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승진에 ‘ELS 판매 실적’ 30% 넘게 반영
홍콩H지수 연계 주가연계증권(ELS)에서 조(兆) 단위 손실이 예상되는 가운데, 은행들이 직원 인사 평가에서 ELS 판매 실적을 30~40% 이상의 높은 비율로 반영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또 일부 은행은 ‘고위험 ELS’ 판매량을 일정 비율로 제한한 내부 규정을 고쳐 적극적으로 판매한 것으로 나타났다. ELS는 원금의 상당 부분을 잃을 수 있는 초고위험 상품임에도, 은행이 직원들의 무리한 판매를 사실상 부추겼다는 지적이 나온다.
◊8일부터 12개 은행·증권사 검사
금융감독원은 홍콩H지수 연계 ELS의 주요 판매처인 은행 5곳(KB국민·신한·하나·NH농협·SC제일은행)과 증권사 7곳(한국투자·미래에셋·삼성·KB·NH·키움·신한투자증권)에 대해 8일부터 순차적인 현장 검사를 실시한다고 7일 밝혔다. 과거 ELS 판매 과정에서 고객에게 투자 손실 위험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가입을 권유하는 ‘불완전 판매’가 이뤄졌는지가 이번 검사의 초점이다. 은행·증권업권에서 가장 판매량이 많은 국민은행과 한국투자증권에 대해서는, 관련 민원 조사도 동시에 이뤄진다.
홍콩 H지수 연계 ELS는 파생 금융상품의 일종으로, 통상 가입 후 3년 뒤에 찾아오는 만기 때 H지수가 가입 당시의 70%를 넘어야 원금과 이자를 모두 받을 수 있다. 홍콩 H지수는 2021년 상반기에 최저 1만339.99에서 최고 1만2228.63포인트 사이를 움직였다. 그런데 지금은 5606.98(5일 종가) 선까지 떨어졌다. 올해 만기가 돌아오는 H지수 ELS 총물량 15.4조원 가운데 3조~4조원 이상의 손실이 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이번 검사에 앞서 금감원이 작년 11~12월 벌인 예비 점검 결과, 일부 은행들이 ELS 판매 실적을 내부 인사 평가에 높은 비율로 반영해 온 사실이 밝혀졌다. 금감원에 따르면, 국민은행은 인사 평가 지표인 핵심성과지표(KPI)에서 1000점 만점에 410점이 H지수 ELS 같은 고위험 상품 판매 실적에 직·간접적으로 연계돼 있었다. 다른 은행들도 300~400점 정도를 반영했다. 그간 ‘ELS를 많이 팔면 인사 평가를 좋게 받는다’는 업계의 증언이 나왔는데, 이것이 실제로 확인된 것이다.
특히 은행들은 고객 수익률을 KPI에 반영하면서, 현재 ELS가 손실 구간에 있더라도 마치 정상적으로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것처럼 평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예를 들어 A 고객이 연 5%짜리 H지수 ELS에 가입했다고 하자. 가입 6개월 뒤 H지수가 처음의 90% 이상이면 약정된 수익률(연 5%)로 조기 상환된다. 90% 미만이면 조기 상환을 받지 못하고, 원금 손실 확률도 올라간다. 그런데 조기 상환받지 못한 경우에도 마치 이 고객이 연 5%의 수익을 올린 것처럼 판매 직원의 인사 평가에 반영했다는 것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직원 입장에선 일단 고객을 ELS에 가입·유지시키는 것이 유리한 선택인 구조”라고 했다.
◊내부 규정 바꿔 ELS 판매 독려
은행 내부적으로 정한 ELS 의 판매 한도를 늘린 사실도 드러났다. 금감원 점검 결과, 국민은행은 원래 변동성이 큰 지수와 연계된 ELS 상품은 총 판매 목표 금액의 50%만 판매한다는 내부 규정을 두고 있었다. 그런데 이 내부 제한 비율을 80%로 올리는 ‘영업 우선 정책’을 폈다는 것이다. ‘룰’을 어긴 것은 아니지만, ‘룰’ 자체를 바꾼 경우다. 또 은행이 신탁계약서, 투자자정보 확인서 등 일부 계약 관련 서류를 제대로 보관하지 않은 사례도 일부 발견됐다.
금감원은 이번 현장 검사를 통해 H지수 ELS 판매와 관련한 금융회사의 위법 사항이 확인될 경우, 엄중한 책임을 묻겠다는 방침이다. 은행권은 지난 2019년 DLF(파생 결합 펀드) 등 사모펀드 사태를 겪은 뒤, ‘투자자에게 상품 구조를 제대로 설명하겠다’는 약속을 전제로 ELS 등 파생 상품을 판매해 왔다. 그런데 이런 약속을 어기고 고객을 속이거나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다면, 이는 당국과 고객의 신뢰를 저버린 것이라는 시각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작년 12월 구성된 ‘H지수 ELS 대응 태스크포스(TF)’ 를 중심으로 검사부터 분쟁조정, 제도 개선 검토에 이르는 과제를 신속히 진행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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