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日 지진 이재민의 참을성
새해 첫날 규모 7.6 강진이 덮친 이시카와현 노토반도. 그곳 와지마시 니시소학교(초등학교) 피난소에서 지난 3일 가와카미 다다시(74)씨를 만났다. 그는 “지진이 나고 곧장 집 밖으로 나왔더니 우리 집은 찌그러지고 이웃집이 붕괴돼 있었다”며 “이웃 이름을 불렀더니 안에서 ‘도와달라’고 대답했다”고 했다. 그는 다른 2명과 함께 붕괴된 목조 가옥에 들어가 80대 여성을 구했다. ‘대단한 일을 했다’고 하자 “다들 그렇게 한다”고 답했다.
같은 피난소에서 오사카에서 온 나카구치 요시히토(29)씨도 만났다. 지진으로 함몰되고 파손된 도로 위를 가로질러 자동차로 달려온 것이다. 나카구치씨는 “고향인 이곳엔 아버지가 살고 계시는데 강진 뉴스를 듣자마자 휴가 내고 달려왔다”고 말했다. 직업이 자위대원인 그는 “상사에게 물어봤더니 우리 부대는 재난 지원 파견이 없다고 해 다행히 휴가를 받았다”고 했다. 피난소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하는 나카구치씨는 “저 앞이 우리 집이긴 한데 아직 못 가봤다”며 “16년 전에도 큰 지진을 겪었는데 벌써 2번째라 익숙해졌다”고 했다.
와지마시의 5층짜리 빌딩 붕괴 현장에서 만난 70대 일본인 남성은 발을 동동 굴렀다. 빌딩 잔해 더미를 드릴로 뚫고 있는 소방대원을 보며 “동네 야키니쿠집 안주인이 건물에 깔린 채 생매장 상태”라고 했다. 정작 본인도 모포 한 장 들고 피난소를 전전하며 하루 한 끼 주먹밥으로 연명하는 처지지만 “어제 딸은 붕괴 현장서 살아 나왔는데 안주인이 걱정”이라고 했다.
노토반도 지진으로 일본인 126명(6일 밤 현재)이 사망했고 210명이 연락 두절인 상태다. 집을 잃은 피난민은 3만명이 넘는다.
지난 2일부터 사흘간 와지마시 재해 현장을 취재하면서 만난 일본인들은 슬픔·분노보다는 마치 재해 현장이 일상인 것처럼 행동했다. 하루에도 몇 차례씩 오는 여진 공포에다 하루 한 끼 주먹밥만 배급받는 상황인데도, 단전·단수에 인터넷·휴대전화 같은 통신 불통인데도 그랬다. 재난 현장을 취재하는 일은 쉽지 않다. 한 번쯤은 인터뷰를 요청하다가 격심한 고통을 겪고 있는 일본인 이재민에게 욕먹을 각오도 했지만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거듭되는 최악의 지진에도 폭동·약탈 같은 혼란 없이 다시 일어서는 일본인의 원동력일 것이다.
지진이 마냥 남의 일일까. 2016년 경주 지진(규모 5.8), 2017년 포항 지진(규모 5.4) 등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지진이 빈발하고 있다. 동해 해저에 우리가 모르는 단층이 있을지 모른다는 말도 나온다. 우리 정부에 규모 7 강진을 전제로 한 대응 매뉴얼이 있을까. 준비 없는 재해는 재앙일 뿐이다. 오늘도 재해 현장을 묵묵히 견뎌내고 있는 일본인 피난민들에게 경의(敬意)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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