교와 가정에서 이를 줄이기 위한 방법을 논의했다. 학교 역시 탄소 배출원이다. 지난해 선도학교 10곳의 탄소배출량은 모두 3470.5t으로 ㎡당 0.038t꼴이었다. 이는 호텔(호텔신라 0.054t, 워커힐호텔 0.023t), 병원(삼성서울병원 0.042t, 서울아산병원 0.032t) 등 대형 상업건물의 탄소 배출과 비슷하거나 더 많다. 학교 10곳이 한해 배출한 탄소를 모두 흡수하려면 소나무 130만 그루를 심어야 한다. 흔히 공장이나 산업 현장에서 탄소 배출이 많다고 생각하지만 학교 같은 일상 공간에서의 탄소 발생 규모도 크다는 의미다.

지난 2일 서울 용동초등학교 5학년3반에서 이번 학기 마지막 환경 수업이 진행되고 있다. 박고은 기자

이에 선도학교들은 지난해 ‘우리 학교 탄소 보고서’와 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한 전문가 컨설팅을 받았다. 우리 학교 탄소 보고서에는 각 학교 활동에 따른 탄소 배출량과, 월별·일별·시간별 전기 사용량을 알 수 있는 상세 분석이 담겨있다. 용동초의 경우 연간 탄소배출량은 316.4t인데, 그 중 70.6%는 전기 사용으로 발생했다. 선도학교 담당자인 5학년 3반 담임 정윤지 교사는 “선도학교를 하면서 학교 차원에서도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전력 낭비를 막을 방안을 고심하게 됐다”며 “난방기 온도 조절을 중앙 제어식으로 바꿨고, 코드를 뽑고 퇴근하라는 안내 방송도 한다. 교직원 회의에서도 에너지 절약을 주제로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용동초는 전기 사용뿐 아니라 식자재 구매 등에 있어 간접적인 탄소 배출량을 줄일 방법도 고심하고 있다.

선도학교에서 이뤄지는 환경 수업도 ‘탄소배출을 체감’하는 데 초점을 뒀다. 정윤지 교사는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활동 위주로 교육 과정을 짰다”며 “소비 전력을 줄일 수 있다는 걸 확인시켜줘야 실천에 옮길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선풍기와 에어컨을 썼을 때, 헤어드라이어를 1단에 놓고 썼을 때와 3단에 놓고 썼을 때 얼마나 전력 사용량이 차이 나는지 등을 전력 측정기를 통해 실제로 확인해 볼 수 있도록 하는 식이다.

학교에서 가르친 만큼 학생들은 탄소 배출 줄이기에 나섰다. 현진주 학생은 집 안을 돌며 가전제품 사용을 단속한다. 그 덕에 지난달 집 전력 사용량이 전달보다 27㎾ 줄었고 전기 요금도 덜 나왔다. “기후위기는 국·영·수보다 중요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최세라 학생은 “기후위기 탓에 해수면이 계속 높아져 제주도나 부산 해운대가 물에 잠길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생각만 해도 무서운 일이기에 텀블러를 갖고 다니고 분리수거도 열심히 한다.

이날 수업에서도 학생들은 “마라탕 시킬 때 일회용 수저는 안 받을래요” “핫팩 사용 대신 두꺼운 장갑 낄 거예요”라며 저마다 겨울방학 동안 탄소배출을 줄일 방법을 발표했다. 방아인 학생은 “겨울에 전기장판 켜놓고 그 위에서 귤 까먹는 걸 좋아하는데, 이번 방학 때는 집에서도 (전기장판을 켜는 대신) 옷을 두껍게 입고 이불로 꽁꽁 싸매겠다”고 다짐했다.

서울시교육청은 올해도 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한 선도학교 사업을 이어갈 예정이다. 이은정 서울시교육청 생태·환경교육팀 장학관은 “지난해엔 학교에서 사용하는 전력 등을 측정하고 환경 수업을 해봤다면, 올해는 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한 구체적인 노력을 하는 등 심화 과정을 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온난화와 해수면 상승으로 사라질 위기에 놓인 섬나라의 모습을 다룬 책 ‘마지막 섬’을 읽은 뒤 아이들이 원주민에게 쓴 편지. 정윤지 교사 제공
온난화와 해수면 상승으로 사라질 위기에 놓인 섬나라의 모습을 다룬 책 ‘마지막 섬’을 주제로 진행한 수업 모습. 정윤지 교사 제공

박고은 기자 eu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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