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경제] 80년대 운동권 학생의 잘못된 경제관

경기일보 2024. 1. 8.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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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철 서울시립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1980년 5·18민주화운동 이후 대학사회는 몹시 시끄러웠고 혼란스러웠다. 1987년 민주화 직후에도 상황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특히 당시 운동권 학생들은 민주화 투쟁을 한다면서 NL이니 PD니 하는 사회변혁운동을 주장하기까지 했다.

당시 민주화를 하겠다는 학생들이 사회주의 이념 운동에 빠져든 것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던 중 필자는 1986년 9월부터 니혼게이자이겐큐센터에 1년간 객원연구원으로 근무한 적이 있다. 이때 이 연구소의 이사장이었던 가나모리 히사오씨가 소련을 방문하고 돌아와 소련이 매우 낙후됐다고 하면서 심지어 일류호텔이라고 하는데 욕실의 물마개마저 사람들이 훔쳐간다는 것이었다. 또 당시 중공으로부터 이 연구소에 파견나온 이는 필자와 한 연구실에 있었는데 자기가 전에 북한에 근무한 적이 있다며 북한은 중국보다도 너무 못산다고 했다. 필자는 1978년 아르헨티나를 경제조사차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온건 사회주의 국가였음에도 경제 상황이 매우 좋지 않았음을 확인한 적이 있었다.

필자는 니혼게이자이겐큐센터 경제회보(1986년 12월호)에 ‘5つの經濟發展要因’(다섯 가지의 경제발전요인)이라는 논문을 발표한 적이 있다. 즉, 후진국이 경제발전을 하기 위해서는 △국가와 국민의 경제발전 의욕이 있어야 하며 △자본주의 체제여야 하며 △정부가 경제발전을 위한 주도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야 하고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인적자원 육성, 즉 교육이 필수적이며 △선진국을 따라잡기 위해서는 모방효과를 극대화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당시 국제사회에서는 한국, 대만, 싱가포르, 홍콩을 ‘네 마리의 용’ 또는 ‘네 마리의 호랑이’라고 평가하면서 이들 국가의 경제발전을 칭송하기까지 했으며 특히 일본 매스컴들은 한국을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내곤 했다.

안식 연구를 마치고 귀국, 1988년 봄학기 강의 시간에 일본에서 발표한 논문의 ‘다섯 가지 경제발전요인’에 대해 설명하면서 특히 북한과 아르헨티나의 예를 들어 사회주의로는 절대 경제발전을 이룩할 수 없다고 하자 한 학생회 간부가 일어나 자기들에게 잘못된 지식과 정보를 제공한다고 강하게 항의까지 하면서 강의실을 뛰쳐나갔다. 한 학생은 북한에는 세금도 없고 지하철도 공짜라는 주장을 펴기까지 했다.

필자는 교수의 생각과 정보가 설사 너희들의 것들과 다르다고 하더라도 나만 옳고 상대방은 틀리다고 하는 자세를 취하는 것은 잘못된 행동이라고 꾸짖었다. 그런데 이 당시의 운동권 학생들은 사회주의 이론을 책을 통해 배웠는지 모르지만 사회주의 국가들에 대한 그릇된 정보를 어디에서 습득했는지 의아스러웠다. 당시 죽의 장막이나 철의 장막처럼 닫혀 있었던 공산 사회주의 국가들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입수하기가 어려웠던 게 원인이었을 수도 있지만 사회주의 이념에 빠져 있었던 게 원인인지도 모른다.

이런 일이 있은 지 채 2년도 안 돼 소련을 비롯한 동구권 사회주의국가들이 몰락했다. 지금 우리의 경제력(2019년 기준)은 국민소득 기준으로 무려 북한의 54배에 달한다. 최근 일론 머스크의 남북한 야경사진도 남북한 경제의 실상을 잘 보여준다. 북한 사회주의 경제의 완패라고 할 수 있다. 1980년대의 운동권 학생들이 우리의 정치판에 주류로 등장한 지도 30여년이 된다. 요즘 복지를 내세워 중앙정부나 지방정부가 퍼주기 경쟁을 벌이고 있는 포퓰리즘도 그들에게 잠재돼 있는 사회주의에 대한 동경 의식에서 비롯되는 것 아닌가 의심해보기도 한다. 그러나 생산 없는 소득은 지속될 수도 없거니와 허구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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