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공부 10년, 나이 50에 미 빅테크 입사... 당신도 늦지 않았습니다"

이서희 2024. 1. 8.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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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본사 디렉터' 출신 로이스 김 인터뷰
2019년부터 4년간 근무... 현재는 '포 잡'
영어 분투기 담은 책 출간 "끝까지 가보자"
구글코리아에 근무하다 50세에 미국 실리콘밸리 구글 본사에 입사해 약 4년간 일한 정김경숙(미국명 로이스 김) 전 구글 글로벌 커뮤니케이션 디렉터. 지난해 3월 구글을 떠난 뒤에도 계속 미국 생활을 하고 있는 그는 자신의 영어 분투기를 책으로 펴냈다. 로이스 김 제공

다짐하고, 실행하고, 차츰 뜸해지다, 결국 손절해 버리고 마는 실패의 연속. 2009년 구글코리아에 다니고 있던 정김경숙(미국명 로이스 김·55)씨에게도 영어 공부는 그랬다. 영어로 미국인 상사를 멋지게 설득하고 싶은데 버벅대기만 하다 끝날 때, 영미권에서 유학한 동료들이 자유자재로 영어를 구사할 때마다 '영어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리라' 다짐했으나 잠시뿐이었다. "아마 잘 안 될 것 같으니까, 해도 안 될 것 같으니까 아예 시작을 안 했던 것 같아요. 패배가 정해진 게임 같았던 거죠." 그때의 자신을 그는 이렇게 돌아봤다.


40세에 결심... "영어 스트레스, 이젠 끝내자"

결국 영어 공부를 시작한 건 마흔 살 때다. 혀도 굳고 머리도 굳는다는 나이에 '영어 스트레스'와의 지긋지긋한 관계를 끝내기로 한다. 그때까지는 영어가 좀 서툴러도 일머리로 넘겨왔지만, 앞으로 영어가 승진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위기감이 그를 보챘다. '그래. 더 늦기 전에 시작하자. 40년이 지났지만 앞으로 50년은 더 살 텐데, 죽기 전엔 원어민처럼 되겠지!'

50년을 내다보고 매일 한 영어 공부는 10년 뒤, 상상도 하지 못한 길을 열어 줬다. 미국 실리콘밸리 구글 본사 입사. 1년에 한 번 전 세계 구글 홍보 담당자가 모이는 자리에서 '본사와 각 지역법인의 소통을 중개할 사람이 필요하다'고 했던 제안이 직책 신설과 그의 이직으로 이어졌다. 비영어권 출신 최초의 구글 본사 커뮤니케이션팀 디렉터로서 제2의 인생이 시작됐다.

정김경숙(미국명 로이스 김) 전 구글 글로벌 커뮤니케이션 디렉터가 지난해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신입사원 편에 출연한 모습. tvn 캡처

"영어 비법? 운동처럼 '꾸준히' 하는 거죠"

4일(현지시간) 실리콘밸리에서 만난 김씨에게 영어 공부 비결을 물었다. 답은 의외로 냉정했다. "십수 년 영어와의 사투 끝에 내린 결론은 '꾸준히 해야 한다'는 거예요. 마치 운동을 쉬면 금세 약해지는 근육처럼, 언어 감각도 내려놓는 순간 바로 퇴화하기 때문입니다."

지름길은 없으나, 추천하는 길은 있다. "듣기, 말하기, 쓰기 중 굳이 골라야 한다면 '듣기'부터 공략해 보세요." 말하기야 손짓 발짓을 동원하면 어떻게든 뜻을 전할 수 있지만, 알아듣지 못하면 소통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이유다.

무작정 영어 콘텐츠를 틀어놓는 것만으론 듣기 실력 향상이 힘들다고 그는 말했다. 흘려듣기의 경우 평소 알고 있던 단어·표현만 취사 선택해서 듣게 되기 때문이다. '초집중'을 해서 듣고, 잘 안 들리면 들릴 때까지 반복해서 들으며, 그 이후엔 '들린 것'을 자막 등과 비교해 확인하고, 모르는 단어나 구문 등은 따로 정리해 복습하는 게 그의 학습법이다.

외국인을 만날 일이 별로 없는 대다수 한국 거주자가 '영어 말하기' 실력을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주변에 있는 모든 사물을 영어로 말하는 연습을 해 보세요. 목줄이 뭘까, 족집게가 뭘까, 모든 걸 찾아보고 외우는 거죠. 또 나의 기분을 매일 영어로 말해 보고, 주변을 습관적으로 묘사해 보세요."

정김경숙(미국명 로이스 김) 전 구글 글로벌 커뮤니케이션 디렉터가 구글코리아 상무 시절이던 2016년 1월 구글 딥마인드의 바둑 인공지능(AI) 알파고 관련 기자간담회를 진행하고 있다. 뉴시스

정리해고 뒤 '포 잡'... "내년 영어는 오늘보다 나을 것"

지난해 3월 김씨는 구글을 떠났다. 역대 최대 규모 정리해고 여파로 몸담고 있던 팀이 해체되고, 팀원 전원도 해고 대상에 포함됐기 때문이다.

충격과 원망에 주춤했지만 그것도 잠시, 그는 쉼 없이 달려왔던 자신에게 '갭 이어(Gap year·학업 등을 잠시 중단하고 다양한 활동을 직접 체험하는 시간)'를 주기로 했다. '일 때문에 못 해 본 걸 하나씩 해 보자'고 결심하니, 오히려 삶이 더 바빠졌다. 요즘 그의 직업은 4개다. 리프트(승차공유 서비스) 기사, 스타벅스 바리스타, 슈퍼마켓 '트레이더조' 매니저, 컨설팅 등 이른바 '포 잡(four job)'을 뛰는 중이다.

김씨는 8일 자신의 영어 분투기를 담은 책 '영어, 이번에는 끝까지 가봅시다'를 출간한다. 현장에서 여전히 벽에 부딪히고 깨지는 영어지만, '이렇게 했어도 아직 멀었다'는 걸 온몸으로 느끼지만, "내년의 영어는 분명히 오늘보다 나아질 것"이라고 그는 확신했다. 이런 자신의 경험이 청년들뿐 아니라 또래 중장년들에게도 동기 부여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결코 안 될 거라 생각하지 않았으면 해요. 늦는 건 정말 없더라고요."

실리콘밸리= 이서희 특파원 sh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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