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민생정책 1호 ‘농축산물 수입 확대로 가격 안정’...물가 잡겠다며 농민만 울릴까 ‘우려’
과일 등 36만t 신속 도입
농업계 “농가 피해 불가피”
정부가 올해 ‘민생경제 1호 정책’으로 농축산물 수입 문턱을 대폭 낮춰 물가를 잡겠다는 계획을 내놓으면서 농업계에 파장이 일고 있다.
정부는 4일 발표한 ‘2024년 경제정책방향’에서 물가 안정을 통한 민생경제 회복을 최우선 과제로 제시했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상반기 2%대 물가의 조기 안착에 역점을 두겠다”며 “농수산물·에너지 등의 가격과 수급 안정을 위해 11조원 규모의 예산을 지원하고 과일 30만t, 채소·축산물 6만t 등의 신속한 도입을 위해 관세 면제와 인하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농축산물을 물가상승의 주범으로 보고 외국산을 시장에 대거 풀어 가격을 잡겠다는 것이다.
우선 과일값 안정을 위해 올 상반기 신선·냉동 과일 등 과일류 21개 품목에 할당관세를 적용해 30만t 물량을 신속하게 수입할 방침이다. 신선과일 가운데 바나나(15만t)·파인애플(4만t)·망고(1만4000t)·자몽(8000t)·아보카도(1000t) 등 5개 품목은 30%였던 관세율을 면제해준다. 오렌지(5000t)의 관세율은 50%에서 10%로 낮춘다. 냉동딸기(6000t) 등 냉동과일 관세도 6월까지 한시적으로 철폐한다. 과일주스, 으깬 과일 등 가공품 13개 품목도 할당관세 적용 대상이다. 전체 관세 지원액만 1351억원에 달하는 역대 최고 수준의 과일 관세 정책이다.
과수업계에선 수입 과일 공세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박철선 한국과수농협연합회장(충북원예농협 조합장)은 “지난해 병충해·저온피해로 사과·배 생산량이 급감하면서 과수농가는 소득이 줄어 시름이 깊다”며 “이런 상황에서 값싼 외국산 과일이 밀려들어오면 국산 과일 소비가 위축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과일류와 더불어 축산물·채소에 대한 할당관세·저율관세할당(TRQ) 카드도 꺼냈다. 닭고기(3만t)와 신선대파(3000t)는 3월까지, 달걀(수입 전량)과 달걀 가공품(5000t)은 6월까지 관세가 사라진다. 건고추(2000t)와 양파(2만t)에 대한 TRQ도 적기에 도입한다는 구상이다.
특히 닭고기는 2022년 7월부터 할당관세 적용기간이 계속 연장되면서 수입이 급증한 품목이다. 지난해 닭고기 수입량은 23만972t으로 2022년(18만8281t)보다 22.7% 늘어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육계 생산자단체 관계자는 “육계 출하물량이 평년 수준으로 회복되면서 산지·도매 가격도 하락했는데 유통비용이 포함된 소비자가격이 높다는 이유만으로 할당관세를 또 적용하는 건 납득할 수 없다”며 “재작년부터 지속된 할당관세 정책으로 수입 닭고기가 시장을 잠식하면서 80% 이상이었던 자급률도 급락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꼬집었다.
농업계는 사실상 ‘수입 농산물 할인 정책’으로 손쉬운 물가 안정 효과를 누리기 위해 농민 민생은 외면하는 정부 지침에 지속적으로 반발해왔다. 한국후계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는 5일 성명을 통해 “수입에 의존한 단기 농축산물 수급정책은 자칫 국내 농업 생산기반 붕괴를 초래할 수 있다”며 “할당관세 적용 시 농축산물 수입 증가로 농가 피해가 불가피한 만큼 경영 안정장치 마련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올해 경제정책방향에는 기존 1주택자가 농촌 등 인구감소지역에 집 한채를 더 사도 1주택자로 간주해 세금 혜택을 주는 내용이 담겼다. 1주택자처럼 0.05%포인트 인하된 재산세율을 적용받고, 종합부동산세도 12억원까지 기본 공제해준다. 인구감소지역에 집을 산 후 기존 주택을 팔 경우 양도가가 12억원 이하면 양도소득세를 면제해준다.
내년부터 고향사랑기부제 한도를 개인당 연간 500만원에서 2000만원으로 상향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이렇게 되면 세액공제 최대한도도 90만원 수준에서 340만원으로 오른다. 다만 이를 추진하려면 ‘고향사랑 기부금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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