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정 “수도권 유권자 정말 차갑더라… 맨땅 헤딩 넘어 빙하 헤딩”
국민의힘은 4월 총선을 위해 이수정(60)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를 ‘영입 인재 1호’로 발표했다. 통상 총선 영입 인사는 텃밭 지역구나 비례대표 배정을 받지만 이 교수는 험지 출마를 선언했다. 그가 예비 후보로 도전장을 내민 곳은 경기 수원정(수원시 영통구). 더불어민주당 박광온 의원이 이 지역에서 내리 3선을 했고 친명계 김준혁 한신대 교수도 뛰는 등 2012년 지역구 신설 후 민주당 후보들만 당선된 대표적인 야당 텃밭으로 꼽힌다. 매일 빨간 옷을 입고 유권자와 만나는 이 교수는 “구석구석을 누빌수록 냉랭한 수도권 민심을 느낀다”고 했다.
-새벽 수원 지하철역에서 출근 인사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얼굴이 어느 정도 알려진 줄 알았는데 시민들 반응이 차가워 놀랐다.
“범죄심리학 전공자라 마음 닫힌 사람들 끈기 있게 설득해서 입 열게 만드는 일을 평생 해왔다. 거절당하는 일에 누구보다도 익숙한데, 요즘은 좀 힘들다. ‘맨땅에 헤딩’을 각오하고 왔는데, 실상은 ‘빙하에 헤딩’이다. 이번 총선에서 패하면 현 정부는 끝난다는 위기감과 절박함으로 버틴다.”
-선거 운동에 고충이 크겠다.
“국민의힘 당색이 빨강이라 요즘 빨간 패딩을 입고 인사를 다니는데, 이 옷을 입을 때보다 오히려 흰 옷에 빨간목도리를 매고 인사할 때가 반응이 더 좋더라. 나는 이런 시민들의 사소한 반응들까지 확인하며 개선 방안을 찾으려하는데, 정작 당 지도부는 대민 친밀도를 어떻게 높일지에 대해 별 생각이 없다.”
-야권 강세인 수원정이지만 2022 대선에서 수원 선거구 5개 중 유일하게 윤석열 후보가 1위 한 곳이다.
“수원이 야당 강세지만 수원정은 광교신도시를 끼고 있어 여당에 우호적인 분위기가 있었다. 그러나 최근엔 현 정부에 대한 실망감이 확 커진 게 피부로 느껴진다.”
-어떻게 느끼나.
“시민들의 진짜 목소리는 ‘이재명이고 김건희고 관심 없다. 우리 먹고사는 일 좀 해결해달라’는 것이다. 대선 때 2번(윤석열) 찍었다는 분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씀이 ‘경제를 이렇게나 신경 안 쓸 줄 몰랐다’는 것이다. 이 정부는 코로나 사태가 끝날쯤 출범했고, 전문가들과 함께 좋은 정책 펼쳐서 경제를 살릴 것이라는 기대감이 아주 컸다. 지금까지 별로 풀린 게 없다. 상가 공실은 넘쳐나고 자영업자나 회사원이나 고금리 때문에 못 살겠다고 아우성이다. 시민들은 ‘민생이 이 지경인데 정부는 이념 타령만 한다’고 느낀다. 중도층을 사로잡기 위한 정부의 노력이 시급하다.”
-’민주당 텃밭’이라는 것을 자주 느끼나.
“관공서 문턱 넘기가 어렵다. 수원정에 경기도청이 있는데, 최근 경기지사(이재명·김동연)와 수원시장(염태영·이재준)이 민주당 출신이다. 주민센터 행사에 참석하려면 센터장 허락이 필요한데, 민주당 계열 사람들이 포진해 있어 허가가 잘 안 난다. 출판기념회를 하려고 해도 지자체 예산이 들어가는 강당·문화원·복지관 이런데선 받아주질 않더라. 지방세 지원받는 단체들도 정말 많아져서 민주당이 기본 지지율을 25%는 깔고 가는 것 같다. 우리 당은 0%부터 시작하는 셈인데. 곳곳에 벽이 정말 많다. 인천상륙작전 벌이는 느낌으로 하루하루 뛴다.”
-당 지도부는 이런 상황을 아나.
“수원 골목마다 파란색 민주당 현수막이 걸려있는데, 국민의힘 빨간 현수막은 찾아보기 어렵다. 나 같은 예비 후보는 당협위원장이 아니라 당 현수막만 자유롭게 걸 수 있는데, 당이 수수방관이다. 민주당이 ‘지역 화폐 예산 3000억 확보’ ‘민간 어린이집 급식 안전 108억’ 같은 현수막으로 동네를 도배하는데, 우리 당은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 취임 후 ‘함께 가면 길이 됩니다’ 현수막 하나 걸었다. 집권 여당이라 예산 홍보에 유리할 텐데, 왜 그런 걸 적극적으로 못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 수도권 선거는 교통·교육·복지 이슈가 전부다. 나 역시 서울 지하철 3호선을 ‘광교-원천-매탄’으로 연장하고 학교 주변에 있는 영통 쓰레기 소각장을 이전하는 것 등해 ‘킬러 공약’으로 내세운다.”
-왜 수원인가.
“누군가는 나와서 탈환해야 하기 때문이다. 인구 절반이 수도권에 사는 시대에 수도권 핵심인 수원을 포기할 수 없다. 이 지역 경기대에서 25년 넘게 근무하며 세끼를 여기서 먹고 뒷골목을 샅샅이 누비면서 이곳에 뭐가 필요한지 쭉 봐왔다. 과거 비례대표 제의도 여기저기서 많이 받았는데, 이왕 정치할 거면 어려운 곳에서 당당하게 시작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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