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늘 땅짚고 헤엄치는 은행… ELS·펀드 손해, 왜 고객만 피해보나
은행의 과도한 ‘이자 장사’와 고위험 증권 상품 판매에서 예상되는 투자자 원금 손실이 논란의 대상이다. 혹시나 은행의 도덕적 해이가 경제 위기로 이어질까 염려된다.
개인적인 사례이지만 은행 직원의 말을 믿고 대학의 연구소 자금을 포스코·기아자동차 주식을 기초 자산으로 한 주가연계증권(ELS)에 투자한 적이 있었다. ELS는 기초 자산 가격이 정해진 범위에 있다면 상당히 높은 금리를 받는다. 하지만 그 범위를 벗어나 하락하면 큰 원금 손실까지 감수해야 하는 위험성 높은 상품이다. 포스코와 기아자동차 같은 우량 기업의 주가가 설마 25% 이상 떨어지겠나 하는 생각으로 투자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주가가 예상치 않게 폭락해 큰 손실을 볼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다행히 주가가 회복돼 원금은 가까스로 지켰지만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하다.
지금도 시중은행들이 ELS 같은 고위험 금융 상품을 고객들에게 ‘낚시성’으로 판매해 피해가 끊이지 않는다. 고위험 ELS 발행이 왜 반복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이 상품을 사는 고객은 위험을 감수해야 하고 큰 피해를 볼 수 있다. 은행은 반대로 상품을 팔면 팔수록 이득이 커진다. 은행이 판매하는 신종자본증권도 마찬가지다. 신종자본증권은 30년 만기 후순위 채권으로 (초)고위험 증권이다. 은행은 ELS도 신종자본증권도 높은 이자를 미끼로 던지면서 고객을 고위험 상품으로 끌어들이고 수수료 수입을 얻는다.
신종자본증권의 사례를 들여다보자. 고객이 1억원을 맡기면 은행은 1.5%의 수수료 150만원을 먼저 떼어 간다. 은행은 실제로 잔액 9850만원으로 신종자본증권을 발행 기관에서 매입해 고객에게 판매한다. 문제는 은행의 고위험 상품 판매 행태가 불투명하고 불공정하다는 사실이다. 수수료를 미리 떼어 9850만원이 된 투자 원금으로 몇 단위를 살 수 있는가도 중요한데, 고객이 알 도리가 없다. 은행이 이를 공개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은행은 위험 부담을 전혀 지지 않는다. 시장이 어떤 위험 상황에 놓여도 손해를 보지 않는다. 위험 부담은 오로지 고객 몫이다. ELS도 펀드도 마찬가지다. 은행이 투자자 이익은 외면한 채 은행의 이익을 늘리려는 탐욕적 행위이다.
60세 이상 은퇴자를 대상으로 상품 가입을 권유하는 비도덕성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고객들은 대부분 은행 직원의 간단한 설명만 듣고 상품에 가입한다. 은행 직원은 고객에게 유리한 내용만 말하고, 불리한 내용은 빼버리기도 한다. 깨알같이 적혀있는 약관 규정을 읽어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해당 직원마저 판매 상품에 대해 잘 모르는 경우도 많다. 쌍방 간 고위험 증권 상품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매매가 이루어진다. 불완전 판매의 전형이다.
국내 은행들이 홍콩 H지수를 기초 자산으로 한 ELS를 판매해 큰 고객 손실이 예상된다. 지난해 11월 말 기준 ELS 판매 잔액이 14조원에 이른다고 한다. 올해 상반기 예상 손실이 약 6조원이다. 홍콩 주가가 회복하지 못한다면 피해는 고스란히 고객들이 떠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수수료를 미리 떼는 은행은 어떤 피해도 보지 않는다. 신종자본증권의 경우 2022년 말 기준 판매 잔액이 46조원에 이른다. 수수료를 1%로 산정할 때 은행은 4600억원을 앉아서 벌었다는 말이다. 고객 돈으로 땅 짚고 헤엄치는 무위험 ‘수수료 장사’다.
국내 은행들의 도덕적 해이는 고객을 위험으로 내몬다. 은행 고객들이 파산하면 시장이 무너지고 결국에는 금융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가뜩이나 서민들은 살기가 팍팍한데 은행들 배만 불리는 수수료와 이자 장사는 이제 막아야 한다. 이런 부도덕한 판매 행위가 이루어지지 않도록 수수료 문제를 포함하여 제도 개선에 나서야 한다. 금융 소비자 보호는 강화되어야 한다.
금융 위기는 고객을 봉으로 아는 은행들의 탐욕 속에서 소리 없이 찾아온다. 관행적으로 모두가 해 온 일이니 괜찮다고 하는 건 ‘집단 착각’으로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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