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끼 버티고, 총리는 안 오고...日 지진 1주, 이해 힘든 장면들

도쿄/성호철 특파원 2024. 1. 8. 04:1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피난소의 이재민들 - 7일 일본 이시카와현의 도시 와지마에 만들어진 지진 피난소에서 집이 무너지는 피해를 입은 주민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3만여 명의 이재민들은 하루에 한 끼만 먹는 등 열악한 피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이번 지진 사망자는 128명으로 집계됐으며, 연락이 두절된 주민은 약 200명에 달해 수색 작업이 진척되면 사망자가 더 늘어날 전망이다. /AP 연합뉴스

일본 이시카와현 노토(能登)반도에 규모 7.6의 강진이 발생한 지 이레가 지났다. 재해 지역엔 단수(斷水)·단전(斷電)이 여전한 데다 도로 복구도 늦어지면서 이재민들이 묵고 있는 일부 피난소에 식량과 같은 필수 물자 공급이 원활하지 않다고 알려졌다. 피난민들이 하루 한 끼의 주먹밥에 의존하는 열악한 상황이 길어지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일본의 야당 정치인이 재해 현장을 방문했다가 한 끼 식사를 제공받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일본 여론이 들끓고 있다. 정작 현장 지휘를 책임질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재해 현장엔 한 발도 들여놓지 않았다.

7일 아사히신문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이시카와현엔 6일 밤까지도 6만6000가구가 단수, 2만3000가구는 정전인 상태이며 피난소 약 370곳엔 3만명 이상의 이재민이 대피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이번 주에야 지진을 격심재해(激甚災害)로 지정해 47억4000만엔(약 430억원)을 지원하기로 각의 의결할 예정이다. 우리나라의 재해지역 선포와 유사한 격심재해는 지진, 수해 등 막대한 피해 시 시·읍·면 단위로 지정해 복구 공사에 필요한 자금을 지원하는 제도다.

최대 피해 지역인 이시카와현 와지마시(市)에 진입하는 도로 대부분이 함몰과 파손·균열 탓에 절단돼 물자 공급이 원활치 않은 상황이다. 일본 정부는 물자 공급과 긴급 복구를 위해 자위대 1만명을 편성했지만 현재까지도 절반 이상이 진입조차 못 하고 외곽에 대기하고 있다. 2016년 구마모토 지진 때 자위대 2만5000명을 편성한 데 비해 규모도 작다.

군소 야당(野黨)인 레이와신선구미의 야마모토 다로 당대표는 이런 집권 여당의 늦은 대응에 항의해 5일 노토반도를 방문했다가 오히려 여론의 역풍을 맞고 있다. 의석수 6석의 군소 정당 대표인 야마모토 국회의원은 재해 현장을 방문한 뒤, 소셜미디어에 올린 글을 통해 “전화가 아니라 현장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필요가 있어, 렌터카로 들어왔다”며 현지에서 비영리법인(NPO)과 공청회를 열었다고 알렸다. 문제는 “NPO가 저녁 배식을 함께 먹자고 제안해 추운 날씨에 카레를 먹고 차박(車泊)했다”는 대목이었다.

‘위험한 현장을 찾아간 야당 대표’라는 여론을 기대했지만 반응은 전혀 딴판이었다. 일본 네티즌들은 “먹을 게 부족한 재해지역에서 당신이 한 끼 먹으면 다른 사람은 못 먹는다”, “재해지역에 들어가는 자원봉사자는 본인 식량은 본인이 챙기는 게 원칙이다”와 같이 비난했다. 자민당 소속의 오카다 유지 시의원(고베시)은 “불요불급한 용무로는 재해지에 들어가지 말아야 한다”며 “야마모토 대표는 심지어 피난민이 먹을 배식을 먹었다”고 비난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왼쪽에서 두 번째)가 2024년 1월 2일 도쿄 집무실에서 열린 재난 대응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교도/ AP 연합뉴스

정작 비상재해대책본부장인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헬기를 타고라도 재해 현장에 바로 갈 수 있는데도 아직 안 가고 있다. 4일 방송국 BS후지의 한 프로그램에 출연한 기시다 총리는 ‘현장에 언제 가느냐’는 질문에 “가능한 한 빠른 타이밍에 방문하고 싶다”며 “현지는 어려운 상황이니, 꼼꼼하게 확인한 뒤 적절한 시기를 생각하겠다”고 답했다. 기시다 총리는 5일에는 경제단체와 언론이 주최한 신년회 3군데에 연달아 참석했다. 게이단렌 등 경제 3단체, 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 언론사 지지통신이 각각 주최한 신년회였다. 적어도 시간이 없어 재해 지역을 안 가는 건 아닌 셈이다.

여기에다 방재 담당 부처인 내각부의 간다 준이치(神田潤一) 정무관은 지진 다음 날인 2일, SNS에 “오늘은 하루 종일 휴무. 오후에는 라디오를 들으며, 이틀 전에 내린 눈을 밟으면서 10.8㎞를 뛰었다”는 글을 올렸다. 재해가 터졌는데도 평화로운 일상생활을 보냈다고 한 것이다. 일본 네티즌 사이에선 “얼어붙는 체육관이나 자가용 안에서 죽음과 마주하며 이 순간 밤을 지새우는 피난민의 기분을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할 수 없는 행동이다” “붕괴된 가옥에 생매장당한 국민이 많은데도 기시다 총리가 TV에 나와 웃으면서 말해도 되느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노토반도 지진의 사망자는 6일 100명을 넘어선 이후 계속 늘어 7일 오후 128명으로 집계됐다. ‘연락 두절’인 주민이 약 200명이기 때문에 사망자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일본 국토지리원은 이번 강진으로 이시카와현 해안의 해저 지반이 바다 위로 융기해 육지가 240㏊(헥타르) 이상 증가했다고 밝혔다. 인공위성으로 관측한 결과 약 85㎞ 길이 해안을 따라 넓은 범위에서 땅이 수m씩 솟아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