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면서] 남극의 총무

경기일보 2024. 1. 8.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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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준 남극장보고과학기지 제11차 월동연구대 총무

‘남극의 쉐프’란 영화가 있다. 월동연구대 면접 때 어떤 계기로 남극에서 일을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는지 묻는 말에 대해 많이 듣는 답 중의 하나다. 실제로 이 영화에서 주인공은 갑작스럽게 일본 남극기지에 요리사로 파견돼 요리에 대한 고민, 고립된 환경에서 각각의 개성을 지닌 대원들 사이에서 전전긍긍하며 남극에서 생활상을 전한다.

현재 함께 지내고 있는 우리 조리대원도 영화에서처럼 매일 대원들의 사기를 북돋아 주기 위해 전전긍긍하며 제한된 식자재로 한국에서 느끼던 맛을 재현하고자 평일과 휴일 모두 계속 고민하고 있다.

이 영화에 총무라는 역할은 없지만 주인공인 조리대원 역할에서 우리나라 남극기지의 총무 역할을 볼 수 있었다. 우리나라 기지에서는 라면 같은 보급품을 내놓거나 배분 수량을 조정하는 일을 총무가 한다. 보급이 제한적이기에 수량이 부족하거나 누군가 혼자서 많이 소비한다면 긴장할 수밖에 없다.

일반적으로 총무는 사전상 “단체의 전체적이며 일반적인 사무, 또 그 일을 맡아보는 사람”이라고 나와 있지만 사실 남극기지 총무는 일반적인 사무 이상의 일을 한다. 영어로 매니저라도 표현하는데 오히려 이 표현이 더 적절한 표현으로 보인다.

일반적인 사무 외에도 월동대 구성과 운영, 식자재를 비롯한 보급, 또 남극까지 월동대를 인솔하는 역할을 한다. 또 대장을 보좌해 1년간 기지 생활을 어떻게 할지 방향과 원칙을 마련하고, 당직 근무표를 짜거나 숙소를 배정하고, 대원들이 기지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살피는 역할을 한다.

추가로 눈이 오면 기지 제설작업도 해야 하고, 주방 도우미로 돌아가면서 설거지도 해야 하고, 월동대뿐만 아니라 연구를 위해 방문하는 분들의 편의를 위해 화장품과 칫솔 등 각종 생활용품 배급과 이불 관리 등 호텔의 하우스키핑(객실관리) 성격의 업무도 있다.

무엇보다도 업무 분장에 나와 있는 가장 어려운 일은 ‘대원 상호 간 인화 도모 및 사기 진작에 관한 업무’다. 구체적인 듯 구체적이지 않은 이 업무가 사실 매년 새로이 구성돼 파견되는 월동연구대의 임무 수행을 성공으로 이끄는 중요한 업무 중 하나다.

여기서부터 고민은 시작된다. 고립되고 제한적인 환경에서 정말 라면이라도 모자라거나 배분이 공평하지 않으면 월동대의 인화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또 6개의 과학연구 분야와 시설유지 쪽 5개 분야, 대기과학에서부터 기계, 중장비, 의료, 조리 등 각각 다른 16개 분야에서 온 18명이 모이다 보니 의견을 조율해 나가는 것은 필수적이다. 대원들의 의견을 듣고 기지 대장과 연구소와 의견을 조율해 방향을 설정해 나가는 역할은 중요하지만 중간자적 입장이 쉽지는 않은 것이 사실이다.

영화에서는 개성이 강한 캐릭터들이 장보고기지보다 더 내륙에 고립된 기지에서 생활하는 것으로 설정돼 다소 조마조마하지만 현재 필자가 함께하는 대원들은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서 부여된 임무를 완수하고자 노력하고 있어 늘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 대장과 함께 1년의 월동과 연구소가 부여한 임무를 달성할 수 있도록 차대 운영을 지원해야 한다는 막중한 부담감이 앞서지만 서로가 존중하고 배려해 정감 어린 기지 생활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자 한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지지를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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