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美 팝스타의 한국어 노래
‘목에 입 맞출 때면 I’m like, Oh~’.
얼마 전 카페에 앉아 노래 ‘Love U Like That’을 듣다 깜짝 놀랐다. 분명 미국 팝스타 라우브의 신곡인데, 자연스러운 한국어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사랑에 빠진 이의 감성을 우리말로 애절하게 노래했다. 눈시울이 뜨거워질 정도였다. 이게 모국어의 힘 아닐까. 그런데 라우브는 영어가 모국어 아닌가? 그런데도 그는 한국어 발음을 명징하게 내고 있었다.
이 노래는 지난 11월 일반 영어 버전과 ‘코리안(한국어) 버전’, 두 형태로 동시 발표됐다. 한국어 버전은 ‘AI 보이스 모델링’ 기술로 탄생했다. 한국어 발음을 연습해 직접 부른 게 아니란 말이다. 한국인의 목소리로 훈련된 AI 필터를 라우브의 목소리 위에 스웨터 입히듯 기술적으로 덧씌운 것이다.
미 팝스타의 우리말 노래? 한국 음악 시장이 성장했기 때문이라고 우쭐할 때가 아니다. 장담컨대 이 노래는 우리 대중음악계에 공습경보가 될 것이다. 조만간 아델, 테일러 스위프트, 샘 스미스 같은 해외 유명 팝스타들의 목소리로 부른 한국어 노래들이 우리 음악 생태계에 들이닥칠 수 있다. ‘I heard that you’re settled down~’(아델 ‘Someone Like You’) 대신에 ‘그대, 새 사람 생겼다고~’를, ‘You and me, we made a vow’ 대신 ‘너와 나 맹세했지’(샘 스미스 ‘I’m Not the Only One’)라고 노래하는 이들의 곡은 단지 분위기 좋은 외국 팝송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한국어 노래와 똑같이 노래방에 가서 부르고 싶어지는 우리말 노래가 될 것이다. 모국어 가수 임영웅이나 아이유가 부른 노래와 다를 게 없어진다는 얘기다.
언어의 경계, ‘음악의 바벨탑’이 붕괴하기 직전이다. 세계 시장을 겨냥해 영어 노래를 냈던 방탄소년단의 노력은 곧 과거의 해프닝으로 회자될 것이다. 기술이 세상을 바꾼다고 한다. 이제 기술은 예술도 바꾼다. 기술은 언어 장벽과 감성의 영역까지 무너뜨린다. 예술학도에게도 첨단 기술은 반드시 배워야 할 전공 필수가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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