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태준의 가슴이 따뜻해지는 詩] [2] 눈과 강아지
문태준 시인 2024. 1. 8. 03:00
눈과 강아지
지그재그로 발자국을 찍으며
강아지 한 마리 눈 위로
겅중겅중 달린다 컹컹컹컹 달린다
한 골목을 지나 또 다른 골목으로
아무것도 씌어지지 않는 골목으로
강아지는, 강아지는 달리고 또 달린다
이제 강아지의 앞발도 보이지 않는다
-최하림(1939-2010)
최하림 시인은 ‘이슬방울’이라는 제목의 시에서 “이슬/ 방울/ 속의/ 말간/ 세계/ 우산을/ 쓰고/ 들어가/ 봤으면”이라고 짧게 썼는데, 이 시에는 그야말로 ‘말간 세계’가 있다. 설레어서 가슴이 콩닥콩닥하는 동심도 들어 있다. 강아지도 흥분되어 심장이 두근두근한다. 강아지가 눈 위에 찍은 발자국을 보아도 그렇다. 펄펄 날리는 눈송이처럼 좌우로 뛴다.
‘겅중겅중’이라는 말에는 솟구쳐 맘껏 도약하는 그 높이가 있다. ‘컹컹컹컹’이라는 말은 원래 크게 짖는 소리이지만, 이 시에서는 오히려 막 내달리는 강아지의 가슴팍 앞쪽 공간이 눈에 선하게 보인다. 참 절묘한 시구이다.
눈은 마치 으쓱거리는 어깨춤처럼 내리고, 강아지는 발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흥겹게, 힘차게 달린다. 바라보는 시인의 얼굴에도 희색(喜色)이 가득했을 것이다. 많은 사람의 기억 속에는 이런 장면이 한 컷씩 남아 있지 않을까 싶다. 귀심(歸心)을 부르는 동화 같은 한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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