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희 칼럼] 가덕도 신공항 유감

강경희 기자 2024. 1. 8. 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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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변화·북극 항로
부산항에 큰 기회
말로만 동북아 물류 허브
‘정치 공항’ 급발진하다
바다 위 활주로 1개
황당 국제공항
2023년 8월 12일 하늘에서 본 신공항이 들어설 부산 강서구 가덕도와 부산신항(사진 위)의 모습. /김동환 기자

빙하가 녹고 있다. 20일 전 러시아와 중국이 북극 협력을 위해 만났다. 같은 날 미 국무부는 북극 해역의 대륙붕 확장을 선언했다. 러시아는 쇄빙 유조선을 만들고 있다. 세계 2위 해운사인 머스크는 친환경 메탄올 컨테이너선을 진수했다. 기후 변화를 맞아 세계 곳곳에서 동시다발로 벌어지는 일들이다. 한국도 관여하고 있다. 쇄빙 유조선을 만들었다. 최첨단 메탄올 선박의 절반을 우리가 만든다. 조선업 세계 1등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거기까지다. 기후 변화가 지구적 위협일 뿐 아니라 거대한 기회로도 다가오는데 우리는 그걸 전략화하지 못하고 있다. 그 승부처는 부산이다.

세계 물동량의 90%가 바다로 이동한다. 뛰어난 정치 지도자의 통찰력과 치밀한 전략 덕에 바닷길에서 가장 성공한 브랜드가 싱가포르항이다. 세계 2위 컨테이너항, 1위 환적항이다. 부산은 세계 7위 컨테이너항, 2위 환적항이다. 싱가포르는 국토 면적(740㎢)이 부산(771㎢)과 비슷하다. 제조업이 24%에 불과하고 서비스업이 71%를 차지하는 경제 구조도 비슷하다. 좁은 땅에 제조업이 한계에 봉착하자 물류, 금융 등 고부가가치 서비스업으로 비약적 성장을 해 아시아 최고 부자가 됐다. 지난해 싱가포르의 1인당 GDP는 9만달러가 넘는다. 부산의 3배 가까이 된다. 부산항과 싱가포르항의 격차는 양적 차이만은 아니다. 서비스 품질과 항만 연관 산업에서 만들어내는 부가가치도 차이 난다. 최첨단 투아스항도 건설 중이다. 한국 기업이 짓는다. 세계 일류 항만 건설, 세계 일류 선박 건조를 다 한국 기업들이 하는데 정작 바다를 경영하는 항만·해운에서 우리는 1등이 못 된다.

금세기 지구 온난화가 바닷길을 바꾸고 있다. 북극 얼음이 녹아 북극 항로의 미래 가치가 조망받고 있다. 유럽(로테르담항)에서 아시아(부산항)까지 거리가 6000㎞ 이상, 운항 일수는 10일가량 줄어든다. 싱가포르는 못 누릴 기회가 부산항에 다가오는 것이다. 지구온난화는 선박 종류도 바꾸고 있다. IMO(국제해사기구)의 친환경 규제로 선두 해운사들이 친환경 연료 선박을 주문하는 덕에 한국 조선업이 초호황이다. LNG선에 이어 메탄올, 암모니아 순으로 연료 흐름이 변할 것으로 본다. 지금은 메탄올 초기다. 싱가포르항의 1등 전략을 연구해서 전환기를 포착하면 부산항도 최일류 항만으로 올라설 수 있다.

부산항은 포화 상태에서 도심을 벗어나 서(西)부산 부산신항으로 옮겼다. 여전히 국내 최대 항만으로 선방하지만 미래 경쟁력 확충은 더디게 이뤄지고 있다. 완전 자동화는 광양항에서 먼저 시도되고, 차세대 친환경 연료 공급항 이미지는 울산항이 선점했다. 제2신항은 서부산 옆 진해에 건설된다. 오는 2040년까지 14조원이 투입돼 항만을 건설한다니 경남이 들썩인다. 단견(短見)의 지역 정치인들은 이미 세계권에 든 부산항 통합 브랜드를 키워 글로벌 1등 만드는 게 다 같이 살길이라는 생각보다는 “진해 신항 완성되면 절반 이상이 우리 쪽” “부산 독점 끝내고 항만 자치” 운운하면서 도토리 키 재기 경쟁에 들떠 있다.

부산 신항이 걸쳐 있는 가덕도에 공항 짓는 방안을 민주당 정치인들이 추진하면서 가덕도 신공항은 부산 경남 지역의 숙원 사업으로 여야 가리지 않고 약속한 정치 블랙홀이 됐다. 엑스포 유치가 불발됐지만 윤석열 대통령도 2029년 조기 완공을 약속했다. 얼마 전 민주당 김정호 의원이 ‘노무현의 꿈, 지방균형발전전략을 담다’란 부제로 ‘가덕도 신공항’ 책을 냈다. 노 전 대통령이 추진한 동남권 신공항의 꿈을 이명박 전 대통령이 백지화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TK 정치공학적 입장으로 김해공항 확장을 결정했는데 문재인 정부가 기사회생시켰다는 내용이었다. ‘2030년 엑스포 유치를 위해 2029년 12월 말까지 개항해야 하는데 일반적인 건설 절차를 따르면 15년은 족히 걸리기 때문에 절차를 생략하고 속도를 냈다’고 예타 면제와 특별법을 통과시킨 과정도 설명했다. 중앙 언론의 비판은 수도권 중심주의에 집착하는 딴지걸기로나 여겨졌다. 그 반대를 뚫고 기적처럼 이뤄낸 ‘노무현 공항’ ‘문재인 공항’처럼 자랑했는데 지난 20년간 부산 출신 대통령이 둘이나 나왔는데도 성장 일로를 걸어온 싱가포르와 정반대로 부산이 성장 동력을 잃어온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가덕도 신공항은 일반적 공항과 달리 동서 방향으로 바다 위에 활주로 1본만 건설된다고 한다. 정치 공항으로 급발진한 탓이다. 정치 셈법에는 공항 추진이 유리했겠지만 나라의 지속 발전을 위해서는 부산항을 중심에 놓고 원대하면서도 치밀한 해양 전략을 세우는 것이 우선이었다. 배후 산업 육성안도 더 구체화해야 한다. 그 연장선상에서 필요하다면 공항도 짓고 철도도, 도로도 연결해야 제대로 된 발전안이 나온다. 국토부가 기본계획을 고시하고 천문학적 세금을 들여 삽을 뜬다니 지금이라도 2029년 말 조기 개항에 집착하지 말고 환경과 안전을 감안하고 추후 확장 가능성도 고려해서 신중하게 제대로 된 신공항을 짓는게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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