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지역의료 개선, 국가가 투자 나서야
열악한 의료환경도 중요한 이유
생활환경 불편해 의료인력 기피
전문의료진 늘리는 것 능사 아냐
의료 취약지 공공병원 운영하고
상급병원 연계시스템 구축 시급
저는 시골에서 환자를 진료하고 있는 평범한 의사입니다. 도시에서 나고 자라 경남 거창에 정착해 10년째 환자를 돌보며 생활하고 있습니다.
거창에 살면서 느끼는 바는 현재 우리 시골의 인구감소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출산율이 낮아져 인구가 줄어드는 것은 전국적으로 같지만, 시골의 경우 그 감소세가 가파릅니다. 젊은층은 교육·의료·오락 시설 등 생활인프라가 열악한 시골을 떠나 도시로 이동하고, 전국 대부분의 시골은 지역소멸이라는 현실을 직면하고 있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곳은 인근 다른 군지역보다 그나마 형편이 나은 편이긴 합니다. 인구가 많지 않은 지역임에도 7개나 되는 적지 않은 고등학교가 있고, 중등교육 환경이 주위보다 나아서 아이를 키우는 부모가 정착하고 타 지역 학생들도 유입되는 듯합니다. 또한 경남도립거창대학·한국승강기대학교 등 전문대학 2곳이 있어 젊은 사람들이 지역에 일정 기간 머물며 청년수가 적은 주위 군지역에 비해 활력이 있는 편입니다.
의료 환경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거창에는 2차 의료기관급 병원이 3곳 있습니다. 그중 공공의료기관인 적십자병원은 60여년 전 이 지역에 설립된 이래 보건소를 도와 일반진료뿐 아니라 부족한 공공의료사업의 일부분을 맡고 있습니다. 거창적십자병원은 국가에서 정한 지역거점 공공병원 중 하나로, 수년 내 신축 확장해 300개 병상을 갖춘 의료기관으로 탈바꿈할 예정입니다. 이렇게 되면 관내 주민뿐만 아니라 인근 주민들도 더 나은 의료 환경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지역 내 병원급 의료기관은 만성질환을 앓는 노년층에게 더욱 중요합니다. 노인들은 청장년층에 비해 거동이 불편해 장거리 이동에 제한이 많습니다. 또한 경제적인 이유로 의료서비스에 부담을 느끼는 경우가 많아 지역 내에 공공의료기관이나 일정 규모의 병원급 의료기관이 있는지가 상당히 중요합니다.
시골에서 병원을 운영하면서 어려운 점 중 하나는 응급실과 외래·병동을 운영하기 위한 의사·간호사 등 전문인력을 구하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의료인력은 생활 환경이 좋은 도시를 선호하고 시골에서 근무하는 것을 기피하는 게 현실입니다. 이들을 붙잡기 위해 도시보다 더 높은 임금을 제시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골에서 근무하려는 사람을 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시골은 대형마트나 편의·놀이 시설 등 생활인프라 접근성이 낮습니다. 혹 도시에서 시골로 출퇴근해도 상당한 시간을 출퇴근에 낭비하거나 가족과 떨어져 혼자 시골에서 평일 숙식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 예전보다 더 시골병원에서 근무하는 것을 꺼리는 듯합니다.
최근에는 일과 생활의 균형을 중시하는 분위기가 사회 전반에 확대되어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런 변화를 고려하면 시골에서 적절한 인력을 구하기 위해 다른 방식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적은 수의 인력에게 더 많은 급여를 주고 일을 시키기보다 좀더 많은 인력을 채용해 실질적으로 근무하는 시간을 줄이고 출퇴근 여건과 숙소 등 거주 환경에 많은 투자를 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런 투자가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지금도 인력난에 따른 인건비 상승으로 사람 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국가가 지역소멸을 늦추고 사회안전망을 확충하기 위해 의료취약지역에 적정한 규모의 공공병원을 운영하며 지역 주민의 생명을 지키는 것은 너무나도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거창 같은 시골은 도시와의 거리가 상당해 도시에 있는 대형 의료기관과의 접근성이 부족합니다. 시골병원에서 뇌혈관·심혈관 수술 등 많은 의료 인력과 장비가 필요한 시스템을 갖추는 것, 다양한 전문과목 의료진을 배치해 멀리 도시까지 나가지 않고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매력적인 일입니다. 하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당장 필요한 인력조차 구하기 힘든 실정입니다.
또한 의료자원의 낭비적 요소도 크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대도시 상급병원들도 필수 중증·응급 의료진이 부족하고 그나마 있는 인력도 이탈하는 문제가 심화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시골병원에 무작정 전문과목 의료진을 늘리기보다 도시 대형 전문병원들과 유기적 관계를 공고히 하고 환자 이송과 치료가 신속히 이뤄지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중복 투자를 줄이고 필수 전문의료인력을 채용하거나 시설에 투자해 의료 환경을 개선할 수 있다고 봅니다.
시골병원에서 처치할 수 없는 중증·응급 수술환자를 최대한 빨리 적절한 병원으로 이송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 여러 이유로 상급병원에 즉시 이송하지 못하는 환자나 상급병원으로 이송하기 전 입원이 필요한 환자를 수용할 시설과 인력을 집중적으로 확보하는 것, 이 두가지가 현실적인 선결 과제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도시도 비슷한 상황일 수 있지만, 중증·응급 환자가 발생해 시골병원 의사가 구급차에 함께 타면 동승한 의사가 병원으로 복귀하기 전까지 응급실에 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도시와 달리 시골은 주위에서 응급실을 운영하는 곳을 찾기 어렵고 군지역에서 응급실을 운영하는 곳은 대부분 한곳이기 때문에 그 시간 동안 군지역에 새로 발생한 응급환자는 갈 곳을 찾기 어려워집니다.
그러므로 국가에서 전국에 새로이 만드는 지역거점 공공병원은 그 지역뿐 아니라 주위 지역 주민이 급할 때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는 의료시설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가장 시급하게는 중증·응급 환자, 수술이 필요한 환자를 신속하게 적절한 전문병원이나 상급병원으로 연결해 치료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합니다. 그런 역할이 충분히 이뤄진 다음 의료인력의 충분한 확충을 통해 시골에서도 도시 수준의 진료를 볼 수 있도록 역량을 투입하고 지역 주민의 의료 만족도를 높이는 게 순서라고 봅니다.
시골의 응급실은 그 지역 주민에게는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필수 의료시설입니다. 따라서 제대로 된 의료 환경을 구축하기 위해 국가가 과감히 인력을 지원하고 이를 위해 투자해야 합니다.
최준 거창적십자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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