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 반토막, 더 행복해"... 잘나가던 서울 동물병원장, 시골 대학 교수로
"동물도 고난도 수술 전담병원 필요
서울 아닌 경기북부에 개척하고 파"
“월급은 절반으로 줄었지만 행복은 두 배로 커졌어요.”
지난 4일 경기 의정부시 펫인쥬동물메디컬센터에서 만난 박우대(53) 병원장은 한적한 농촌마을 대학 강단에서 보낸 지난 17년을 이렇게 요약했다. 갈색 강아지를 안고 한참을 다리와 슬개골 상태 등을 확인한 뒤에야 의자에 앉은 박 원장의 표정에는 여유가 흘렀다. 펫인쥬동물메디컬센터는 그가 경기 양주시 서정대학교 애완동물학과 교수(학과장)로 재직하다 지난 2021년 다시 본업인 수의사로 복귀하면서 개업한 동물병원이다.
경기 북부의 양주, 의정부에 터를 잡고 20년 가까이 지낸 박 원장은 사실 서울 토박이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1998년 서울 광진구 군자동에 동물병원을 개원했다.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도 컸고, 수의학 정형외과 전공을 특화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 그는 “당시 아픈 동물을 병원에 둘 수 있는 치료실이 없어 퇴근할 때면, 개 5마리를 안고 업고 해서 집으로 데려가 돌보다가 다시 다음 날 함께 출근하기를 반복했다”며 “이를 본 주민들이 많이 좋아해줬다”고 돌아봤다.
“젊은 수의사가 동물사랑이 끔찍하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병원은 문정성시를 이뤘다. 병원과 붙어 있는 낡은 주택까지 허물고 그 자리에 병원을 확장했다. 박 원장은 “반려동물들이 병원 밖에서 줄을 서서 대기할 정도로 병원은 붐볐다”며 “큰돈을 벌었다”고 말했다. 당시 그의 수입은 연 2억원이 넘었다고 한다.
물질적으로는 풍족했지만 심신은 지쳐갔다. 매일 20시간 이상 동물들을 돌보면서 건강이 나빠졌고, 집에 머무는 시간이 줄면서 아내와 어린 아들과도 소원해졌다. 무엇보다 가족과 함께 추억을 만들지 못했던 점이 마음 아팠다.
“돈이 삶의 전부는 아니다”라고 판단한 박 원장은 과감하게 동물병원장 직을 내려 놓았다. 병원 지분을 모두 넘긴 그는 농촌으로 시야를 돌렸고, 한 대학의 채용공고를 봤다. 신설학과인 애완동물학과(현재는 반려동물학과)의 학과장(교수)을 뽑는 내용이었다. 그는 “열악한 동물병원의 진료 환경을 체험하면서 동물보건사(수의사를 돕는 동문간호 전문직) 양성에 관심이 많았기에 선뜻 지원했다”고 말했다.
2004년 3월 서정대 애완동물학의과 초대 학과장으로 부임하면서 낯선 농촌의 삶을 시작했다. 학교도, 집도 서울에서 승용차로 한 시간 갸랑 떨어진 양주의 외진 곳에 있었다. 화려한 야경도 볼 수 없었고, 집 주변에 백화점도 없었지만 넉넉한 농촌 인심 덕에 빠르게 적응해 갔다.
그는 “수입은 반 이상 줄었지만, 가족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마음만은 더 풍족해졌다”고 돌아봤다. 대학의 위상을 끌어올리는 일에도 힘을 쏟았다. 학교가 서울과 접근성이 낮고, 당시만 해도 애완동물학과는 대중적이지 않아 주변에선 회의적 시각이 많았다. 하지만 그는 역발상의 전략으로 농촌 대학 환경에 주목했다. 도시형 대학과 달리 넓은 학교 부지를 활용해 대형견이 뛰어놀 수 있는 대형 사육장 등을 갖췄다. 다양한 현장수업이 가능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학생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 결과 200명을 모집하는 애완동물학과는 매년 10대 1이 넘는 경쟁률을 보이며 교내 최고 인기학과로 자리 잡았다. 2007년 제1회 관세청장배 탐지견 경진대회 우승 등 각종 경진대회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저녁이 있는 삶을 찾으면서 가족들과의 관계도 회복됐다. 박 원장은 “주말이면 가족과 함께 동두천 소요산과 포천 고모리 저수지, 파주 감악산 등 주변 관광지를 다니면서 웃고 떠들며 좋은 추억을 쌓았다”고 웃으며 말했다.
어느덧 서울을 떠나 양주에 온 지 20년. 그는 숙원이었던 동물보호사 자격증 제도가 만들어지자 2021년 3월 대학을 떠났다. 그리고 그해 의정부에 경기북부지역 최대 규모의 펫인쥬동물메디컬센터 문을 열었다. 센터에는 수의사 6명 등 20명에 달하는 전문 인력이 있고 산소농도를 자동 조절·유지해주는 FIO2 ICU 입원실을 비롯해 중증외과와 예방의학센터, 내과, 응급의학센터 등 첨단 치료센터와 장비를 갖췄다. 병원이 안정을 찾으면서 사회공헌활동에도 팔을 걷어 붙였다. 그는 지난해 4개월간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동물병원에서 근무하며 우리나라 선진 의료 기술을 전파했다.
박 원장은 “사람에게도 고난도의 수술을 전담하는 상급종합병원이 있듯이, 동물도 난도가 높은 관절, 디스크 질환 같은 수술을 전담하는 병원이 필요한데, 서울이 아닌 경기북부지역에서 그 길을 개척하는 게 꿈”이라며 “상대적으로 낙후된 국가에 선진 의료법도 널리 알려 동물복지환경 개선에도 힘쓰겠다”고 밝혔다.
이종구 기자 minj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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